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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쉐? 우리 땐 '빵순이'였어"

[세상사는 이야기] 파티쉐 최미경씨

등록|2009.02.13 11:03 수정|2009.02.13 15:21

1케익클래스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케이크와 초콜릿을 만들어 가기 위한 손님으로 북적였다 ⓒ 박창우


누가 그랬던가, 음식은 ‘손맛’이라고. 손에서 소금과 설탕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손으로 버무리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정성이다. 음식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 번 더 버무리고, 한 번 더 간을 보는 과정에서 조리돼 나오는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같은 값의 케이크라도 제과점에서 산 케이크와 직접 만든 케이크의 맛은 확연이 차이가 난다. 정해진 비율에 따라 만들어진 맛을 따라갈 수는 없을지언정 정성이 밴 케이크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즐겁다. 물론 맛도 최고다.

전주시 객사에서 다가교로 향하는 길에 위치한 ‘케익클래스’는 그래서 요즘 더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양력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초콜릿과 쿠키,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가기 위한 사람들의 의뢰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밀려드는 손님들 덕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다’는 최미경(38) 대표를 만났다.      
   
평소보다 10~20배 손님 늘어

발렌타인데이가 맞긴 맞나 보다. ‘바빠서 인터뷰가 어렵겠다’는 최미경 씨와의 만남은 케익클래스를 세 번째 찾아가서야 간신히(?) 이뤄질 수 있었다. 그만큼 발렌타이데이를 맞아 이곳을 찾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초콜릿과 쿠키,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그 덕에 인터뷰는 서서, 앉아서, 쫓아다니며, 힘겹게 진행됐다.

“많이들 찾네요~. 평소에는 하루에 열 명 정도 손님이 오는데, 요즘은 그 열배, 아니 스무배 정도? 발렌타인데이가 코앞이다 보니까 케이크며 초콜릿 등을 집적 만들어 가기 위해 찾는 거 같아요.”

‘케익클래스’는 재료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본인이 직접 케이크의 데코레이션을 장식하고 초콜릿 모양이나 쿠키 등을 만들어 가는 가게다. 케이크의 가격은 보통 1만원에서 2만원 사이.

최미경씨에 따르면, 학생들과 젊은 여성들이 주요 고객이며, 남자 손님은 최근에야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케이크는 책자에 있는 수십여 가지 데코레이션 중 본인이 선택한 것을 만들 수 있고, 포장이나 그밖에 필요한 것은 도움을 요청 시 해결해준다.

배고픈 강습학원에서 어엿한 가게로

▲ 최미경 씨 ⓒ 박창우


5년 전 문을 연 ‘케익클래스’는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창업 아이템이었다.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케이크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도 아닌, 케이크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은 흔치 않았던 것이다.

“제가 서울에서 기술을 배우고 전주에 내려왔는데, 그때가 서른 살을 조금 넘긴 나이었어요. 그 나이 여자가 취직할 곳이 마땅히 없잖아요. 그래서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 일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강습학원 형태였는데, 배우러 오는 사람은 없고 만들어 갈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만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전향했죠.”

‘케익클래스’라는 상호명 역시 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학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최미경씨는 처음에 가게를 열었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배고픈’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그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어 가기 위한 손님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고, 한번 입소문을 타자 가게도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 올라섰다. 메뉴 역시 케이크에서 초콜릿과 쿠키까지 확장하게 됐다.    

"파티쉐? 우리 땐 ‘빵순이’였어요~"  

배고팠던 시기도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잘나가는 ‘파티쉐(파티시에)’. 최미경씨에게 파티쉐라는 말을 꺼내자 한참을 웃는다.

“하하! 요즘이야, 말이 좋아 파티쉐지, 우리 때는 빵순이, 빵순이라고 불렸어요.”

20대 중반에 케이크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 최미경씨는 당시 집안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선생님이다 뭐다 안정된 직장을 찾아 떠나는데, 여자가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자, 집에서 못마땅해 한 것이다. 심지어 집에서 ‘나가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니….

90년대 중반, 둥그렇고 밋밋한 케이크밖에 없던 시절, 최미경 씨는 캐릭터 케이크를 만드는 한 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런 식으로도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 것이다. 케이크 기술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최씨는 결국 회사에 들어갔으나 기술자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시다라고 하죠. 들어가서 설거지만 했어요. 하루 12시간 일하고 월급 50만원 받았죠. 생활이 안돼요. 그렇게 3~4달을 보냈어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꼭 내 작품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조카 생일 때 제 첫 작품을 만들어 선물을 해줬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마, 손님들도 그 기분에 가게를 찾는 거 같아요.”

내가 배운 기술 가르치는 게 남은 꿈

현재 최미경씨는 ‘케익클래스’ 운영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센터와  중·고등학교 클럽활동시간의 케이크 만들기 수업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젊었을 땐 몰랐는데, 이제와 보니 여자도 기술을 배우면 쓸 곳이 있고 도움이 많이 되네요. 그때 당시에야 이걸 배워서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냥 배우고 싶다는 열망뿐이었는데, 지금 와보니 좋잖아요. 하하~”

처음 가게 문을 열었던 고등학교 소녀가 이제는 대학졸업을 한다며 찾아오고, 또 자신이 만든 케이크를 가지고 웃으며 나가는 손님들을 볼 때면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는 최미경씨. 이제 최씨의 남은 꿈 하나는 처음 전주에 내려와 하려고 했던 강습이다. 힘들고 어렵게 배운 자신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다.

“케이크라는 게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아요. 그래서 저 역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요. 그걸 바탕으로 빠른 시일 안에 제가 배운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네요.”

원정하는 병사의 결혼을 금지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에 반대한 사제 발렌타인이 처형된 270년 2월 14일의 기념일과 초콜릿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을 선물하고픈 사람들은 ‘케익클래스’ 문을 노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나저나 ‘커플지옥 솔로천국’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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