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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좀 당당하게 하면 안 되겠나?

조직범죄로 비화된 민주노총 성폭행 은폐 사건

등록|2009.02.09 11:11 수정|2009.02.09 11:12
영화 <폭로>가 주는 교훈
마이클 더글러스(톰 샌더스 역)와 데미무어(존슨 역)가 출연한 <폭로>(1994년) 만큼 성폭력의 속성을 잘 설명해주는 영화도 드물다.

한 미디어 회사의 지사장인 톰의 승진 기대를 무산시키고 낙하산 인사로 부임한 존슨 두 사람은 한 때 연인사이였다. 어느 날 존슨의 사무실에 불려간 톰은 그녀로부터 노골적인 구애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자리를 피했다. 존슨은 유능하고 평판 좋은 톰을 성관계로 엮어 자신의 꼭두각시로 삼으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오히려 톰을 성폭행 범으로 고발하게 된다.

회사나 사회는 은밀한 공간에서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당연히 남성과 여성일 것이란 고정관념을 가졌고 톰을 가해자로 몰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두 사람의 현장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가 발견되면서, 성폭행은 단지 남성이 여성을 강제로 범하는 것 뿐 아니라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권력으로 상대를 위협하여 행하는 것 또한 성폭행의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톰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결백은 입증됐지만 사건은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회사는 이미지를 고려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은 채, 두 사람의 합의로 원만하게 사건을 마무리할 것을 종용했으며,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회사의 압력에 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사주의 신임을 받는 존슨에 등의 권력자들에 비한다면 톰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조직범죄로 비화된 민주노총 성폭행 은폐 사건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참 교육을 표방하는 전교조 출신 위원장이 검찰의 수배를 피해 도피 생활을 하며 부당한 권력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상사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지만, 냉정하게 따지자면 여기 까지 사건의 본질은 민노총 간부 한 사람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이 사건은 가해자가 조직의 간부였다는 점에서 사건이 표면화 한다면 민노총은 성폭행 가해자를 간부로 둔 것에 대한 세간의 세찬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에 엎질러진 물을 되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조직에 가해지는 비난이 설사 도에 지나치거나 혹은 일말의 억울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럴 때일수록 사건의 진상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책임을 인정하며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면 민주노총은 성폭행 가해자를 간부로 둔 가해자인 동시에 일개인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인해 조직 전체의 명예가 심각하게 실추된 피해자로서 동정 받을 일말의 여지는 있었다.

그런데 조직의 간부들이 “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하는 데 사건이 알려지면 보수신문에 대서특필돼 조직에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는 해괴한 논리로 피해자를 압박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시도한 순간 이 사건은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넘어서 민주노총 차원의 조직범죄로 비화하고 말았다.

노동 운동에 대한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음해는 어제 오늘 있어온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사실과 호도를 구분할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들 언론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며, 이들 언론에 의해 사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이나 허위보도 여부가 그들의 판단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 언론의 대서특필’ 운운은 허튼 핑계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번 사건처럼 명백한 사실을 대서특필하여 여론화하는 일은 단지 해당 언론사의 소양 이거나 편집권의 영역에 속한 일이므로 보수 언론을 탓해야 할 이유도 없는 일이며 그들이 사건의 본질을 넘어서 음해를 시도한다면 그 때 나서서 정당하게 대응 반박하면 될 일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부도덕한 정권의 폭주와 국민의 권리 침해를 당연시 하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전개 중이며 최근에는 용산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조직적 책임 축소와 은폐기도에 대해 분개하며 궐기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참 교육’을 하겠다던 전교조 간부의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도 부족해 사건의 파장을 축소 은폐하기 위한 조직적 차원의 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개혁 세력이 표방하는 의(義)에 대한 본질적인 불신감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악법에 대항하여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비록 법쳬계 하에서는 불법이라 하나 양심 앞에 의롭다고 믿었기에 떳떳할 수 있었고 수구 기득권 세력의 불의를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위축될 대로 위축돼 거대 수구 정권의 위선과 기만에 맛서 투쟁하기에도 버거운 민주 개혁 세력의 입장에서 이번 일은 실로 부끄럽고 실망스러우며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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