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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더 원했을까?

'시간'을 소재로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 소설들

등록|2009.02.15 11:13 수정|2009.02.15 11:13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겉표지 ⓒ 문학동네


최근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개봉해서 인지 ‘시간’을 소재로 한 상상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마도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시간’을 두고 꽤나 많은 상상을 했다.

특히 과거로 돌아가는 경우나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한 것들이 많다. 소설들 사이에서도 많다. 소설가들은 어떤 상상력을 발휘했을까? 그것으로 무엇을 보여줬을까?
 

거꾸로 가는 시간을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개봉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동명의 원작소설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로 알려진 피츠제럴드가 원작자다. 그는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점차 젊어지는 어느 인간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기이한 인생’이다.

소설은 주인공 벤자민 버튼이 겪는 일들, 예컨대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외모 때문에 거부당한 일이나 늙어가는 아내와 달리 외모가 젊어지고 나중에는 아들보다 어려 보여서 겪는 일 등을 토대로 기이한 인생을 보여준다.

▲ <막스 티볼리의 고백> 겉표지 ⓒ 시공사


피츠제럴드는 이색적인 상상으로 환상적인 어떤 이야기를 선보인 셈이다. 그에 비하면 상상의 시작은 비슷하나 그 맛이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앤드류 손 그리어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 바로 그것이다.

<막스 티볼리의 고백> 또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그랬듯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점차 젊어지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앤드류 손 그리어가 소설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기묘한 인생이 아니라 한 남자의 사랑이다.
소설의 주인공 막스 티볼리는 청소년 시절에 만난 또래에게 단단히 반한다. 그래서 고백까지 하고 마는데 결과는 뻔하다. 노인이 소녀에게 고백했다 하여 난리가 난다.

그럼에도 막스 티볼리는 그녀를 잊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녀를 도우며 자신의 마음을 지킨다. 앤드류 손 그리어는 그 이색적인 상상에서 뜻밖에도 순정과 사랑을 만들어낸 셈이다. 

▲ <지하철>겉표지 ⓒ 문학동네


시간을 소재로 독특한 상상을 하여 가족의 사랑을 그린 경우도 있다. 일본의 국민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지하철>이 대표적인 경우다. 소설의 주인공 신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신지는 아버지가 가족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긴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형이 죽었다는 생각까지 하며 아버지를 보려 하지 않는다.
신지는 어느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내려보니 ‘과거’에 도착한 것이다. 어떤 과거인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과거다. 또한 아버지의 청소년 시절을 볼 수 있는 과거이기도 하고 사회인이 되어 돈을 막 벌기 시작한 과거이기도 하다.
이곳에 도착해서 신지는 무엇을 하는가? <지하철>은 아버지의 과거에 도착한 신지가 아버지와 연을 맺으면서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사다 지로는 신지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로 인해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족적인 사랑을 그려낸 것이다. 과거를 방문함으로써 인간애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셈이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겉표지 ⓒ 북스토리


일본소설 중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 책이 있다. 일본 SF 3대 거장 중 한명인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는 토요일 방과 후 실험실 청소를 하다가 ‘타임리프’, 즉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로 인해 가즈코는 무엇을 하는가? 대형트럭에 치일 뻔한 친구를 구하기도 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예언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대단히 좋은 능력일 수 있지만 가즈코는 이 능력이 싫다.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타임리프 능력을 얻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의미하는 바가 크다. 막연히 생각하면 시간을 넘나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이 주는 괴로움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츠츠이 야스타카는 재밌는 상상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인간적인 메시지까지 던진 셈이다.

▲ <시간 여행자의 아내>겉표지 ⓒ 미토스북스



반면에 비슷한 능력을 지닌 남자를 통해 사랑을 보여준 소설도 있다. 오드니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주인공 헨리는 시간을 넘나들고 있다. ‘시간 일탈 장애’ 때문이다. 갑자기 사라져 과거나 미래로 간다. 헨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은 아내 클레어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헨리의 아내가 되는 클레어, 그녀는 헨리를 만나기 전에 어느 순간에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 혹은 누군가에게 폭행당했을 수도 있다. 그 순간 헨리가 나타나 그것을 막아주고 또는 복수해줄 수도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복권 번호를 알아내서 많은 돈을 벌게 해줄 수도 있으니 헨리나 클레어에게 나쁜 일은 아니다.

나쁜 것은 헨리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클레어는 몇 번이나 혼자 남겨져야 한다. 그리고 헨리가 무슨 위험한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걱정하면서 지내야 한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좋은 일이다. 그 같은 장애마저도 사랑을 지키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복선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드리 니페네거는 시간 여행으로 그럴 듯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외에도 시간을 소재로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인 소설들은 많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왜 그런가?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지만, 그 실체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인간으로써는 상상하는 것으로 욕구를 분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가들도 마찬가지니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소설들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독특한 상상력은 물론이고 그것을 토대로 그만의 즐거움을 주는데 그렇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앞으로 누가 어떻게 욕구할 것인가? 그것은 또 어떤 상상력으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인가?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소설들을 기다리자. 마음껏 즐길 준비를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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