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아래에서 악마와 지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
지하세계와 악을 다룬 제프 롱의 <디센트>
▲ <디센트> 1권 겉표지 ⓒ 시작
이어서 세계의 곳곳에서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인간을 잔인하게 공격한다. 그것을 마주한 인간들은 거의 대부분 비참하게 살해당한다. 살았다 하더라도 충격 때문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지옥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것인가.
미지의 것을 초현실적인 장치로 삼는 것은 장르소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디센트>처럼 지하세계를 그린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디센트>는 눈에 띄는 요소가 많다. 첫 번째는 정밀한 구성이다. 단지 지하세계가 존재했다, 라고 한다면 <디센트>는 따분한 소설이 됐을 텐데 다행히도 소설은 지하세계의 곳곳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그렸다. 동시에 그곳에서 살아가는 어떤 ‘악’의 숨결과 그 역사까지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제프 롱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디센트>가 돋보이는 또 다른 점은 ‘악’에 대해 던지는 가볍지 않은 질문 때문이다. 지하세계에 지옥이 있다고 생각한 인간은 군대를 보낸다.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세력은 지하세계가 아직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고 판단, 돈을 주고 산 군대와 탐험대를 보낸다. 소유하기 위해서다. 지하세계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기 위한 계획인 셈이다.
이러한 계획에 경악한 사람들은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정복하던 때를 상기시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려 한다. 지하세계에 사는 ‘그들’이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또 다른 인간일 수 있기에 무작정 죽이면서 정복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자 그 세력은 그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고 응수한다. 제국주의 시절 백인들이 야욕을 채우기 위해 제국 밖으로 나갈 때를 연상시키는 대목인데 <디센트>에서는 이런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초반에 지옥을 언급하면서 미지의 지역을 토대로 공포심을 자극하지만 이내 우리가 두려워할 ‘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악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정체로 악마라고 규정지어준 그들인가, 아니면 그것마저 정복해 식민지 같은 것을 꿈꾸는 것이 악인가.
<디센트>는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이 넘친다. 인간의 마음을 두렵게 하는 악마를 그린데 이어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의 어떤 마음을 실감나게 그렸기 때문이다. 놀랍다. 자칫하면 뻔할 수 있는 소재임에도 <디센트>는 기대 이상의 수준에 도달했다. 제프 롱이 상상력을 더 확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새로움이 있고 생생하면서도 스릴 넘치는 묘사가 있다. 가독성도 뛰어나며 마음을 흔드는 힘까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매력이 넘친다. 뻔한 설정이라고 해서 외면한다면 후회할 만큼 그 매력이 돋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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