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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레인이 두엄을 내다

새 시대 일자리에 적응하는 지름길

등록|2009.02.12 15:28 수정|2009.02.13 14:35

▲ 집 앞 밭에서 포클레인이 두엄을 내고 있다. ⓒ 박도




엔진소음에 잠이 깼다

요란한 엔진소음에 잠이 깼다. 웬일인가 문을 열고 밖에 나가자 두엄냄새가 진동했다. 내 집 앞밭에 포클레인이 두엄을 내고 있었다. 앞밭은 지난해까지 인삼밭이었는데 지난 가을 5년 만에 인삼을 수확했다. 올 봄에는 이 밭에다가 감자를 심는다고 한다. 농사꾼들은 인삼을 거둔 밭은 두엄을 엄청 넣어야 된다고 한다. 인삼이 4, 5년 동안 땅의 진기를 모두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내가 밭둑에 나가 두엄 내는 걸 구경하자 이웃마을에 사는 포클레인 기사가 인사를 했다. 그는 며칠 전에는 트럭으로 축사에서 두엄을 실어다가 앞밭에다 쏟더니 이제는 그 두엄을 포클레인으로 골고루 밭에다가 흩뿌리고 있었다.

요즘 농사는 사람이 짓기보다는 기계와 농약, 비료로 짓고 있다. 그래서 요즘 젊은 농부는 혼자서 100마지기도 짓는가 하면, 이웃 면 누구는 200마지기도 짓는다고 한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거짓말처럼 들렸으나 시골에 살면서 보니까 그게 요즘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기계나 농약, 비료가 더 발달하면 한 사람당 더 많은 농토를 농사지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꽤 부농으로 논 50마지기에 밭이 20마지기였다. 그 농토를 머슴 셋이서 지었다. 그래도 일꾼이 딸려 밭농사는 할머니가 거의 짓다시피 했고, 모내기 때나 추수 때는 삯일꾼을 들여야 제 때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날 농촌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 손모내기 장면 ⓒ 박도




연전에 이웃 갑천마을에서 농촌체험 학습으로 손모내기를 한다고 하여 참여한 적이 있었다. 20여 명이 옛날처럼 무논에서 못줄을 치고 모를 심는데 200 평 남짓한 곳을 한나절이나 걸렸다. 물론 일꾼 가운데는 생전 처음 모를 심는 도시민도 있었다. 애초에는 그 논 옆 200평까지 손모내기 하려던 주인이 보다 못해 벼 이양기로 모를 내는데 혼자 30분 만에 마치는 걸 보았다. 이양기 한 대가 쉰 사람 몫 이상을 하는 듯했다.

지난해 봄 앞집 노씨네 배추밭을 가는 걸 지켜보니까 1,800평의 밭을 트랙터가 두어 시간 만에 갈고 고랑까지 내주었다. 지난날 그 밭을 소로 갈 때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기계는 땅을 갈고 모를 심고 벼를 거두는 것만 하는게 아니었다. 지금 농촌에는 인삼을 캐는 것도, 감자를 캐는 것도, 고추를 말리는 것도, 거의 기계가 다 하고 있다. 밭에다가 농작물을 심을 때 비닐을 치고 심으니까 굳이 김을 맬 필요도 없다. 비닐 사이에 나는 풀마저도 제초제로 잡아버리니까 밭에서 김매는 아낙네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농촌에도 사람이 더욱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 사람과 소가 밭을 갈다 ⓒ 박도




▲ 트랙터가 밭을 갈다. 사람과 소가 사흘이나 할 일을 두어 시간에 마치다. ⓒ 박도




노동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연전에 중국 길림성을 가니까 아직도 모내기철에는 들판이 하얗게 사람들이 몰려 모를 내고 있었다. 모를 내다가 새참 시간이 되자 논둑에 몰려 먹을거리를 들고 있었다. 옛 우리 농촌의 모습으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해 겨울 인도네시아에 갔더니 논둑에다가 탈곡기를 세워두고 두 농부가 발로 탈곡기를 밟으며 낟알을 털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차를 세우고 몇 컷을 담아왔다.

13억이 넘는 중국이 앞으로 영농이 모두 기계화 된다면, 2억이 넘는 인도네시아 농촌에도 이양기와 트랙터, 콤바인이 모두 보급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들 나라에서 넘치는 노동력이 세계시장으로 쏟아지는 날은 인류의 축복이 아니라 대재앙의 날이 될 것 같다.

▲ 인도네시아 농촌의 벼 추수장면 ⓒ 박도




아니 벌써 그런 기미가 보이고 있지 않은가.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백수 인구가 3, 4백만이라고 한다. 농업뿐 아니라 전 산업체에서도 일자리를 기계에 빼앗기고 있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게다.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이 시점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그 기계를 잘 다룰 수 있는 기술을 가져야 살아남지 않을까?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그새 포클레인 기사는 일을 마치고 트럭에다 포클레인을 싣고서 사라졌다.

두엄이 흩뿌려진 텅 빈 밭을 창 너머로 바라보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젊은 세대가 가엽게 여겨진다. 이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노동에 대한 생각과 직종에 대한 귀천을 과감하게 버리는 게 새 시대에 적응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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