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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도 수출역군... "물 건너가도 역시 우리 것!"

[맛이 있는 풍경 67] 불황에도 끄떡없는 '안흥 찐빵마을'을 찾아서

등록|2009.02.11 12:06 수정|2009.02.11 12:06

안흥찐빵폭신폭신 달착지근하게 녹아내리는 안흥찐빵 ⓒ 이종찬


"안흥찐빵은 예로부터 선조들의 지혜로 막걸리를 이용 밀가루를 반죽한 후 숙성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찐빵을 만들어 먹었다. 안흥은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전에 서울~강릉을 오가는 나그네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중간지점으로 마땅한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 점심을 먹고 또다시 먼 길을 가야 하는 나그네들이 찐빵을 허리춤에 끼고 장도에 오르던 소중한 식품이었다." - 비문 '안흥찐빵의 유래' 몇 토막

강원도 횡성군에 가면 3가지 명물이 있다. 한우와 더덕, 찐빵이다. 그래서일까. 지금으로부터 5년 앞부터 횡성군 안흥면에 있는 야트막한 산비탈에서 밭농사와 글농사를 짓고 있는 작가 박도 선생은 "횡성에 와서 한우와 더덕, 찐빵을 맛보지 않고 그냥 가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며 잔잔한 미소를 띄운다.

이는 이 고장 맛을 대표하는 음식이 한우와 더덕, 찐빵이니, 이 세 가지만큼은 다른 고장에서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뜻이다. 그중 박 선생이 살고 있는 안흥을 대표하는 음식은 한 입 깨물면 팥과 함께 폭신폭신 달착지근하게 녹아내리는 찐빵이다. 안흥찐빵의 특징은 많이 달지 않아 쉬이 입에 물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쫄깃한 안흥진빵 속에 든 팥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깔끔한 뒷맛은, 달콤하기만한 서양 빵과는 그 맛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까닭에 찐빵 하면 누구나 안흥을 떠올리게 될 수밖에 없다. 행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달기 만한 안흥찐빵을 먹은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킥킥거리지 마시라. 그 안흥찐빵은 대부분 짝퉁이기 때문이다.

안흥찐빵안흥읍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이 찐빵마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여기저기 매달린 안흥찐빵 간판이 눈에 띤다 ⓒ 이종찬


안흥찐빵손으로 일일이 국산 팥을 고르고 있다 ⓒ 이종찬


"당장 손에 든 그 빵떡 내려놔이소!"

"앗따! 근동댁(나그네 어머니 택호)이 빵떡 하나 기막히게 쪄놨네"
"세터댁 아지메! 남의 빵떡을 와 훔쳐 묵는교?"
"야~야이~ 같은 동네 사는 사람끼리 빵떡 하나 가꼬 그라는기 아이다"
"같은 동네고 뭐고 간에 안 됩니더. 당장 손에 든 그 빵떡 내려놔이소!"
"아이고 무시라! 아(아이) 저기 그리 안 봤더마는 와 저렇노? 나중에 니 장개(장가) 갈 때 니 마누라한테 다 이를끼다."

나이가 지그시 든 사람들은 누구나 찐빵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그네도 그러하다. 그때가 아마 1960년대 허리춤께, 나그네가 초등학교 2~3학년 때였을 것이다. 나그네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뭐 먹을 게 없나 싶어 부엌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부엌 한 귀퉁이에 웬 아주머니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행여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 지게 작대기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갔더니 두 집 건너 사는 세터댁이라 불리는 아주머니가 태연하게 빵떡을 우기적우기적 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몇 개씩이나. 우리 마을사람들이 빵떡이라 부른 그 빵은 어머니께서 아침을 지을 때 시커먼 무쇠 솥두껑에 밀가루반죽을 붙여 만든 달콤하고도 맛이 기막힌 밀가루빵이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늘상 아침마다 '앙코' 없는 그 빵떡을 만들었다. 어머니께서 만든 그 빵떡은 나그네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곧장 막걸리 반 되와 함께 들에 나가 일을 하시는 아버지께 갖다 드려야 하는 새참이었다. 근데, 세터댁이 나도 함부로 먹지 못하는 그 맛난 빵떡을 몇 개씩이나 먹고 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날 수밖에.

안흥찐빵숙성 중인 안흥찐빵 ⓒ 이종찬


안흥찐빵숙성한 뒤 솥에 찌고 있는 안흥찐빵 ⓒ 이종찬


    
'전통', '원조', '토속' '옛날' '시조' 등 아휴, 헛갈려!

