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명동성당에는 예수가 살지 않는다

용산 참사 대책위 농성 '저지'... 가슴 아파할 분은 바로 예수

등록|2009.02.12 16:28 수정|2009.02.12 16:28

▲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하며 지난 11일 철야농성에 돌입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 대책위원회' 대표자들이 명동성당 계단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고, 작년 촛불 시국 미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가 안식년 발령으로 사목현장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축출되었을 때, 나는 천주교회가, 특히 지도자들의 보수 성향으로 인해 아주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한국 교회의 비극이고, 한국 사회의 비극이며, 한국인들의 비극이다.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 사회의 도덕적 영적 쇄신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포기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퇴행을 막을 만한 최종적인 중립적 권위는 이제 사실상 사라졌다.

이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력이자 가장 큰 장점이었던 사회 공헌과 청렴성은 결정적으로 훼손됨으로써, 한국 사회 내에서 천주교회의 위상은 장기적으로 퇴보할 것이고, 국민들의 호감도와 천주교에 대한 신뢰에는 금이 갈 것이며, 따라서 천주교회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보호해줄 필요를 못 느꼈는가?

결국 명동성당 사목위원회가 용산참사 범국민 대표들의 철야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관리를 요청하는 또 한 번의 수치스러운 사건을 일으켰다. 전 신자들의 성금을 모아 몇 년간 수리한 성당이, 더럽혀지는 게 싫었는가?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곳인데, 더러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그들을 보호해줄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는가?

명동성당 사목위원들은 사실은 철거민이란 존재 자체를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인가? 그들 때문에 청소비용이 많이 들었는가? 성당 화장실을 마음대로 더럽게 이용하는 꼴이 보기 싫었는가? 성당을 부수었는가? 기물을 파괴했는가? 그도 저도 아니면 솔직히 그들이 자기네 성당에서 더럽게 노숙하는 모양새가 보기 싫었는가?

몇 해 전 명동 성당이 집단농성하던 사람들을 내쫓으면서 성당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가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지하철에서조차 내 옆에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이 앉으면 자리를 피하는 게 심정이다.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걱정하지도, 염려하지도 않는다. 그냥 저런 사람과 함께 공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싫고, 당장 냄새나는 게 싫으니까 내가 자리를 피할 뿐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것까지 더해져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사람이 매일 같이 내 앞에서 시끄러운 소리로 떠든다면 그것도 조용한 침묵이 요구되는 공간에서 그런다면 누군들 보기 싫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의 이기심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정당화해야 한다. 왜 저 사람은 나쁘며, 나와 공유한 이 공간에서 왜 쫓아내야 하는지를 아름답게 포장한다.

거기에는 상식적으로 저항할 수 없이 매우 호소력이 있는 근거들이 제법 발견된다. 공공의 피해, 개인들의 물적 정신적 손실 등등.

예수 당시 예루살렘 대성전도 지금 한국 명동성당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너무나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근거가 아주 타당하게 제시되고, 그래서
실제로 성전으로부터 배제당해야 마땅한 이유가 지금보다 더 굳건히 받아들여지고 있던 당시 죄악의 이스라엘 사회에 대해서 예수 자신이 격렬하게 도전했고, 그런 체제를 바꾸고자 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명 중 하나는 사회의 주변부로 배제당한 이들을 다시 정당하게 중심으로 복권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지금 정말 많은 분노한 한국인들로부터 마스크를 벗김 당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강아무개 같은 사람도 있다.

차라리 예수에게 물어라, 왜 불가능한 걸 요구하느냐고...

▲ 2일 밤 서울 청계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용산참극과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국미사'를 마친뒤 추모미사 행렬이 명동성당으로 행진을 하다가 을지로 롯데백화점 앞에서 경찰들이 인도로 이동을 요구하며 사제단을 밀어내고 있다. ⓒ 유성호


우리는 예수에게 물어야 한다. 왜 당신은 그런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느냐고. 그래 가지고야 어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겠느냐고. 질서를 위해선 정당한 공권력의 집행이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고. 대체 어째서, 왜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불가능한 걸 요구하고 있느냐고. 우리는 모두 당신이 듣기에만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고 있단 걸 안다고. 지금 우리의 논리에서, 아니 그 때 당시에도 우리는 예수가 거짓말쟁이요, 선동가이자 몽상가라고 몰아세운다.

천박한 한국인이었다면, 당장에 예수는 "좌파 빨갱이"로 낙인 찍혀 매장당하고 축출되었을 것이다. 그가 왕권에 도전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었듯이,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사회 안전을 이유로 그를, 지금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대로 그렇게 "조속한 사형을 집행"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예수 살해는 역사 속에서 끝없이 반복되어 왔다. 대통령이 개신교회의 장로이고, 소망교회인지 뭔지 하는 대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천만 그리스도교 신자의 한국에서도, 예수는 바로 그들에 의해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을 당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한국인들은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치던, 예수의 피는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영원히 책임질 것이라고 장담하던 유대인들의 역사를 그렇게 반복할 것이다. 그런 역사적 후안무치 때문에 유대인들은 지금도 저렇게 학살을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몇 해 전 명동성당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 검찰, 경찰, 국정원, 국회, 행정부 이 모두가 합심하고 있는 걸 보면 어디가 어떻게 변한 건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세상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라지만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런 저런 법령을 다 끌어다가 죄인 만들거나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며, 공공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파렴치범으로 만들어 마땅히 사회에서 축출되어야 할 "인간 아닌 짐승"으로 정당화하는 지금의 마당에서 우리는 정말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우리는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정권과 생각이 같아서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은 아직도 너무나 위험한 사회다. 여론과 권력을 통해서 조작되는 이미지 속에서 거짓이 그렇게 쉽게 진실로 둔갑해 버려 사회에서 완전히 쫓겨나버리는 이 추악한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피난처를 갈구하고 있다.

"겉으로는 날 위하는 척하지만 속으론 날 비웃고 있구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어떤 공간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무리들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부당하다고 목 쉬어라 외쳐도 외면당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예수에게 반박할 것이다. "그 사람들 더럽고 지저분하며 우리 성전을 해치고, 비용을 발생시키며, 이미지를 망가뜨립니다." 예수는 마치 바리사이인들을 향해 그랬듯 그런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는 겉으로는 나를 위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비웃고 있구나."

불같이 화를 내던 예수의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너무도 간절히 듣고 싶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명동성당에서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괴롭다. 이미 오래된 얘기지만, 명동성당에는 예수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명동성당 사목위원회가 촛불 관련자들의 농성을 부정한 것은 스스로 명동성당이 한낱 관광지에 불과한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이 순간 가장 가슴이 아픈 사람은, 20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그리도 처절하게 배반당하는 기막힌 현실에 눈물을 흘리실 예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성전을 부수라.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 그 성전이 바로 한국의 명동성당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