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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가서 일제고사 보면 선생님 생각날 것"

[현장] 일제고사 문제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 "모두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자"

등록|2009.02.13 20:00 수정|2009.02.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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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너희들이 되길"지난해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가 12일 졸업식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영상편지. ⓒ 김도균


▲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가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생에게 쓴 편지를 건네주며 한명 한명씩 포옹을 해주고 있다. ⓒ 유성호


▲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6학년 9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박수영 교사에게 참스승님상을 주고 있다. ⓒ 유성호


"참사랑과 행복을 주시는 참스승상. 위 스승님은 2008년 (한 해) 동안 6학년 9반 한 명 한 명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시고, 활활 타오르는 참교육의 열정과 사랑으로 저희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참세상의 꿈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진한 감동과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상을 드립니다."

13일 오후 송파구 거원초등학교 6학년 9반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설명해줬다는 이유로 해임당한 박수영(37) 교사에게 상장을 건넸다.

박 교사는 목이 메는지 잠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꺼내들었다. 박 교사는 6학년 9반 30명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직접 써온 편지를 건네주고 한 명씩 끌어안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또 자신의 얼굴과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손수건도 하나씩 나눠주었다.

선물을 모두 나눠준 박 교사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르겠지만 모두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고 열심히 살자"고 말했다. 교실 뒤편에 있던 학부모 중 한 명이 '스승의 은혜'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내 합창이 되어버린 노랫소리 중간 중간 흐느낌도 섞였다.

눈물 흘리던 학부모 "중학생 될 내 아이 일제고사 안 봐도 된다고 할 생각"

▲ 후임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건네주자 뒤에 서서 아쉬워하며 바라보고 있다. ⓒ 유성호



▲ 학생들이 대형 현수막으로 만든 기념사진에 바램의 글귀를 적고 있다. ⓒ 유성호



▲ 학생들이 대형 현수막으로 만든 기념사진에 바램의 글귀를 적고 있다. ⓒ 유성호


박 교사는 이날 제자들에게 졸업장을 직접 나눠주진 못했다. 끝까지 그의 졸업식 참석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학교 측이 이날 한 발 물러서 제자들과 함께 졸업식장에 설 순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공식적'인 졸업식 지도는 또 다른 '담임' 교사의 몫이었다.

하지만 6학년 9반 학부모와 학생들에겐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박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이동하자, 학부모들은 각자 가져온 준비물들을 이용해 교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칠판 양 옆 게시판에는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자 새로운 출발이다, 선생님과 함께 있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적힌 대자보가 붙었고,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힌 노란색 풍선들이 교실 곳곳을 수놓았다.

칠판에는 아이들과 박 교사가 지난 가을 함께 찍은 사진을 출력한 대형 플래카드가 붙었다. 아이들은 이곳에다 박 교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적었다.

▲ 한 학생이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거원초등학교 교사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선생님 건강하시고 꼭 복직하세요. 그리고 나중에 만나요."
"선생님과 함께 졸업식 해서 행복해요."

아이들은 이날 졸업식을 굳이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눈물도 쉽게 보이지 않았다. 다들 박 교사가 다시 교단에 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조찬호(12)군은 "중학생 되면 일제고사 또 보라고 할 텐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생각나서 슬플 것 같다"며 "선생님 복직하시면 꼭 한번 모두 모여 보충수업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눈물을 흘린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졸업식장에서 한 학부모가 눈물을 흘리자 위로하고 있다. ⓒ 유성호


연신 솟는 눈물을 스커프로 찍어내던 정아무개씨는 "그동안 혼란과 슬픔이 있었지만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목소리를 냈고 함께했다"며 "어쨌든 이제 헤어지지만 선생님이 보여주신 교육의 참뜻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학부모 장경임(50)씨는 "박 선생님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선생님이었다"며 "사춘기인 아이들이 이번 일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마무리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특히 장씨는 "이번 일제고사 땐 아들에게 시험을 보라고 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일제고사가 제대로 된 시험이 아니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중학교에 아이가 올라가 '일제고사를 보게 됐다'며 상의를 한다면 나는 '안 봐도 된다'고 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수영 교사 "아이들이 좀 더 당당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 해임된 박수영 교사가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참스승님 상장을 보고 있다. ⓒ 유성호

오후 1시. 박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합동사진 촬영을 끝으로 이별 의식은 마무리됐다. 박 교사는 이날 학부모들과 '뒷풀이'를 약속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건네준 상장과 돌림글, 플래카드 등을 빠짐없이 챙겨 들었다. 끝까지 교실에 남아 있던 몇몇 학부모와 학생들은 그를 도와줬다.

박 교사는 "아이들이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졸업할까 걱정했는데 오늘 아이들이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즐겁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또 "남은 학기 동안 아이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 마음의 키를 자라게 하는 일들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어수선하게 돼 버려 아쉽다"며 "시간이 갈수록 지금의 기억들이 바래지겠지만, 이 경험으로 아이들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아이들은 반창회 때 할 이야기는 많을 거다. 어떤 일을 마주할 때도 '선생님은 그때 그랬지', '우리는 그때 그랬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이 경험이 아이들이 앞으로 좀 더 당당해지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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