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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복귀 '시기상조론', 신경 안 쓴다  용산참사, 정치 존재이유 고민하게 해"

[인터뷰] 미국에서 만난 정동영 전 장관 "남북관계 1년간 밑지는 장사"

등록|2009.02.16 13:30 수정|2009.02.16 13:30

▲ 정동영 전 장관 ⓒ 김명곤


지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듀크대에서 유학중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3일 플로리다 올랜도를 방문했다.

4·29 재보선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정 전 장관은 지난달 17일 워싱턴에서 강연을 한 데 이어 12일 사우스플로리다 대학에서 '제4의 물결'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기자는 13일 정 전 장관을 만나 1시간 가량 남북문제와 정계 복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 전 장관은 남북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정부가 정책 리뷰를 하고 있는데 한국정부도 리뷰를 할 필요가 있다"며 "부시 정부 8년은 대북문제에 관한 한 적자였고 오바마 정부가 이것을 바꾸는 과정인데, 남쪽도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자투성이로 나타났으면 전면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1년간의 남북관계가 "밑지는 장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명한 노선을 천명하면 된다"면서 "분명한 노선이란 북을 대화의 실체로 인정하고 조건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4·29 재보선 출마설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13년 정치를 해오면서 선택과 판단의 기로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중요한 것이 '판단 기준'이었다"고 운을 뗀 후 "우리 국민이 어렵고 당도 어려운 상황인데, 무엇이 어려운 국민들께, 무엇이 어려운 당에 도움이 될 건가, 이게 제 판단 기준"이라고 말해 무게중심이 출마에 기울고 있음을 암시했다.

당내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시기상조론' 지적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다, 후배들 얘기에 노 코멘트…"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정 전 장관은 본국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인간을 파괴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면서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의 삶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 11일 사우스플로리다 대학 강연에서 '제4의 물결'이란 말을 했는데 '제4의 물결'이란 무엇입니까.
"그건 제가 창조한 용어입니다(웃음). 우리에게 제1의 물결은 농업혁명, 제2의 물결은 산업혁명, 제3의 물결은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정보 테크놀로지 혁명과 민주화의 물결로 전 세계에 통용되는 물결이겠지요. 한국엔 또 하나의 물결이 필요합니다. 바로 60년 분단 상황을 정치, 경제, 전략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물결,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결입니다.

앞으로 동아시아가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부상하게 되는데, 그 축에 중국과 일본이 있고, 그 사이에 한국이 있습니다. 동아시아가 부상하는 데 있어서는 중국 일본 한국이 세 발을 이루는 축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분단 상태가 지속된다면 동아시아 시대가 이뤄지는 데 부담이 됩니다. 세 발로 서기 위해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이 분단 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이 낙오자가 되지 않고, 세 축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시대를 맞게 됩니다."


"남북관계, 1년간 밑지는 장사... 대차대조표 만들어봐야"

▲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13일 올랜도 플로리다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MB 정부의 남북관계는 1년간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비판하고 "이제 북을 대화의 실체로 인정하고 조건 없이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에게 대화의 복원을 촉구했다. ⓒ 김명곤


- 이명박 정부 1년이 지나면서 남북관계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정 전 장관이 조만간 한국에 들어가 정치를 재개할 것이라는 소식에 들리는데,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십니까.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제 나름대로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웃음). 현재 오바마 정부가 (대북) 정책에 대한 리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과 직접 협상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오바마 정부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한국정부도 리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년 해봤는데 이제 대차 대조표를 만들어봐야겠지요.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실용적인 접근을 하겠다고 선언했잖습니까. 실용적 접근을 했으면 남는 장사가 되어야 하는데 밑지는 장사를 했습니다. 남북 공식 대화가 끊어졌지요. 남북교역도 줄었죠. 핵문제는 악화되고, 긴장은 높아졌고 불안정은 가중됐죠. 긍정적 자산은 없어지고 부정적 자산만 늘어났단 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중간점검을 해야지요.

