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사람] 연암의 말, 피난은 대수가 아니다
[김갑수 한국전쟁 역사팩션 7회] '두 나라'
서둘러 자취생들을 보낸 김성식은 마당에 서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이 동란의 소용돌이에서 서울과 학교와 이 마을은 어찌 될는지. 세상이 바뀐다면 나의 처지는 또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 어떻든 나는 남측 체제에서 녹을 먹던 사람이다. 하지만 피난은 대수가 아니다. 손바닥 반절만한 38선 이남에 안전한 곳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 뜨거운 여름날에 어린 것들을 데리고 함부로 집을 떠날 수는 없다.'
그는 번역 중인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한 말을 떠올렸다.
조선 사람은 걸핏하면 피난하기를 좋아하지만 사실은 서울이 가장 안전하다. 특히 산으로 피난함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 하면 병나기 쉽고, 병나도 고칠 수 없으며, 며칠 안 가서 양식이 다할 것이요, 양식이 다하지 않더라도 도적에게 빼앗길 수 있다. 더욱이 세상과 등져서 난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를 터이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성식은 인민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는 옷과 양식 중 일부를 뒤뜰의 땅에 묻었다. 이럴 때 보화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먼저 묻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는 보화는커녕 그럴듯한 패물조차도 없었다. 그는 책상 서랍을 뒤져 대한민국 국채(國債)와 유사 서류들을 불살랐다.
일을 대충 마무리한 그는 동네 길에 나가 보았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모여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는 가게에 들러 밀린 외상값을 치렀다. 그리고 계란과 국수와 술 담배를 적당량씩 구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많이 들여놓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번다하게 느껴져 그러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농성(籠城)할 각오를 다졌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대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한 시간도 못 되어 거리 풍경이 확 변해 있었다. 수군거리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아이들을 들쳐 업은 채 피난 보퉁이를 꾸려들고 신작로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북한산을 올려다보았다. 모자에 풀을 잔뜩 꽂아 위장한 군인들이 하나 둘씩 산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선에서 밀려난 국군들이었다. 초라한 몰골의 그들은 걸음걸이에도 기운이 없었다.
북에서 내려오는 탱크는 국군의 대포알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돈암동 친척 집에 보내기로 했다. 작년 그가 <조선역사>의 인세를 받아 장만하여 친척에게 빌려준 집이었다.
아내 정숙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등에는 아직 백일도 넘기지 않은 아이를 업은 채 웃음을 보이며 돌아섰다. 그도 웃으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는 멀어지는 가족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는 눈에 힘을 주어 감았다 떠보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움직이며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납덩이 같은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빈 집에 홀로 남은 그는 다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유 없이 허탈하기조차 했다. 그는 나무 침대에 누워 두 팔을 깍지 끼고 천정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상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포성은 시시각각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이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엄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궁리해 보아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 죽더라도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대한민국 공보처의 허위방송
그는 방에 들어가 라디오를 켜 보았다.
"대한민국 공보처에서 알려 드립니다. 아침에 나간 수원 천도 보도는 오보입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처럼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있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선에서는 충용무쌍한 국군이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북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하지 말며 직장을 지키십시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포성은 한층 더 다가와 있었고 이제는 총소리까지 선연히 들려오고 있었다.
대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밖으로 나가 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너 나 없이 보따리를 들고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동네 지서다리 너머에 있는 은혜병원의 의사 고정술이 다가와 말했다.
"선생은 어쩔 양으로 그리 계신 거요?"
"혹시 동네를 비우라는 하달이 있었나요?"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나, 아까 어떤 군인이 와서 이 동네가 오늘 밤 전투지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오. 그러니 선생도 어서 피난을 해야 할 거요."
"고맙습니다."
김성식은 불안해졌지만 산이라고 해서 별반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는 연암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방에 들어온 그는 이불로 벽을 가렸다. 탄환을 막기 위해서였다. 방이 어두워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침대 위에 다시 누워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국방부 정훈국의 발표 사항입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서울에 설치되었습니다. 내일부터 미군 비행기가 전투에 참여합니다. 일선 장병과 후방 국민은 맡은 바 전선과 직장을 사수하십시오."
김성식은 위기의 시간에 국가의 공식발표를 믿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난리 때일수록 정부는 정직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법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 역시 바른 말을 해야 하는데 일시의 편익을 위하여 허위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이 곧 자멸의 길이라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난리일수록 가족과 함께 있어야
점심때쯤 되어서 방문이 열리더니 장인 장모가 들어왔다. 그의 처가댁은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장모가 집 안을 휘둘러보며 말했다.
"김 서방, 식구들은 어디 갔나?"
"돈암동 집으로 보냈습니다."
"잘했네. 하지만 온 마을이 비었는데 자네만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나?"
"산에 가서 고생하느니 침대 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어 볼 작정입니다."
이번에는 듣고만 있던 장인이 끼어들며 말했다.
"무슨 말인가? 우리도 지금 산으로 가는데 어서 동행하게."
"아, 네."
어른들의 걱정 앞에서 굳이 고집을 피울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처가 식구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기슭과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바윗돌 틈서리라도 의지할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는 마땅한 자리를 잡으러 돌아다니다가 지쳤다. 그래서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까운 소나무 그늘 밑에 앉았다. 아쉬운 대로 괜찮은 자리인 듯해서 조금 맘이 놓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가족을 다 보내 놓고 나 혼자 이게 무슨 꼴인가. 위험할수록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 가족 아닌가. 만약 돈암동에서도 산으로 피난해야 할 상황이라면 아내 혼자서 아이 셋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갑자기 그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그는 가족과 떨어진 자기의 처신이 이기적이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건너 산을 바라보니 군인들이 진지를 다져 놓았고 방향을 알 수 없는 포화가 불을 뿜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가 보아야겠습니다."
