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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롯데월드, 112층짜리 주차장 될라

[초점 8] '안보' 이어 '교통대란' 떠올라... 주민들 "지금도 시속 18km, 차 버린지 오래"

등록|2009.02.16 11:29 수정|2009.02.16 11:30

▲ 승용차들로 빽빽이 채워진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주차장(13일 오후). 이날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잠실사거리의 고질적인 교통 체증 때문에 상당수 주민들이 차를 두고 출근했다. ⓒ 손병관


비가 내린 지난 13일 오후 서울 잠실의 ㅈ아파트 주차장은 여느 아파트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차량 이용률이 늘어나기 마련인데, 아파트 주차장마다 차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아파트 주민들은 "우리들에게는 승용차가 장식품이 된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시속 18km 이내... 잠실주민은 왜 차를 버렸나

강남·북이나 성남 등지로 가기 위해 차를 몰려고 하면 인근 잠실사거리를 빠져 나가는 데만 교통신호를 4~5차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성질 급한 사람들은 차를 놓고 가기 일쑤. '거북이 걸음'의 교통사정을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 일찌감치 차를 '버리기로' 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잠실사거리는 서울과 경기도 남양주·구리·하남·광주·분당·용인 등을 오가는 버스들이 통과하고, 각종 통학·통근·전세버스 등이 승객을 태우는 교통 요충지. 10차선 도로를 통과하는 버스들만으로도 차량 정체를 빚는 곳인데, 지난해 1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버스중앙차로제를 실시한 후로는 개인 승용차가 이곳을 통과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송파구는 출퇴근시간대 잠실사거리의 평균통행속도에 대한 서비스 수준을 8등급 중 5번째인 E급(시속 18km 내외)로 평가하고 있다. 송파구가 자전거를 타기 위한 인프라를 일찌감치 구축해 '자전거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교통 체증이 그만큼 살인적이라는 현실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진짜 재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위례신도시와 동남권 물류유통단지, 문정 법조단지, 장지지구와 거여·마천뉴타운 개발, 제2롯데월드 건축 등이 모두 완료되는 2013년에는 잠실을 지나는 차량들이 지금보다 31%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남동부 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는 잠실사거리가 말 그대로 '주차장'이 되는 교통대란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재앙은 아직 멀었다... 제2롯데 신축 후 교통대란은 당연?

▲ 제2롯데월드 조감도. 112층 '수퍼타워'가 완공된 후 잠실 일대의 교통난이 우려된다. ⓒ 롯데


최근 국방부의 '전향적인' 결정에 힘입어 신축으로 가닥이 잡힌 제2롯데월드가 이 지역의 교통 체증을 부채질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초고층건물의 주인 롯데는 교통수요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테마파크를 짓지 않고 호텔 객실 수도 당초 700실에서 300실로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도 노력을 해도 건물 완공 뒤 백화점과 호텔 등의 상주인력 2만3000명을 포함해 1일 유동인구가 1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된다.

잠실사거리에 112층 건물이 들어서는 이상 지금의 인프라로 대규모 교통수요를 흡수하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롯데가 100층 규모의 초고층건물 설계안을 송파구에 처음 제출한 1995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서울시와 송파구가 가장 고민해온 문제도 서울공항 활주로라기보다는 교통난 대책이었다.

1990년대에는 잠실 일대에 고가도로나 지하도로를 추가 건설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이는 반대여론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고가도로 건설에는 대기를 더욱 오염시킬 것이라는 반론이, 지하도로 건설은 "지반이 약해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롯데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통영향 평가를 2005년 통과한 배경에도 뒷말이 분분하다.

서울시는 "건물 신축후의 교통수요를 지나치게 적게 예측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롯데에 세 차례나 보완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는데, 결국 그해 11월 29일 시 교통평가심의위원회는 ▲ 롯데가 650억 원의 광역교통개선비용을 기탁하고 ▲ 잠실사거리에 대한 교통체계개선사업(TSM)을 시행하는 조건으로 제2롯데의 교통영향평가서를 가결 처리했다.

당시 '시 교통평가심의위원회 결정'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서울에 '랜드마크 빌딩'을 세우고 건설 경기를 살리려는 이명박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 나돌았다.

650억원으로 교통문제 해결? 턱도 없다!

650억 원으로 이 지역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도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롯데는 올림픽대로와 탄천교를 잇는 탄천변도로 확장에 450억원, 잠실역과 이어지는 대중교통환승센터 건립에 200억원을 각각 기탁하기로 했는데, 송파구청이 요구하는 ▲ 올림픽대로 하부도로 연결 ▲ 잠실사거리 입체화 등의 부대비용들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잠실사거리 지하에 만들어야 할 지하환승센터의 경우에도 지반이 예상만큼 견고하지 않아 200억 원을 훨씬 상회하는 공사비가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롯데물산의 한 관계자는 "서울공항의 활주로 각도를 틀고 공군에 최신항법장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1000억 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마당에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나머지 문제는 서울시와 송파구청이 2005년에 제공하기로 한 비용으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반면, 송파구청은 "교통량 유발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시공사가 져야 한다"며 서울시가 향후 시행할 환경영향평가(건축물이 해당지역의 교통·환경·재해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제도)에 자신들의 뜻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춘복 송파구청 교통행정팀장은 "2007년 7월 정부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서 국방부의 반대로 제2롯데 건설이 불허됐기 때문에 2005년의 교통영향평가도 효력을 잃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2005년 이후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 행정조직으로서는 새로운 요구를 할 수 있다"며 "롯데가 650억 원으로 책임을 면하고 건물 공사를 강행하면 이 지역의 교통대란은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서울시와 송파구청 등 지자체에서는 롯데가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할 교통유발개선비용이 2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역의 환경단체에서도 제2롯데가 일으킬 교통란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강동·송파환경운동연합의 이세걸 사무국장은 "지금도 계속되는 잠실 일대의 교통란을 생각하면, 제2롯데 부지에는 초고층건물보다는 공원이 들어서는 게 맞는데 롯데가 고집을 꺾지않았다"며 "112층 건물이 기정사실화된 이상 지역 주민들과 출퇴근 시간대 운전자 등을 상대로 20일부터 교통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제2롯데가 전쟁시 군 작전을 방해할 것"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온 롯데는 이제 "평화시의 교통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진짜 전쟁'을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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