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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54) 작은 미소생물

[우리 말에 마음쓰기 554] '시작과 시작', '처음과 비롯'

등록|2009.02.17 14:00 수정|2009.02.17 14:00
ㄱ. 시작과 시작

..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아이들과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김현수, 청어람미디어, 2004) 20쪽

이 보기글은 퍽 아슬아슬합니다. 생각없는 이가 이 글을 썼다면 “우리의 이야기의 시작은”처럼 첫머리를 열고, “아이들과의 만남에서부터”로 가운데를 꾸미며, “시작하는 것입니다”처럼 마무리를 지었으리라 봅니다.

 ┌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
 │→ 우리 이야기는
 │→ 우리 이야기 첫머리는
 └ …

그래도 “우리의 이야기”라 안 하고 “우리 이야기”라 적으니 반갑습니다. 다만, 첫머리부터 ‘始作’이라는 말에 갇혀서 아쉽습니다.

 ┌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 만나는 데서부터 비롯합니다
 │→ 만나는 데서부터 펼쳐집니다
 │→ 만나는 데서부터입니다
 └ …

더군다나, 글 끝머리에 또다시 ‘始作’이 나타납니다. “시작은 시작합니다”처럼 적은 셈입니다. 글쎄, ‘첫머리’가 어떠했는가를 여러모로 힘주어 밝히고 싶었기에 이와 같이 글을 썼다고 할 텐데, 아무리 힘주어 밝히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글을 이렇게 써야 했을까 싶습니다. 좀더 생각해 보고, 좀더 헤아려 보고, 좀더 살펴보고 쓸 수 없었으랴 싶어 아쉽습니다.

 ┌ 우리 이야기는 아이들과 만나는 데에서 비롯합니다
 ├ 우리 이야기는 아이들과 만나면서 펼쳐집니다
 ├ 우리 이야기는 아이들과 만나는 데부터입니다
 └ …

우리들은 우리 말 ‘비롯’을 잃거나 버리면서 한자말 ‘始作’을 받아들여서 온갖 곳에 두루 씁니다. 생각해 보면, 온갖 곳에 두루 쓸 만한 값이 있어서 ‘비롯’은 버리고 ‘始作’을 쓰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첫머리’와 ‘처음’과 ‘첫끈’과 같은 낱말이 있으나, 이러한 토박이 낱말로도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가꾸려는 마음도 안 키우는지 모릅니다.

처음은 엽니다. 첫머리도 엽니다. 첫끈은 당깁니다.

 ┌ 우리는 처음에 만나기부터 했습니다
 ├ 우리는 처음에 그저 만났습니다
 ├ 우리는 맨 처음에 물끄러미 만났습니다
 ├ 우리는 맨 처음에 생각없이 만났습니다
 └ …

처음을 알뜰히 열면서 속살을 알뜰히 가꾸고 마무리도 알뜰히 여밀 수 있습니다. 첫머리는 알뜰히 열지 못했으나 속살부터 알뜰히 가꾸는 가운데 마무리도 알뜰히 여밀 수 있습니다. 첫끈도 알뜰히 당기지 못했고 속살도 알뜰히 꾸리지 못했지만 마무리는 알뜰히 여밀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 글 한 줄, 그리고 삶 한 자락입니다. 차근차근 북돋우고 돌보면서 여밀 수 있지만, 차근차근 북돋우지도 못하고 돌보지도 못하면서 어영부영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만남 하나를 사랑스레 껴안으면서 빛과 소금이라는 보람을 얻을 수 있는 한편, 만남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내팽개치면서 아무런 보람 하나 못 얻을 수 있습니다.

ㄴ. 작은 미소생물

.. 호수가 녹색을 띠는 것은 작은 조류가 많이 부유하기 때문이다. 수중의 미소 생물을 플랑크톤이라 부른다 ..  <하구둑의 환경영향>(무라카미 데쓰오,사이죠 야쓰카,오쿠다 세쓰오, 한국해양연구원, 2003) 28쪽

“녹색(綠色)을 띠는 것은”은 “풀빛인 까닭은”이나 “푸른 빛이 나는 까닭은”으로 손봅니다. ‘부유(浮遊)하기’는 ‘떠다니기’로 손보고요. ‘조류(藻類)’는 ‘말무리’로 손보면 되고, ‘수중(水中)의’는 ‘물속’으로 고칩니다. “플랑크톤이라 부른다”는 “플랑크톤이라 한다”로 고쳐 주고요.

 ┌ 미소(微小) : 아주 작음
 │   - 미소 조직
 │
 ├ 작은 조류가 (o)
 └ 미소 생물을 (x)

앞에서 “작은 조류”라 적듯이, 뒤에서도 “작은 생물”이라 적으면 됩니다. 작으니까 ‘작은’을 붙입니다. 아주 작다면 “아주 작은”을 붙이면 됩니다. ‘작디작은’을 붙여도 되고요.

 ┌ 수중의 미소 생물을
 │
 │→ 물속에 사는 작은 생물을
 │→ 물속에 사는 작디작은 생물을
 │→ 물속에 사는 아주 작은 생물을
 └ …

작기에 ‘작다’고 하듯, 크기에 ‘크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말매무새를 살펴보면, ‘작다’라 못하고 ‘微小’를 찾듯, ‘크다’라 못하고 ‘巨大’를 찾습니다. 크기가 참 작으니 ‘아주 작다’나 ‘참 작다’라 말하고, 크기가 참 크니 ‘아주 크다’나 ‘참 크다’라 말합니다. 또는 ‘엄청나게 작다’나 ‘엄청나게 크다’라 말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작다’나 ‘어마어마하게 크다’라고도 말합니다.

느낌을 살리고 흐름을 북돋우면 됩니다. 말씨를 키우고 말투를 어루만지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사랑하고 아끼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글을 좋아하고 껴안으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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