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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에 그리움의 환한 불을 지피는 책

[서평] 구멍가게

등록|2009.02.11 11:11 수정|2009.02.11 11:11

일독한'구멍가게' 책자의 표지입니다 ⓒ 홍경석



쇼핑카트를 끌고 들어서면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곳이 바로 대형 할인 마트입니다.

우리 동네만 하더라도 길 건너에 최근 두 개의 큰 할인 슈퍼가 들어섰습니다.
그 바람에 기존에 있던 구멍가게 두 곳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렸지요.

당장에 불친절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한 구멍가게
주인의 고개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밑으로 많이 내려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쩔 수 없는 대세는 소비자는
다만 한 푼이라도 싼 가게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 - 구멍가게
(정근표 지음 샘터사 출간)>를 어젯밤과 오늘 아침까지 잇따라 읽었습니다.

이 책 저자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차리곤 늘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도 오남매와 먹고살고자 아침 일찍부터 참 열심히 삽니다.
당시의 구멍가게는 동네에 한 두 개뿐인 어떤
독점상권이었기에 그나마 열심히만 하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후일 아버지의 심한 근육통으로 말미암아 결국 구멍가게는 문을 닫게 됩니다.
가게 문을 닫던 날, 일곱 식구 모두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펑펑 눈물을 뽑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렵던 그 시절엔 구멍가게에 들어오던
돈도 없이 사는 티를 내려는지 해지고 떨어진 것이 참 많았지요.
하여 밤늦게 가게 문을 닫고 난 다음에 오남매는 엄마의 국방색
앞치마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폐를 살펴 밥풀 따위로 돈을 수선하곤 했습니다.

때론 다리미로 돈을 다려야했고요.
어머니가 늘상 죄인의 형틀처럼 허리에
차고 있던 앞치마 속은 주머니가 여러 겹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쪽에는 고액권을, 바깥쪽에는 잔돈이나 동전을 넣을 수 있었지요.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걸리는’ 외출의 기회에 그러나 어머니는
그 흔한 루즈(입술에 바르는 립스틱)조차 없어 아버지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완고한 아버지는 하지만 그깟 루즈 쯤은 안 바르고
가도 된다며 자못 가부장적인 기질을 발휘합니다.
나중엔 그예 어머니의 “나라는 년은 평생 이렇게만 살다
죽으란 팔자란 말요?”라는 대성통곡에 굴복하곤 했지만 말입니다.

이 밖에도 이 책엔 대부분의 동생들은 형이나 언니가 입던
옷과 교과서까지도 물려받아야 하는 ‘숙명’의 존재였음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큰맘을 먹어야만 갈 수 있었던 대중탕이었기에
목욕 뒤엔 반드시 어머니의 예리한 ‘검사’를 받아야 했던 기억과
지금처럼 밥통이 없었던 때문으로 밥공기의 뚜껑을 꼭 닫아
아랫목의 이불 속에 꼭꼭 감싸놓아야만 했던 그 시절의
슬픈 추억까지를 덩달아 기억의 우물물에서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그 시절, 하지만 그 때는
동네 사람들의 복덕방과 사랑방 구실도 했던
구멍가게가 우리의 추억에 그리움의 환한 불을 지핍니다.

다만 이 책을 덮으면서 아쉬웠던 건 그처럼 고생했던
오남매와 부모님의 이후 삶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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