"근세에 와서는 농촌지역 농민들의 새참거리로 허기진 배고픔에 든든한 먹을거리로 큰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최근까지 전통적 제조방식을 고수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옴에 따라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삶의 여유를 갖기 시작한 현대인들에게 옛 고향의 정취와 향수를 자극하게 되면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해외로 수출까지 하는 우리 고장의 전통식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비문 '안흥찐빵의 유래' 몇 토막

2월 2일(월). 작가 박도 선생도 만나고 찐빵마을 취재도 할 겸 동서울터미널에서 낮 1시 5분 고속버스를 타고 안흥으로 간다. 날씨는 봄날처럼 포근하지만 차창 밖 풍경은 아직 땡겨울 그대로다. 1시간 50분 남짓 걸려 안흥읍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이 찐빵마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여기저기 매달린 안흥찐빵 간판이 눈에 띤다.

안흥찐빵 앞에 씌어져 있는 글씨들도 재미있다. '전통', '원조', '토속' '옛날' '시조' '할머니' 등. 저마다 도토리 키 재기하듯 이 집이 가장 오래된 찐빵집이라는 것을 간판 이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헛갈린다. 안흥 터미널에 도착하자 박 선생이 미리 마중을 나와 있다. 반갑다. 이렇게 외진 마을에서 오래 묵은 장맛처럼 살가운 선생을 만나다니.

근데,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에도 선생이 고속버스를 바라보며 자꾸 흘깃거린다. 사모님이 같은 차에 탔다는 것이다. 이런! 미리 알았다면 인사라도 하고 짐이라도 들어 줄 걸. 요즈음 사모님께서는 이 지역에 물이 부족해 서울에 볼 일이 있을 때마다 밀린 빨래를 한 보따리 들고 가서 세탁을 하고 온단다.

지금 강원도 지역 가뭄은 심각하다. 목욕은커녕 먹는 물도 모자란단다. 박 선생은 "앞으로 이대로 한두 달 더 가뭄이 계속되면 식수가 떨어져 도시로 나가 살아야 할 판"이라고 말한다. 박 선생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산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어 물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눈조차 많이 오지 않았다"며 "올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안흥찐빵안흥찐빵은 2008년 미국 상표등록을 마쳐 미국 특허청에 등록돼 있다 ⓒ 이종찬


안흥찐빵2001년 미국을 상대로 해외수출을 시작해 캐나다와 호주, 독일 등으로 지난해 8만3,000상자, 5억원어치를 수출했다 ⓒ 이종찬


"손님들이 먹어보고 맛이 좋다고 난리가 났지"

안흥찐빵집은 안흥면 사무소 주변에 17곳이 있다. 면사무소앞안흥찐빵, 안흥시골찐빵, 전통이옥래안흥찐빵, 박할머니안흥찐빵, 시조안흥찐빵, 원조안흥찐빵, 토속안흥찐빵, 옛날안흥찐빵, 유명한안흥찐빵, 할머니안흥찐빵, 옛맛그대로안흥찐빵, 안흥솔잎찐빵, 안흥민속찐빵, 심순녀안흥찐빵, ㈜안흥식품, ㈜밀원본가안흥찐빵, 안흥찐빵(합자)이 그 집들이다.

그중 지난번에도 몇 번 들러 안흥찐빵을 산 단골집 '면사무소앞안흥찐빵' 집과 우리 밀로 찐빵을 만드는 합자회사 '안흥찐빵(합)' 집을 들렀다. 먼저 '면사무소앞안흥찐빵' 집에 들어서자 주인 남옥윤(60)씨가 나그네를 마치 사위 맞듯 반갑게 맞이한다.

남씨는 "지금은 언니가 저어기 보이는 찐빵집을 따로 차렸지만 함께 찐빵 장사를 한 지가 40년쯤 되지" 한다. 나그네가 "하루에 몇 개나 팔리냐?"고 묻자 남씨가 "낱개로는 3천개 남짓 팔리고, 주말에는 5천 개 이상 팔린다. 여름휴가철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간다"며 빙그시 웃는다.

나그네가 다시 "진빵집을 하면서 어떤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냐?"고 묻자 "손님들이 와서 진빵을 잡숴보고 맛이 다르다고 할 때와 많이 팔리는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남씨에게 찐빵 만드는 법을 묻자 "국산 팥을 3시간 이상 삶아 간을 맞춘 뒤 진빵을 만들어 온돌방에서 1시간 동안 발효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띔한다.