부시 정부 8년 동안은 대북관계에 관한 한 전부 적자였고 오바마 정부가 이것을 바꾸는 과정인데, 남쪽도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자 투성이로 나타났으면 전면 검토해야 합니다."

-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오바마 정부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남북문제와 관련해서 현 한국 정부와 야당은 철학이 다릅니다. 오바마 정부는 두 갈래의 얘기를 균형 있게 들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 야당의 목소리를 좀 대변할 생각입니다."

-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게 남의 문제냐 나의 문제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문제잖아요. 우리, 남과 북이 주도해야지요. 6·15공동선언 전문에도 '우리 민족끼리' 논의해서 평화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지 않습니까."


"6자회담 돌리고, 한-미-북 삼각 축 작동시키면 변화 일어날 것"

- 그런데 현재 남북문제는 '우리민족끼리'라기보다는 '통미봉남'으로 가고 있습니다.
"남북공조와 한미공조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남북공조와 한미공조가 병행전략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6자회담이죠. 그러나 남북문제는 6자회담만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6자회담과 병행으로 북미대화가 필요하고 남북대화가 필요합니다. 결국 워싱턴-평양-서울, 이 삼각형이 움직일 때 삼각대화가 되고 6자회담이 돌아가고, 북한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임정부 때는 6자회담만 돌아갔지 북미대화는 끊어졌습니다.

남북공조와 한미공조가 잘 될 때 성과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9·19공동성명이죠. 그리고 또 클린턴 정부 말기 상황 두 군데를 보면 남북공조와 한미공조가 병행될 때 성과가 나왔거든요. 6자회담을 돌리고 한-미-북 삼각 축을 작동시키면 분명히 한반도 문제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답은 나와 있다고 봅니다."

- 부시 행정부에서는 과거 한국정부가 너무 앞서간다는 불만도 나왔지 않습니까.
"앞서간 게 아니고, 부시 행정부 시절뿐만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참 불운하게 워싱턴과 서울에 미스 매치가 있었습니다. 워싱톤에 진보 정부가 등장하면 서울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 서울에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워싱턴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 뭐랄까요, 참 불운해요. 그나마 한미공조가 됐을 때는 성과가 있었고 삐걱거리면 또 안 되고..."

"남북간 선언 이행할 필요 없다? 굉장히 비이성적인 얘기"


- 그런 논리로 보면 지금 남북관계 전망이 안 좋은 것 같은데요.

"북-미 대화는 돌아갈 것 아닙니까. 그럼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뭐냐. 남북대화를 빨리 복원하는 일이죠. 남북대화를 복원하고 워싱턴-평양이 돌아가면 자연히 한미공조에도 이상이 없게 되는 것이죠."

- 핵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05년 6월에 김정일 위원장하고 제가 핵문제를 가지고 허심하게 얘기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저와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아버지 유언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귀중한 기록이고,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 정부는 그 말에 대한 실천을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김정일 위원장과 '대화'해야 합니다. 특사를 보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공식적인 대화가 끊어져 있지 않습니까. 대화를 복원하는 건 간단합니다. 그것은 (한국정부가) 천명하는 것입니다. 대북정책에 대한 분명한 노선을 천명하면 됩니다. 북을 대화의 실체로 인정하고 조건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북을 대화의 상대, 협상의 실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이게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 김대중 정부의 6·15선언과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얘기에 이어 이를 이행할 필요가 없다는 (최근 이상득 의원의)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가 원수 간에 직접 서명한 문서와 약속을 부정한다는 것은 국제관례에도 어긋나고, 민족적 관점에서도 온당하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의 7·4공동성명도 유효하고,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양쪽의 국가원수가 합의한 엄정한 약속입니다.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헛웃음) ...... 뭐라고 할까. 누가 그랬어요? 굉장히 비이성적인 얘기입니다."

- 현 미국 정부에서 남북문제 해결에 우선 공식적으로 나서고 있는 인물이 힐러리 클린턴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힐러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힐러리에게는 가자 지구, 이란, 이라크 문제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미국이 특사를 파견할 경우,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레벨을 높일 필요가 있어요.

