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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나온 원시인, 전국노래자랑 접수하다

원시인 '알바'하다 저질 댄스 추게 된 사연

등록|2009.02.05 14:12 수정|2009.02.05 16:30

▲ 작년 5월 원시인 알바 하던 도중, KBS 전국노래자랑 무대 옆에서 사람들 앞에 재롱을 떨던 저의 모습입니다. 그때의 기억 정말 달콤했습니다. ⓒ KBS 방송 캡쳐


겨울철임에도 요즘 같이 날씨가 따뜻한 날, 어디론가 놀러가고 싶은 생각이 제 마음을 유혹합니다. 아직 2월 초에 불과하지만 봄이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바쁜 일상생활을 보내다보니, '경치 좋은 곳이 어디있을까?'라는 생각에 올해 봄 여행갈 장소까지 물색하는 등 이런 저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전의 달콤했던 추억이 아직까지 저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더군요. '어린이날'이 끼어있던 지난해 5월초 어느 모 지방 축제에서 5일동안 일했던 '원시인 알바' 말입니다. 비록 5일 단기 알바였지만 그때의 일들은 평생 간직하게 될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밖에서 맨발로 벌거벗고 돌아다니고, 모르는 사람들과 하루에 최소 1000명 이상 만나고, 재롱도 피우고, 일하면서 누워있어도 뭐라할 사람도 없고,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고, 그 외 일상생활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하게 된 기분이 지금도 짜릿하고 흐뭇합니다.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원래 돈을 벌기 위해서 였습니다. 당시 제가 일하던 학교 식당이 여러 이유로 5월 초에 급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구했고, 결국 이 일을 하게 되었죠. 수당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돈이 급했던 터라 5월 초 휴일 모두 반납하고 원시인 알바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시인도 면접 봐서 뽑나요?

처음에는 누구나 하는 일인줄 알았는데, 알고봤더니 어느 모 단기 알바 전문업체를 통해 면접을 봐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곳에서 면접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더니 걱정스러운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원시인처럼 벌거벗고 일해야 하니까 저의 비실비실한 몸이 걱정스러웠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배가 나왔는데 안뽑히는거 아닌가요? 왠지 몸짱들이 뽑힐 것 같은데…"라고 말하니까 담당자분이 웃으면서 "아니에요. 원시인들 보면 배가 나왔잖아요. 오히려 잘되었네요"라고 그러는 겁니다. 결국엔 합격되었죠. 면접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색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원시인 알바는 지방에서 5일 동안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면도구와 옷가지 같은 것들을 싸고 이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짐을 꾸리고 어느 모 이벤트 업체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날 일정이 교육이어서 일반 업체들처럼 딱딱하고 엄숙하게 진행할 것 같았는데, '동안'이신 사장님께서 마치 개그콘서트를 하는 듯 정말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교육해주셔서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원시인이 주로 하는 행동들과 표정, 걸음걸이 등등 정말 '리얼'하게 해주셔서 공짜 공연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교육 중간에는 무료로 자장면 먹으면서 사장님, 그리고 저와 함께 원시인 알바 하는 사람들과 서로 말을 놓고 이야기하니까 금방 친해지더군요.

그러고 난 뒤 지방으로 이동하여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웃통 벗고 일하는 설렘 속에 갈색 천과 검은색 스판을 하체 부위쪽에 덮고 가발을 썼지만, 문제는 분장이 만만찮았던 겁니다. 여러가지 팩들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면 고동색 분을 칠해야 하는데 워낙 제 피부가 백인 못지 않게 하얗다보니 여러 사람들이 고생했었죠.

저는 복부쪽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은 다리쪽에, 또 다른 사람은 얼굴쪽을 칠하고, 원시인처럼 리얼하게 꾸미려고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었죠. 그러면서 서로 친해지다보니까 얼마나 기분 좋던지요. 그중에는 이벤트에 숙련된 사람들도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얻으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할 곳에 도착해서 담당자분이 우리 원시인 알바들에게 그러더군요. "여기 어린 애들이 많이 오는데, 애들이 꼬집고 때리더라도 화내지 마세요. 웃으면서 합시다"라고 하더군요. 평소 아이들과 접하지 않았던 저는 아이들이 나를 덮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요즘 애들이 공격적이고 직설적이다보니까 뭔가 피해보는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들었죠.

