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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는 하루타와 살고 요네쿠라와 사랑을 나눈 것일까?

[서평] 11가지 빛깔로 만든 미우라 시온의 <그대는 폴라리스>

등록|2009.02.17 11:48 수정|2009.02.17 11:48

<그대는 폴라리스>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지음. 김주영 옮김. 문학동네, 2009. 원작/ 君はポラリス ⓒ 문학동네



"난데스까? 니혼진와 민나 소우데스까?"

받아줄 이가 없는 공간에 있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 어설픈 일본말을 허공으로 쏘아대며 중얼거렸다. ‘뭡니까? 일본인은 모두 그렇습니까?’ 설마, 일본인이 다 그럴리야 있을까 싶었다. 그냥 이 작가 한 사람이 지닌 독특함이 아닌가 싶었다. 그도 아니면, 내가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것이던가. 일본소설에 낯선 나는 연이은 일본소설 탐색에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고갯짓하기 바빴다.

희한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11가지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들여 엮은 책 이름은 일본 소설 <그대는 폴라리스>(문학동네, 2009)이다. 지은이는 2006년에 장편소설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제135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한다. 일본소설이 낯설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지 않을 수 없는 나는 이 소설이 작가가 데뷔 초기인 2002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면에 발표했던 '연애소설'들을 모아 엮은 것이라는 이 책 뒷이야기를 먼저 머리에 담아둔다.

폴라리스(polaris)는 뭘까. 북극성(작은곰자리 알파별)을 말하기도 하고 미 해군의 중거리 탄도탄에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는 약간 불친절한 설명을 하는 사전이 조금은 못마땅했다. 분명 ‘북극성’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는 폴라리스>를 집어 들고서 무심히 읽어갔다. 그리고 순간순간 소곤소곤 중얼거렸다. ‘작은곰자리 알파별, 북극성. 북극성은 생의 갈림길 같은 위험한 때에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고마운 별이라는데, 11가지 빛깔에 담긴 그들과 나는 북극성을 보았을지 그리고 우리는 북극성이 될 수 있을지 괜스레 궁금해.’

Love Letter, 금기, 왕도, 신앙, 보물, ... 11가지 주제로 엮은 사랑 이야기

아무래도 이 책은 목차부터 차근차근 끈덕지게 하나하나 봐야지 싶다. 물론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닌데 책날개에 적힌 ‘미우라 시온이 펼치는 11가지 러브 테마’라는 게 목차와 관계있는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나는 책을 다 읽었을 때가 되어서야 이 11가지 주제와 목차를 비교해봤다. 그러고 나니 조금이나마 더 이 책을 이해했다고나 할까.

11가지 주제와 목차의 관계는 이렇다. ‘Love Letter’는 오랜 기간 우정을 쌓아온 오카다와 데라지마가 데라지마의 연애 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영원히 맺지 못할 두 통의 편지’가 되었다. ‘금기’는 아내가 갓난아이에 불과한 아들을 지나치게 살갑게 대한다고 여기며 묘한 불안감을 느끼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배신하지 않기’와 연결된다. ‘왕도’는 고등학교 시절에 어떤 남자에게 겁탈을 당할 뻔했다가 친구 슌스케의 도움으로 살아나 순식간에 슌스케와 함께 도리어 살인자가 되고 그 비밀을 안고 서로 헤어졌던 이야기인 ‘우리가 한 일’과 잇닿았다.

‘신앙’은 미사에서 신비한 황홀경을 경험하는 일이 잦아 친구의 눈에 희한한 사람으로 비친 마리코와 이를 걱정스레 보는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담은 ‘밤에 넘치는 것’이 되었다. ‘보물’은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사회생활을 펼칠 꿈을 접고 집안 가업에 뛰어들게 된 꿈 많던 여성 도키코가 갑작스런 은사(恩師)의 부고 소식을 듣고서 은사에 대한 묘한 감정을 새삼 느끼는 이야기인 ‘뼛조각’과 호흡한다. ‘삼각관계’는 소리 소문 없이 외도하는 남편과 그 남편의 고등학교 후배인 유지 사이에서 울렁이는 감정을 느끼는 한 아이의 엄마인 사토코 이야기인 ‘페이퍼크래프트’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페이퍼크래프트’는 종이로 만드는 모형(작업)을 일컫는다.

