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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좋은 독서습관을 심어주자

짐 트렐리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자>

등록|2009.02.08 11:24 수정|2009.02.08 11:24
살아가면서 우리는 의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성장시켜주는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독서지도를 공부하던 중 권장도서로 지정된 이 책을 서점에 들러 사들고 나왔다. 저자나 내용에 관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기에 그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나 자신도 모르게 책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빠져서 책장을 넘기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안타까움 때문에 쉽게 읽어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자녀에게 책을 읽어준 까닭에 대해 "단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자녀에게 책을 읽어준 것뿐이었다"고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나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모른다. 나도 두 아이들에게 이스라엘 어머니들처럼 잠자리에서는 물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책 읽어주기를 했었다. 그러나 저자처럼 꾸준하게 읽어주지 못하고 도중에 중단해 버린 내 무지의 아픔이 다가와서 한없이 가슴을 짓눌렀던 것이다. 대학생이 된 두 아이는 이미 내 품을 떠나고 없다. 이렇듯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밤에 책을 읽으면서 만일 누군가가 그 등불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을 중지한다면 문화가 사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나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아쉽게도 나는 너무도 빨리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중단해 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해주는 등불이 되지 못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도 저자처럼 꾸준하게 책을 읽어주었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와 함께 책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행복해 할 것을, 그리고 엄마를 기억하며 자기 아이들에게도 책을 읽어줄 것을, 아이들은 부모와 똑같은 유형의 부모가 되는 것을, 문화는 그렇게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게 되는 것을….

한 가난한 퀘이커교도 여인이 길에 내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기르면서 매일 밤 디킨즈의 작품을 읽어주었는데, 그 아이는 훗날 성장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가 바로 제임스 미크너.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씨앗은 이렇듯 자그마하고 비싸지 않은 것이다.

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TV시청을 제한한 친구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가정에서도 실천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눈물 흘리며 배우자를 설득하여 마침내 성공한 사례도 매우 감동적이다. 업무상 먼 곳으로 장기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자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걸러야 한다는 것을 걱정하다가 카세트에 책의 내용을 녹음해주고 떠난 어느 아빠의 이야기는 자녀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이처럼 진한 감동들이 마지막까지 페이지 사이사이에 녹아 흐르고 있어 독자를 깊은 감동의 바다로 이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닌 체험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닮아간다

7차 교육과정의 목표는 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인 미래사회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배우고 익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창의력과 상상력 계발의 적극적인 방법은 독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경험도 독서 이상 없다. 뇌파 검사를 해보면 책에 빠지면 빠질수록 뇌가 크게 움직이는 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TV는 말초 신경만 움직일 뿐 뇌파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이처럼 좋은 독서교육을 언제 시작할까 하고 묻는다. 그러면 생후 5개월부터 잠자리에서 읽어주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독서습관은 어릴 때(7∼17세)에 결정된다. 인간의 두뇌는 필름과 같은 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의식,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에 100% 기록이 된다. 우리 기억의 저장량은 2천만 권(사실상 무한정)이라고 한다. 저장보다는 재생이 더 중요하지만, 일단 기억 속에 저장되지 않은 것은 불러낼 수가 없으므로 저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부모 몫이 아닌가 한다.

얼마 전 한 의사가 서울대학교 신입생 중 340점 이상의 학생들 100명을 대상으로 가정에서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조사했다. 그러자 100명 중 91명의 학생들이 거실에 앉으면 언제든지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아이들에게 원하는 마음과 사고가 먼저 어머니에게 선행되어야 한다. 토기장이 솜씨에 따라 같은 진흙으로 고려자기가 되어 나오고 뚝배기가 되어 나온다. 그 무엇보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신의 존재(절대자)처럼 본다. 어머니와 함께 자신감을 얻고 자신감을 잃는다. 어머니와는 동일시의식이 길러져 있다. 현재의 자기의식이 자기 인생을 만들어간다. 어머니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면 아이들이 닮는다.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부모만큼 중요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없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더 넓고 풍부한 경험의 영역을 보여줄 때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아이들 가슴속에서 싹트고 자라나게 될 것이다. 책은 그 넓이를 잴 수 없는 지식과 지혜의 창고이다. 그 어떤 유명 교수의 강의보다도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면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그 한 권의 책을 만나게 해주기 위하여 오늘도 나는 서점에서 한나절을 산다.

독서를 하고 싶은 욕구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에 의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와 가정이 아이들에게 입시교육으로 압박감만 주지말고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풍부해지도록 책을 읽어준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어른들이 반드시 가르쳐주어야 할 사랑과 정의와 용기,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화합의 정신이 물씬 녹아있는 좋은 책들을 오랜 기간 학교와 가정에서 읽어준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게 될까. 또 그들이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이 될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솔교육에서 발간하는 독서토론 신문
<주니어 플라톤>의 청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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