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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가 좋아? 소녀시대가 좋아?

대안적인 토론 수업 모색하는 청소년 교육공동체 '나다'

등록|2009.02.06 10:51 수정|2009.02.07 11:42

피로회복 나다쓰학생들이 만든 나다 광고다. ⓒ 나다



인기 그룹 원더걸스의 노래는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는 중독성마저 있다. 게다가 비주얼 시대에 맞게 시원한 외모까지 갖추었다. 소녀시대도 뒤지지 않는다. 깨끗한 음색과 청순한 외모를 뽐내며 가요계를 강타했다. 9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라 한 명 한 명이 지닌 매력을 뜯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수업은 여성 그룹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방송 녹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원더걸스 팬과 소녀시대 팬으로 편을 갈라 한판 붙는다. 상대편을 헐뜯어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누구는 외모를, 누구는 가창력을, 누구는 인기를 언급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을 칭찬한다.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겨울 방학을 맞이한 청소년들을 위해 마련한 '2009년 겨울방학 청소년 인문학 특강' 중 '문화 읽기:바람직한 가역반응' 수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청소년들은 자유롭게 앉아 마음껏 자신들의 얘기를 펼친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웃음꽃이 활짝 피는 것이 여러 번이다.

이렇게 나다의 수업 방식은 자못 색다르다. 재미는 기본이다. 그리고 선생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방식이 아니다.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이다. 화제는 선생이 제시하지만, 수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학생들이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기자는 이곳에서 기존 학교 수업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움과 수업에 참여하는 친구들에 대한 신뢰, 그리고 대안적인 토론 수업의 모델을 볼 수 있었다. 또 각자에게 대중문화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과 이들이 대중문화의 이면을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청소년을 대상화시키는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토록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수업을 하는 교육공동체 나다는 어떤 곳일까?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나다는 비영리 교육단체이며 제도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고 대안이 될 수업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기자는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2009년 1월 7일 문화 읽기 수업을 진행하는 변중용 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먼저 그에게 왜 이런 수업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제도 교육의 문제부터 지적했다.

변중용청소년과 함께 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나다의 활동가다. ⓒ 서상일



"현재 제도 교육의 가장 큰 한계가 아이들이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잖아요. 정답의 권위에 눌려 질문을 할 수도 없게 만들고, 의심을 할 수도 없게 만들죠.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다가, 청소년들이 관심 갖는 문제에서 출발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줄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런 수업을 시도하게 되었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이유도 모른 채 하루 종일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학생들도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고. 우선 변중용 씨는 학생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을 위한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그건 그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이에요. 그런 사고를 전제한 상태에서는 청소년들이 가지는 자발적인 힘을 길러주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다른 방향에서 그들과 만나려고 합니다.

대신 저희는 청소년과 함께 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요. 구체적으로는 선생이 일방적으로 수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과 함께 수업을 만들어가는 방식이죠. 저는 이것이 청소년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을 끌어내고 그들의 고민과 함께 하는 좋은 방식이라고 봐요."

사실, '청소년을 위한다'는 말에는 무서운 전제가 숨어 있다. 그 말에는 청소년이 미성숙하거나, 자립적이지 못하거나,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그 말에는 '성숙한 어른이 미성숙한 청소년을 이끌어야 한다' 또는 '자립적인 어른이 자립적이지 못한 청소년을 지켜 주어야 한다'는 사고가 딸려 나온다.

그 말은 청소년을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미성숙한 청소년'에 대한 '성숙한 어른'의 권력을 보장한다. 변중용 씨는 청소년들이 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청소년들이 "아이들이 무슨 죄냐? 어른들이 지켜줄게"하는 구호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단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지킬 수 있는데, 왜 우리를 지켜 주나? 촛불도 우리가 제일 먼저 들었는데"하면서.

이들이 다음 촛불 집회에는 "어른들이 무슨 죄냐? 아이들이 지켜줄게"하는 구호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들은 청소년을 보는 보호주의적 시각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당당한 자기의 주체됨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교육이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지금 이곳, 청소년들의 삶의 열망과 함께 한다!

이어 그는 가르치는 자가 청소년을 위해서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신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자세를 키워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그럼, 그것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는 청소년들이 지금 삶에 있어서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모습에 대한 열망을 보라고 한다. 그것에서 시작해서 인문학적 성찰까지 갈 수 있게 도움을 주면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거다. 이쯤 들으니 청소년과 함께 꾸려간다는 교육공동체 나다가 지향하는 교육의 상이 잡혔다.

수업에 함께 하는 학생들'바람직한 가역반응'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 서상일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의 수업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어떨까? 수업에 참여하러 온 친구를 만나기 위해 수업 장소로 갔다. 마침 친구 몇이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부모님 추천으로 왔다는 하대덕(중3)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나다의 수업 방식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옆에 있는 안재형(중3) 친구에게도 물었다. 친구는 "재미있어 보여서 왔다. 그리고 내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이 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친구는 가치관과 자신감이라며 자못 진지하게 얘기했다. "이곳의 수업을 통해 내 가치관을 돌아볼 수 있고, 내가 갈 길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같다"고 말이다.

교육공동체 나다의 청소년 인문학 특강은 방학 때마다 진행한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로 나누어 역사, 문학, 철학, 문화 읽기 등 다양한 수업이 마련되어 있다. 방학 때만 수업이 있는 것 아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봄, 가을에도 다양한 수업이 계속 진행된다. 관심 있는 이라면 나다의 홈페이지(http://nada.jinbo.net)를 방문해 보면 좋은 정보를 얻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계절출판사에서 발행하는 <1318북리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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