현재 남편인 클린턴이 북한 관계의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클린턴 시절인 1994년 북핵 위기 때 지미 카터가 북한을 방문, 김주석을 만나 성공적으로 위기를 모면케 했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클린턴이 임기 말에 북한을 방문하려 했다가 이루지 못했는데, 그때 다하지 못한 미션을 지금 하도록 한다면 모양새도 좋고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재보선 출마요? 한국선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던데"

▲ 정 전 장관은 4.29 재보선 출마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이 어렵고 당도 어렵다"면서 무엇이 어려운 국민들과 당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판단 기준으로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 김명곤


- 재보선 출마 문제를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정 장관이 복귀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전주 덕진에 출마하실 건가요?

"(웃음) 한국에서는 별로 (출마여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아직 발표시기가 안 됐습니까? 언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들어갈 때가 되면 들어가겠지요(웃음). 이미 워싱턴에서 충분히 얘기했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13년 정치를 해오면서 선택과 판단의 기로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판단의) '기준'을 중요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특히 우리 국민이 어렵고 당도 어렵잖아요. 무엇이 어려운 국민들께, 무엇이 어려운 당에 도움이 될 건가. 이게 제 판단 기준이죠. 이 기준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겁니다."

- '정 의원 출마는 시기상조다, 개혁공천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웃음) 후배들이 하는 얘기예요.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습니다. 후배들 얘기에 노 코멘트다 그게 기본(적 답변)이고...

저는 13년간 정치를 해오면서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옳지 않은가 기준에서 나름대로 일관되게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3선 국회의원직 사퇴를 누가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 의원직을 버린 사람입니다. 의원직을 버린다는 것이 정치인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1만2000명 대의원이 모인 전당대회에서 직선으로 70% 가까운 지지를 받고 당대표가 된 사람입니다. 누구도 저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하지 않았지만, 저는 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사퇴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 스스로에게 책임지려고 행동했고 국민과 당 앞에 책임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걸어갈지 그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년 7월에 듀크 대학에 오셨는데 공부는 얼마나 하셨나요.
"역사적인 선거, 또 80년 만의 경제위기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았습니다. 미국 국민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특히 미국의 리더십이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수습해 가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게 생생한 공부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갔는데, '아 정치의 힘, 정치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어요.

오바마 대통령이 이른바 통합의 정치, 포용 정치로 라이벌인 힐러리를 국무장관에 기용하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부시 정부에 이어서 계속 함께 일하도록 한 것이라든지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주요 국가사안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고 이런 모습들이 젊은 지도자지만 참 배울 게 많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용산 참사는 정치·정부의 존재이유 고민하게 만든 사건"

▲ 정 전 장관은 용산참사는 정치의 존재 이유, 정부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말했다. ⓒ 김명곤


- 이곳에서 용산참사를 보면서 어땠습니까.

"가슴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인천 부평동 철거민촌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치의 존재 이유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을 파괴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의 존재 이유, 정부의 존재이유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이번 참사라고 봅니다

물론 법은 준수돼야 하고 질서는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삶의 권리 또한 지구의 무게만큼 무겁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 인간의 삶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돈을 중심으로 냉정한 사회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좀 더 포용적인 사회로 발전되었으며 좋겠습니다. 철거민을 포함한 약자를 포용하는 사회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헌법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35조 3항에 '모든 국민은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돼있는데, 이것을 '모든 국민은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권리'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철거민 문제도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부의 역할이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의 역할'에 대해 말이 나온 김에 미국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 노선은 이미 실패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확대, 정부의 축소, 작은 정부, 큰 시장, 시장 만능, 복지 축소는 시대의 요구가 아닙니다. 또 한국에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복지 한국입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입니다. 정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사회, 포용적인 사회, 포용적 사회 통합적 자본주의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시장경제의 모형입니다. 그러니까 대기업과 부자 강자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중소기업 약자는 정부가 경쟁력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 정 전 장관이 올랜도 한인식당에서 지역 한인 인사들과 오렌지 카운티 경찰국장 등 지역 미국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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