남씨가 찐빵집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다. 남씨는 처음 이곳에서 호떡과 핫도그를 주로 팔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하루는 곁다리로 찐빵을 조금 해놓은 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남씨는 "손님들이 먹어보고 맛이 좋다고 난리가 났지. 그때부터 농사철이 되면 새참으로 많이 나갔고, 군인들도 휴가 때마다 선물로 사 들고 갔어"라며 옛추억을 더듬었다.

나그네가 인터뷰 중에도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한 손님은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빵 3박스만 주세요" 한다. 남씨가 "묶어주까?"하자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맛보기용 찐빵을 하나 손에 집어 들어 잽싸게 반으로 가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속에 보물처럼 들어 있는 팥이 보기에도 맛깔스럽다.

▲ 남옥윤씨는 "지금은 언니가 저어기 보이는 찐빵집을 따로 차렸지만 함께 진빵 장사를 한 지가 40년쯤 되지" 한다 ⓒ 이종찬


안흥찐빵안흥찐빵은 연간 116만 7,000상자가 생산돼 국내 대형 할인점과 홈쇼핑 등을 통해 전체 60%가 판매되고 있고, 그중 10%가 수출되고 있다 ⓒ 이종찬


안흥찐빵, 폭신하고 깔끔한 뒷맛은 발효와 숙성에서 나온다

"우리밀 가게를 하다가 12년 전부터 우리밀로 만든 안흥찐빵 집을 합자회사로 차렸습니다. 저희들은 생협에서 우리 밀을 구해 옛날 방식 그대로 막걸리로 밀가루 반죽을 한 뒤 발효를 시켜 만드는 '우리밀 안흥찐빵'과 '흑미찐빵', '단호박찐빵'을 만들고 있지요. 안흥찐빵을 더 많은 나라로 팔기 위해 다양한 재료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안흥찐빵김인기(49) 업무이사는 "주말과 휴일은 물론 평일까지 찐빵을 사려는 외지 차량이 몰려 지역주민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종찬


그 다음 들른 곳이 '안흥찐빵(합)'이라는 합자회사다. 이곳에서는 우리 밀로 만든 안흥찐빵(10개 4600원)과 흑미(10개 4500원), 단호박(10개 4500원) 등 여러 가지 재료를 활용해 만든 안흥찐빵을 국내와 해외로 판매한다. 이 조그만 산골마을에서 만들어지는 안흥찐방이 미국과 캐나다, 독일로까지 수출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김인기(49) 업무이사는 "안흥찐빵은 2008년 미국 상표등록을 마쳐 미국 특허청에 등록돼 있다"며 "2018년 4월까지 10년간 상표권 권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안흥찐빵축제 준비위원이기도 한 김 이사는 "2001년 미국을 상대로 해외수출을 시작해 캐나다와 호주, 독일 등으로 지난해 8만3000상자, 5억원어치를 수출했다"고 귀띔한다.

김 이사는 "안흥찐빵은 연간 116만 7000상자가 생산돼 국내 대형 할인점과 홈쇼핑 등을 통해 전체 60%가 판매되고 있고, 그중 10%가 수출되고 있다"며 "요즈음 판매업소가 21개로 늘어났고, 주말과 휴일은 물론 평일까지 찐빵을 사려는 외지 차량이 몰려 지역주민들의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흥찐빵은 횡성에서 나는 순국산 팥을 4시간 이상 무쇠솥에 넣고 푹 삶아 속을 만든다. 이때 단팥에는 인공 감미료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단맛이 적당히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밀가루를 막걸리로 발효시킨 뒤 반죽을 하고 찐빵을 만들어 다시 1시간 동안 방에서 숙성한 뒤 찌는 것도 안흥찐빵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이다.

해마다 10월 30일과 31일에 '안흥찐빵마을 한마당 큰잔치'를 열고 있는 안흥 찐빵마을. 인구 3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산골마을인 안흥에 가면 찐빵도 이젠 더 이상 추억거리로 몇 개 맛보고 마는 그런 음식이 아니다. 돈가뭄에 허덕이는 요즘도 안흥찐빵은 줄을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살 수 있을 정도이니, 그 맛에 대해 더 말을 해서 무엇하랴.
덧붙이는 글 안흥찐빵 한 박스 20개 7천원, 25개 8천원, 50개 1만6천원. 택배비는 4천원이나 7박스 이상 주문하면 택배비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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