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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원폭피해 손배소, 항소심도 기각

징용 피해자 "이런 판결 내릴 거면서 왜 9년이나 끌었나" 침통

등록|2009.02.04 19:43 수정|2009.02.04 21:31

▲ 미쓰비시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하다 피폭 피해를 입은 재단 원고단이 지난 3일 부산고법 항소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재판 결과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 이국언


일제시절 강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원폭 피해를 본 징용피해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도 기각됐다.

부산고법 제5민사부(재판장 이승영 부장판사)는 3일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원폭에 피폭된 이근목(87·경기도 평택)씨 등 5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인했다.

재판부 "이미 일본에서 확정 판결된 사안, 받아들여야"

재판부는 "이 사건은 이미 일본에서 확정 판결된 사안으로 외국 판결을 승인할 수 있는 우리 민법 규정상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또 법원은 "이를 우리 법에 적용한다 하더라도 이미 소멸시효 10년을 지난 사안이기 때문에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단은 적절하다"라고 밝혔다.

법원 판결에 대해 원고 측 변호인인 최봉태 변호사는 "설마 전범 일본국 판단을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참 당혹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 변호사는 "민사소송법에 우리나라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 외국 법원의 판결을 우리 법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이번 경우는 엄연히 다르다"며 "일본의 판결은 한일병합이 합법적이고 강제동원 역시 관련법에 의해 이뤄졌다는 합법을 전제로 깔고 한 것인데, 그렇다면 한일병합이 합법적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란 말이냐"며 반발했다.

최 변호사는 "일본 법원의 판결을 피해국인 우리가 왜 받아준다는 것이냐"며 "역사가들이 나중에 기록할 때 오늘 판결은 우리 사법사상 인혁당 사건보다 더한 사법치욕이자, 대일 굴욕의 날로 기록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근목 할아버지 "해방 아직 먼 것 같다"

원고인 이근목(87)씨는 "이런 판결을 내릴 거면서 왜 9년이나 재판을 끌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왜 한국 사람이 주권을 당당히 행사치 못하고 남한테 판단을 넘겨주는 것이냐"며 "정말 분하고 안타깝다"며 낙심한 모습을 보였다.

▲ 미쓰비시 피폭 징용 피해자 재판 원고인 이근목 할아버지가 기각 판결 직후 힘겨운 듯 지팡이를 끌고 부산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 이국언

이씨는 "그동안 참고 기다려온 것이 9년 세월인데 재판관이 우리 피해자들이 일제로부터 당해온 실정을 잘 안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오늘 보니 해방은 아직 먼 것 같다"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히로시마에 있는 미쓰비시 조선소에 끌려가 강제 노역 도중 원폭 피해를 본 원고 이씨 등은 2000년 5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를 상대로 강제노역과 원폭피해에 대한 위자료와 미불임금 등 6억600만원의 지급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으며, 재판이 길어지는 동안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창환씨가 사망하기도 했다.

앞서 1심 재판부인 부산지법 제6민사부는 2007년 2월 "태평양전쟁 전쟁 전후 미쓰비시중업을 다른 법인격을 가진 회사로 볼 근거가 없다"며 소송 당사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이 피해를 본 시점이 1944년~1945년 사이로 우리 민법상 소멸시효인 10년을 지난 사안"이라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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