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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교과서는 말하지, "한국은 민주주의 아냐!"

[주장]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로 본 한나라당과 MB정부

등록|2009.02.10 16:28 수정|2009.02.10 16:28
다소 졸립고 지루할 수 있는 고등학교 겨울방학 보충수업 시간. 현재의 정치 상황과 같은 정치적 쟁점의 나열이 아닌, 딱딱한 이론만이 난무하는 정치 교과서를 '베개'라는 특수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 나는 기를 쓰고 졸리움을 참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민주시민으로서의 '부름'이랄까. 교과서의 어느 한 지점에서 어느새인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로 본 한나라당-MB정부의 현주소

▲ ★나의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 ⓒ 한성용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 그 어느 곳에서나 화두인 정치사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손에 꼽는 것 중의 하나가 민주주의일 것이다. 민주주의. 그 단어를 단순히 다수결의 원리로 작동하는 정치체제의 한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여겨 왔던 나에게 'p 23의 더알아보기'는 섬뜩하기까지 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천재교육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 23쪽 '더 알아보기'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민주 정치를 가리는 기준'.

그 글에서 인용된 매키버(R.M. Maclver, 1882~1970)는 민주주의의 참과 거짓을 가리는 기준을 다섯 가지로 나누고, 그 민주주의의 기준에 대한 문항들 중 단 하나라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국가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무심코 그 문항들을 잠깐 읽어 내려가던 나는 정말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질문들에 대해, 내가 정치 수업은 내팽개친 채로 끊임없이 생각한 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이 정부 시책에 대해 반대해도 이전과 다름없이 심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첫 질문부터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왔다. 재벌들의 이익을 꾀하는 재개발을 위해 서민을 짓밟은 이명박 정부에 저항하던 서울 용산의 철거민들은 심신의 안전 보장 없이 그저 싸늘한 주검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의 시책에 반대되는 정책을 표방하는 단체를 자유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

물론 얼핏 보기에는 '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무려 1842개의 촛불 집회 참가 단체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여, 그들 단체는 앞으로 보조금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인터넷 신문 <레디앙> 보도: 경찰, 1842개 촛불단체 불법단체 규정) 따라서 이 질문 역시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셋째, 집권당에 대해서 자유롭게 반대 투표를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은 국민이 직접할 수 없고 그 대신 국회의원이 하기 때문에, 국회의 과반수인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서 집권당과 집권자에 대한 탄핵은 불가능하다. 이미 국민들이 집권당의 탄핵을 결정하는 투표를 자유롭게 임의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셋째 문항의 답은 단연코 '아니오'다.

넷째, 집권당에 반대하는 투표가 다수일 경우 정부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가?

역시 대답은 '아니오'이다. 집권당 신임-불신임 투표조차 불가능한데, 어찌 투표를 통한 정권 퇴진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다섯째, 이와 같은 문제를 결정하는 선거가 일정 기간 또는 일정 조건하에서 실시될 수 있는 입헌적인 조치가 되어 있는가?

'네'. 우리에게 그나마 희망의 빛줄기를 던져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번 4월의 재보선을 시작으로 하여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물론 그 한 표는 정부 여당에게 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출입문앞에서 검찰수사결과 발표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그러나 안타깝게도 위 다섯 문항 중 하나라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나라의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매키버는 말했다. 민주화 20년을 공공연히 말하던 우리들은 2009년 현재,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겨울 방학 보충 수업의 마지막 5교시 수업이었던 정치 수업을 마치고, 어지러움과 현기증을 느끼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에 가끔씩 머리 아플 때마다 듣던 노래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가져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철거민 건물과 청와대, 김석기 집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평소에 음악을 들으며 웹서핑을 즐기는 습관이 있는 나는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기사를 읽으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용산 참사의 원인은 오로지 철거민에게만 있으며, 경찰에게는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검찰 측의 항변 내용이 나를 크나큰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마침 평소에 좋아하는 뮤지션인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을 그 순간에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MB와 김석기, 그들이 사는 그 집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의 청와대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집을 재벌들의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재개발로 인하여 철거해야 한다면, 그리고 당신들이 그러한 사유재산권 침해에 저항하는 것을 상대방이 생명을 빼앗아 묵살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이토록 그들에게 직접 만나 던지고 싶은 질문을 이 대통령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결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 박진영씨의 '니가 사는 그 집'을 개사하여 목이 터져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나는 이 기사를 끝맺고자 한다.

MB 사는 그 집, 그 집이 철거민 것이었어야 해
석기 타는 그 차, 그 차가 민중 것이었어야 해
니가 직접 차리지도 않은 맛있는 음식, 니가 잡은 그 권력까지도
모두가 약자의 것이었어야 해 모두가 국민의 것이었어야 해~♬

-가수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 중, 개사한 내용-

▲ 지난달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현장에 투입되고 경찰이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며 진압작전에 나서자 일부 철거민들이 난간에 올라가 저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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