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상으로 쌀 한되 사와라"
[사진] 그 많던 구멍가게 다 어디 갔을까
▲ 삼십년 넘은의성 쌀가게 ⓒ 김찬순
▲ 그 많던구멍가게 다 어디 갔을까 ? ⓒ 김찬순
▲ 그래도어린 학생들에게 인기만점인 학교 앞 구멍가게 문방구 ⓒ 김찬순
구멍가게에 관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나는 고향이 밀양인데, 중학교를 부산에서 다니게 되어 학생인 막내 누나와 함께 자취를 했다. 그런데 막내 누나는 심부름을 주로 나한테 시켰다.
그러나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남자애는 절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단단히 받고 자란 터라 막내 누나가 심부름 시킬 때마다 심하게 투덜거리며, 나중에 어머니에게 다 일러바칠 것이라고 위협을 주곤 했지만, 그러나 누나는 콧방귀를 뀌며, 쌀 심부름 연탄심부름은 물론 두부, 콩나물 사오는 잔심부름 등을 내게 시켰다.
그것도 어떨 때는 "너 쌀 한되만 외상 얻어와라" 하고 말할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내가 그 일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우리의 가난한 자취살림 살이의 애로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요즘에는구멍가게에서 외상은 절대 사절 ⓒ 김찬순
정말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동네 슈퍼에서 외상 사오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그시절을 생각하면, 이웃과 이웃 간에 절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외상이란 생활 습관은 나쁜 것이지만, 사람 사이 사람 사이 신뢰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그리운 생활 풍습인 것이다.
그 시절은 참 동네마다 연탄구멍가게, 쌀구멍가게, 문방구 구멍가게, 채소 구멍가게 줄지어 있었다. 그렇게 많던 구멍가게 다 어디 갔을까? 둘러보면 낡은 건물은 하룻밤 무섭게 새 건물로 들어선다. 새 건물은 분명 깨끗하고 편리한데 새 친구처럼 서먹하다.
드르르 의성 쌀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러나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다 배달 나가셨는지 오늘은 안 계신다. 한 5분 기다리다가 내일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되돌아 선다. 그러면서 일편 내일 오면 이 건물 사라지고 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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