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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과 엇박자를 내는 '이란 음식'

[이란여행기 3] 고기는 싱겁고 샐러드는 시고

등록|2009.02.16 18:47 수정|2009.02.16 18:47

▲ 이란 여성의 복장, 차도르. 9살 이상은 의무적으로 머리카락, 목덜미, 엉덩이를 가려야 한다. 왜 하필 이 세 가지냐고 했더니 이 세 부분이 유독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했다. ⓒ 김은주


이란 항공에 오르는 순간 비로소 내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음을 실감했습니다. 기내에는 장미향이 가득했습니다. 장미향은 승무원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 향은 이란 사람들 누구나 갖고 있는 향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도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도 음식점에서도 어디서건 맡을 수 있는 냄새였지요. 그래서 난 이란의 냄새로 이 장미향을 기억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이란인들이 먹는 음식에서 이런 향을 일으키는 게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됐습니다. 왜냐면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가게가 향수 가게였거든요. 우리가 로션을 꼭 바르는 것처럼 이란인은 향수를 의무적으로 뿌리는 모양이었습니다.

비행기 표를 보고 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 남자 승무원이 대나무로 짠 바구니에 군것질거리를 돌렸습니다. 사탕을 건네는 남자 승무원의 팔은 검고 곱슬곱슬한 털로 뒤덮여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한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팔이지요.

그래도 이들 승무원들은 수염은 말끔하게 면도하고 있지만 기내의 다른 이란 남자들은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고 있었습니다. 털이 워낙 많아 면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여자승무원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천을 휘감았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면 안 된다는 듯 차도르로 모든 걸 가린 이란 여자의 모습은 수녀님을 볼 때하고 느낌이 같았습니다. 종교적이고 엄격했습니다.

참으로 대조적이었지요. 남자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수염까지 기르면서 털을 마음껏 드러내는 데 반해 여자는 머리카락 한 올도 숨겨야 하는 처지 때문인지 남자에게서는 다소 동물적인 인간의 모습을, 여자에게서는 자기절제가 엄격한 종교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간극이 아주 컸지요. 어쩌면 이게 이란의 두 얼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공항에서 처음 먹은 이란 음식. 보기와 달리 맛은 영 아니었다. ⓒ 김은주


비행이 시작되고  한 30분쯤 지나자 저녁이 나왔습니다. 한상 차려진 저녁을 보자 행복해졌습니다. 밥과 치킨입니다. 밥은 가늘고 길쭉하고 찰기가 없으며 치킨은 옥수수 스프 같은 것에 버무려져 나왔는데 하얀 쌀밥과 노르스름한 치킨은 보기에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첫 술을 뜨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지금 먹는 음식을 앞으로 28일간 먹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거부감, 걱정 뭐 이런 것이었지요, 보기와 달리 음식이 입에 안 맞았던 것입니다.

간이 안 맞았습니다. 치킨이라면 후추를 팍팍 치고 마늘도 많이 넣어서 고기 맛을 없애고 좀 짭잘하게 해야 먹을 만한데, 이건 무슨 닭고기 맛을 그대로 살린 것도 모자라 밍밍한 옥수수 스프에 담궜으니 내 입에는 정말 안 맞았습니다.

사실 난 음식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비야씨가 쓴 여행기에는 이란 음식이 맛있다고 돼있어서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이란음식을 내게도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녀는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 사람이고 난 내 것에 대한 고집이 강한 사람이니까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샐러드는 두 가지가 나왔는데 양상추와 양배추였습니다. 양상추는 프렌치드레싱과 함께 나왔고, 양배추는 당근 등의 다진 야채와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마요네즈 드레싱에 버무려져 나왔는데 둘 다 맛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샐러드는 단맛이 느껴지는 상큼한 것인데  이건 너무 신맛이 강했습니다.

모든 음식이 우리가 먹던 음식과 엇박자를 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린 고기는 좀 짭조름하게 먹고 드레싱은 좀 달짝지근하게 먹는 편인데 기내에서 나온 음식은 고기는 싱겁다 못해 밍밍하고, 드레싱은 너무 시었습니다. 우리가 먹던 음식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여행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먹은 이란 음식을 앞에 두고 기분이 현저하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가 폭삭 내려않는 순간이었거든요.  맛없는 음식이 기다리는 여행이란 기대할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여행인 게지요.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디저트는 맛있었습니다. 딸기향이 나는 푸딩은 너무 달지 않으면서 부드러웠습니다. 우리 큰 애가 말하길 중동에서 디저트가 시작됐답니다. 식후 단 걸로 입가심을 하는 디저트의 원조답게 디저트는 좋았습니다.

절대적 기준으로 봤을 때 이란의 주 요리인 케밥은 세계 3대 요리에 포함될 정도로 훌륭한 음식입니다. 허나 한국적인 맛에 길들여진 내게는 정말 맛없는 음식이 될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란 여행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난 한국에서도 치킨이나 피자, 스파게티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식만 먹는 스타일이었지요. 그만큼 우리 음식에 대한 고집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앞으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이란 음식에 조금씩 적응을 해서 이란음식을 즐겨 먹는 경지에 이르거나 내내 우리 음식을 고집하거나 입니다. 물론 더 바람직한 쪽은 이란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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