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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이들은 헛발질 잘 하는 상구에게 공을 패스했을까?

아름다운 차별도 있다

등록|2009.02.08 11:06 수정|2009.02.09 12:04

박춘애(광주 금당고, 도덕) 교사전남교육연수원 중등 학급운영 직무연수에서 <스스로 더불어 살아가는 교실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강의하고 있다. ⓒ 안준철


상구(가명)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아이다. 학급에서 축구를 가장 못하는 축에 든다. 공이 굴러오면 당황하여 헛발질을 하거나 어물어물하다가 상대방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기 일쑤다. 그래도 상구는 축구가 재미있다. “상구야, 상구야!”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공을 패스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상구가 가장 바쁜 곳은 바로 골문 앞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공이 상구에게 굴러온다. 골키퍼가 없는 완전한 찬스에서도 상구에게 공을 패스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상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슈팅력이 좋은 아이가 말이다. 그 아이는 왜 직접 골을 시도하지 않고 상구에게 그 기회를 양보한 것일까?

상구는 '짱'도 아니고 '일진'도 아니다. 그러기는커녕 학급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는 아이다. 존재감이 없다는 것! 그것은 누군가로(혹은 자기 자신)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구는 학급 단합대회 때도 학급 아이들로부터 늘 소외되어 있었다. 운동에 소질이 없을뿐더러 성격마저 소극적인 탓이었다. 어느 날 그 모습이 담임인 박춘애(광주 금당중, 도덕) 교사의 눈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단합대회 때 남학생들은 축구를 많이 해요. 그러다보면 운동에 소질이 없는 아이들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지요. 학급 단합대회인데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축구를 못하는 아이가 골을 넣으면 3점을 주자고 한 거예요. 한 골만 넣어도 3점이 되니까 그 아이가 골을 넣도록 도와주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겠지요.”

물론 그런 차별(?) 대우를 상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상구와 수준이 엇비슷한 다른 한 아이도 상구와 같은 조건으로 선발되어 상대팀에서 뛰었다. 그 아이도 상구처럼 친구들의 도움으로 생애 첫 골을 터뜨렸고, 그 짜릿한 순간을 경험한 뒤로는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약자를 배려하는 교사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였다.      

박춘애 교사를 만난 곳은 담양에 있는 전남교육연수원이었다. 그곳에서 지난 2월 2일부터 6일까지 닷새 동안 '중등 학급운영 직무연수'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난 연수 자리에서 박 교사가 다룬 주제는 ‘스스로 더불어 살아가는 교실 만들기’였다. ‘스스로 더불어’라는 글자에 건성으로 눈이 갔다가 다시금 눈길이 돌아가 멎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있는가?”
“아이들은 더불어 하고 있는가?”

우리 교육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을 성 싶어서였다. 박 교사가 담임교사로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도 ‘자치(스스로)와 관계맺음(더불어)’에 관한 것이다. 학급운영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학급 안에 자치를 어떻게 실현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의 산물로 탄생한 것이 이른바 ‘두레활동’이다. ‘두레’란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을 말한다. 박 교사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현실 속에서 ‘자치와 공존’의 의미가 깃들어 있는 ‘두레’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박 교사는 두레 구성원들의 석차 합산이 엇비슷하게 두레를 짠다. 그리고 시험을 볼 때마다 석차 합산이 줄어드는 두레에게 상을 준다. 진수(가명) 는 자기 두레에서 가장 공부를 못한다. 전교 석차가 거의 바닥 수준이다. 그래도 진수가 같은 두레에 속한 것을 꺼리거나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진수네 두레에는 전교 석차가 2등인 아이가 있다. 그는 다음 시험에서 전교 1등이 되었지만 두레 석차를 1점 줄이는데 그쳤다. 하지만 진수는 415등에서 370등을 하여 두레 석차를 45점이나 줄여놓았다. 본래 상위 그룹에서 석차를 올리기는 어려워도 하위그룹에서 석차를 올리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 진수와 같은 두레가 되길 바랄만도 하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은 진수의 석차를 올리기 위해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평소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진수도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험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으니 상상만 해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도움을 준 아이들도 자신을 위해 퍽 유익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함께 더불어 보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이 어디 있겠는가.    

박 교사는 아이들의 생활에 관여하는 능력을 교사의 전문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사에게는 무엇보다도 ‘교육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교사는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환히 웃으면서 들어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내린 교사평가에서 “늘 짜증을 내신다”가 “늘 환한 표정을 지으신다”로 바뀌었다.  

“교사 생활을 게으르게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들이 혹시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50%는 아이들을 위해서 했겠지요?”

겸양의 말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들 자기 욕심으로 아이들을 만나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런 못남과 부족함에 대한 자각일 터이다. 닷새 동안 연수를 받으면서 줄곧 머리를 스친 것도 바로 그런 자각에 관한 것이었다.

입시교육의 폐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그 심각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런 영혼 없는 교육을 하고 있으면서도 교사로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는 것.  

그렇다고 절망할 일은 아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실천하면 될 일이다. 박 교사의 아름다운 실천과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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