결국 제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첫날이 평일이라 유치원에서 단체로 오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보냈지만, 연휴였던 두번째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몇몇 아이들이 저를 공격하는 것이었죠.

제가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으니까 "엄마. 저 아저씨 뭐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이리저리 몸을 만지고 꼬집고 때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원시인 특유의 걸음걸이로 어디론가 정신없이 이동했습니다. 몇몇 짓궂은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가면서 저를 괴롭히더군요. 다행히 사람들이 사진촬영을 응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캐릭터로 일하던 사람들은 저보다 더 심하게 고생했더군요. 5월 초였음에도 날씨가 후덥지근 더웠기 때문에 1시간 단위로 일을 했지만, 워낙 날씨가 더워서 '벌거벗은' 원시인보다 더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몸을 만지고 때리더라도 대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한데, 무거운 캐릭터 인형을 쓰다보니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야 할지 눈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캐릭터 애들을 보니까 이렇게 힘든 것인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원시인들이 캐릭터 옆에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시선을 유도했습니다. 그렇게 보내다가 두번째 날이 갔네요.

세번째 날부터는 좀 더 재미있게 보내자는 생각에 아이들의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호흡해서 재미를 주기로 했습니다. 행사 장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유도하고 호응까지 얻어내면서 활기차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 마지막날까지 보람차고 재미있게 보냈죠. 같이 일했던 어떤 형이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웃는 것을 보니까 무척 행복해 하더라. 나도 덩달아 신나더라. 행복이란게 이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었는지 그동안 모르고 지냈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까 5일 동안 정말 행복하게 일했던 것 같았습니다.

원시인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최고의 에피소드는 행사 마지막날에 있었던 전국노래자랑 출연이었습니다. 원래 출연을 안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방송사 관계자가 출연해달라고 요청해서 결국 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왔죠.

행사 전에는 송해 할아버지와 악수하게 되었는데, 연세가 82세(그때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훨씬 젊고 열정적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전국노래자랑=송해'라고 생각하는지 그때야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다른 원시인들과 함께 무대 옆에서 초대가수 나올 때마다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곰 인형이나 각종 도구 이용해서 흔들흔들 춤을 췄습니다. 그날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핸드폰으로 우리를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죠.

그래서 제 머릿속에 '열심히 하면 뭔가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박수치고 손과 몸을 정신없이 흔들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워낙 제가 몰입하다보니까 함께 춤추던 원시인들마저 웃고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지면서(스판이 있었기 때문에 속옷이 보이진 않았죠) 당황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고도 저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아서, 최우수상 받은 사람이 노래 부르는 시점에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심사위원단 책상에 아무도 없는 틈을 노려, 그 위에 올라가 춤을 췄습니다. 처음에는 박수를 이리저리 치다가, 막판에 노홍철이 무한도전에서 주로 하던 '저질 댄스'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몸을 흔들었죠. 그리고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점핑으로 마무리하고 무대 뒷쪽 대기실 주변으로 뛰쳐갔습니다.

그 행동에 다들 흐뭇하게 좋아하다보니까 '내가 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 들어보니까 송해 할아버지가 제가 심사위원단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상당히 환한 표정을 지었다고 하더군요. 직접 송해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듣지 못했지만, 남이 인정해줬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춰본 적도 없었고, 그만큼 시선을 받은적도 없었지만, 열심히 했다는 보람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 일이 있은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낯설지 않았고요. 원시인으로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특이한 경험도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전국노래자랑 때의 일은 아마도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전국노래자랑 무대에서 당당히 노래를 불렀으면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제가 지금은 일상생활에 바빠서 그럴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추억만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상 생활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고 행복하던지요. 이제는 20대가 완전히 꺾인데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다시는 원시인 알바를 하지 않겠지만, 그동안 세상사는 재미를 모르고 지냈던 저에게는 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재발견의 시간'이어서 죽을 때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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