‘결혼과 가난’은 번듯하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아기자기한 삶을 꿈꾸었으면서도 배경도 수입도 불분명하고 일정치 않은 남자 스테마쓰와 동거하는 우하네가 어느날 스테마쓰의 뒤를 밟으며 그의 삶을 알아가는 이야기인 ‘숲을 걷다’와 연결되었다. ‘공동작업’은 회사에서 접한 유기농 식단 생활에 혹한 사요리가 도시아키에게 이를 강요하다 나중에는 그 반대가 되면서 새삼 도시아키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 ‘우아한 생활’로 펼쳐졌다.

나머지 세 주제 중에서 ‘마지막 사랑’은 우연히 아사코의 연인이 된 하루타(春太)가 아사코의 또 다른 사랑(아니면, 그저 친구일지도 모르지만 알 수 없다.)인 요네쿠라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사랑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이야기인 ‘하루타의 일상’과 맞닿았다. ‘나이차’는 어린이 유괴 사건이었지만 어린 시절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았을 겨울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가 눈에 띄는 ‘겨울의 일등성’이 되어 괜스레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첫사랑’은 첫 번째 이야기인 ‘영원히 맺지 못할 두 통의 편지’에 등장했던 오카다와 데라지마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이어질 편지의 첫줄’인데, 이 이야기는 두 남학생이 학교 축제 때 체육관 창고에 갇히면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 없는 감정을 담았다. 학창 시절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았을 남자들의 우정을 넘어서는 어떤 감정을 그 체육관 창고에 남긴 채로.

<그대는 폴라리스>는 이렇게 일본인 특유의 정제된 감정과 그러면서도 자유분방한 삶이 어지럽거나 혹은 자유롭게 섞인 11가지 단편들을 담고 있다.

절제된 삶과 자유로운 감성, 일본인만의 연애 세계일지 아니면...

“할 말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분조에게 전하고 싶은 건, 나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중략) 날 믿지? 분조는 이렇게 물었다. 몇 번을 물어도 나는 그를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분조다. 가는 선을 이으며, 누군가와 밤하늘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 여덟 살 겨울의 그날부터 강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밤길을 비추는 희끄무레한 일등성처럼. 그것은 시리도록 먼 곳에서, 신비한 인력을 지니고서 언제까지고 나를 지켜주고 있다.”(<그대는 폴라리스>에서 ‘겨울의 일등성’ 일부분,  322-323)

<그대는 폴라리스>는 밤하늘에 빛나는 어떤 별이 되어 우리에게 기분 좋은 추억이나 짜릿한 일탈 그리고 이상야릇한 감정들의 향연을 펼쳐주기 전에 일본인의 삶, 감성, 연애 감정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페이퍼크래프트’와 ‘숲을 걷다’에서는 프리터(free와 arbeiter의 합성어로서, 일정치 않은 수입을 얻는 삶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살아가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를 연상케 하는 삶이 보인다. 일본인 특유의 정제된 태도보다는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삶을 자유롭게 펼쳐가는 모습들이 쉽게 눈에 띈다.

‘하루타의 일상’ 같은 경우, 나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것이었는데, 엄연히(!?) 연인 관계인 아사코와 하루타 사이에 요네쿠라라는 한 남자가 끼어들어 누구누구가 연인인지 또는 친구인지 알 수 없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루타는 아사코를 한없이 사랑스런 여자친구로 여기면서 요네쿠라에게도 꽤나 남자다운(?) 너스레를 떤다. 이들은 한 집에서 만나기도 하며 하루타는 아사코와 요네쿠라의 뜨거운 사랑을 같은 공간에서 지켜봐야하는 일에도 우울했다가 화를 냈다가 어느새 참고 견디며 그저 아사코만 생각한다.

이렇듯 <그대는 폴라리스>는 제각각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일본인의 감성 세계에 대해(아니면, 작가 특유의 감성 세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게 하는 미우라 시온의 11가지 빛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적잖은 흥미로움과 궁금증과 난감함을 동시다발로 안겨주는 이 책을 새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이제는, 이 책을 읽고 서둘러 쏟아낸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금 다른 독자들 앞에 내놓는다.
덧붙이는 글 <그대는 폴라리스> 미우라 시온(三浦しをん) 지음. 김주영 옮김. 문학동네, 2009.
(원작) 君はポラリ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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