'이 동란의 소용돌이에서 서울과 학교와 이 마을은 어찌 될는지. 세상이 바뀐다면 나의 처지는 또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 어떻든 나는 남측 체제에서 녹을 먹던 사람이다. 하지만 피난은 대수가 아니다. 손바닥 반절만한 38선 이남에 안전한 곳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 뜨거운 여름날에 어린 것들을 데리고 함부로 집을 떠날 수는 없다.'
조선 사람은 걸핏하면 피난하기를 좋아하지만 사실은 서울이 가장 안전하다. 특히 산으로 피난함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 하면 병나기 쉽고, 병나도 고칠 수 없으며, 며칠 안 가서 양식이 다할 것이요, 양식이 다하지 않더라도 도적에게 빼앗길 수 있다. 더욱이 세상과 등져서 난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를 터이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성식은 인민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는 옷과 양식 중 일부를 뒤뜰의 땅에 묻었다. 이럴 때 보화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먼저 묻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는 보화는커녕 그럴듯한 패물조차도 없었다. 그는 책상 서랍을 뒤져 대한민국 국채(國債)와 유사 서류들을 불살랐다.
일을 대충 마무리한 그는 동네 길에 나가 보았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모여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는 가게에 들러 밀린 외상값을 치렀다. 그리고 계란과 국수와 술 담배를 적당량씩 구입했다. 마음 같아서는 많이 들여놓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번다하게 느껴져 그러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농성(籠城)할 각오를 다졌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대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한 시간도 못 되어 거리 풍경이 확 변해 있었다. 수군거리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아이들을 들쳐 업은 채 피난 보퉁이를 꾸려들고 신작로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북한산을 올려다보았다. 모자에 풀을 잔뜩 꽂아 위장한 군인들이 하나 둘씩 산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선에서 밀려난 국군들이었다. 초라한 몰골의 그들은 걸음걸이에도 기운이 없었다.
북에서 내려오는 탱크는 국군의 대포알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돈암동 친척 집에 보내기로 했다. 작년 그가 <조선역사>의 인세를 받아 장만하여 친척에게 빌려준 집이었다.
아내 정숙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등에는 아직 백일도 넘기지 않은 아이를 업은 채 웃음을 보이며 돌아섰다. 그도 웃으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는 멀어지는 가족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는 눈에 힘을 주어 감았다 떠보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움직이며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납덩이 같은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빈 집에 홀로 남은 그는 다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유 없이 허탈하기조차 했다. 그는 나무 침대에 누워 두 팔을 깍지 끼고 천정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상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포성은 시시각각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이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엄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궁리해 보아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 죽더라도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대한민국 공보처의 허위방송
그는 방에 들어가 라디오를 켜 보았다.
"대한민국 공보처에서 알려 드립니다. 아침에 나간 수원 천도 보도는 오보입니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처럼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있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선에서는 충용무쌍한 국군이 오늘 아침 의정부를 탈환하고 북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하지 말며 직장을 지키십시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그러나 포성은 한층 더 다가와 있었고 이제는 총소리까지 선연히 들려오고 있었다.
대문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밖으로 나가 보았다. 동네 사람들이 너 나 없이 보따리를 들고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동네 지서다리 너머에 있는 은혜병원의 의사 고정술이 다가와 말했다.
"선생은 어쩔 양으로 그리 계신 거요?"
"혹시 동네를 비우라는 하달이 있었나요?"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나, 아까 어떤 군인이 와서 이 동네가 오늘 밤 전투지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오. 그러니 선생도 어서 피난을 해야 할 거요."
"고맙습니다."
김성식은 불안해졌지만 산이라고 해서 별반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그는 연암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방에 들어온 그는 이불로 벽을 가렸다. 탄환을 막기 위해서였다. 방이 어두워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침대 위에 다시 누워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국방부 정훈국의 발표 사항입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서울에 설치되었습니다. 내일부터 미군 비행기가 전투에 참여합니다. 일선 장병과 후방 국민은 맡은 바 전선과 직장을 사수하십시오."
김성식은 위기의 시간에 국가의 공식발표를 믿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난리 때일수록 정부는 정직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법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 역시 바른 말을 해야 하는데 일시의 편익을 위하여 허위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이 곧 자멸의 길이라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난리일수록 가족과 함께 있어야
점심때쯤 되어서 방문이 열리더니 장인 장모가 들어왔다. 그의 처가댁은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장모가 집 안을 휘둘러보며 말했다.
"김 서방, 식구들은 어디 갔나?"
"돈암동 집으로 보냈습니다."
"잘했네. 하지만 온 마을이 비었는데 자네만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나?"
"산에 가서 고생하느니 침대 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어 볼 작정입니다."
이번에는 듣고만 있던 장인이 끼어들며 말했다.
"무슨 말인가? 우리도 지금 산으로 가는데 어서 동행하게."
"아, 네."
어른들의 걱정 앞에서 굳이 고집을 피울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처가 식구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기슭과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바윗돌 틈서리라도 의지할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는 마땅한 자리를 잡으러 돌아다니다가 지쳤다. 그래서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까운 소나무 그늘 밑에 앉았다. 아쉬운 대로 괜찮은 자리인 듯해서 조금 맘이 놓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가족을 다 보내 놓고 나 혼자 이게 무슨 꼴인가. 위험할수록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 가족 아닌가. 만약 돈암동에서도 산으로 피난해야 할 상황이라면 아내 혼자서 아이 셋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갑자기 그의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그는 가족과 떨어진 자기의 처신이 이기적이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건너 산을 바라보니 군인들이 진지를 다져 놓았고 방향을 알 수 없는 포화가 불을 뿜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가 보아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일기 <역사 앞에서>를 참조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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