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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용 교수 "나도 국방부에 속은 느낌"

[인터뷰] "국방부 인용 자료는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 연구 결과물"

등록|2009.02.17 17:04 수정|2009.02.17 17:04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23일, 2009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여론조사 결과 대체복무를 반대하는 의견이 68%로 나와 아직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이로써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2007년 결정과 지난해 5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국회에 대체복무제 도입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모두 뒤집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국방부의 발표에 반발하고 나섰다. 대체복무 찬성 비율이 높았던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예정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게 주된 목소리다. 정부가 국제 사회의 인권 흐름에 역주행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개신교 안에서도 국방부의 결정에 대한 논평이 나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김삼환)와 기독교사회책임(대표 서경석)은 약속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이사장 곽선희)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보류 결정을 환영했다.

2001년부터 이어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관한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시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관점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재조명한다. (뉴스앤조이 주)

▲ 진석용 교수(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는 지난해 8월 병무청의 의뢰를 받고 6개월에 걸쳐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영거부자 사회복무체계 편입방안'을 연구했다. 국방부는 연구 결과물 수백 쪽 중 여론조사 부분 몇 쪽만으로 "대체복무제 보류"를 발표했다. ⓒ 뉴스앤조이


시행 염두에 둔 연구 보고서가 "도입 보류" 발표 근거로 둔갑

2008년 12월 24일 국방부는 "시기상조"라며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던 대체복무제를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근거는 진석용정책연구소가 병무청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에 수록된 여론조사 결과였다. 연구 보고서의 제목은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입영거부자 사회복무체계 편입방안 연구 보고서'다.

연구 보고서의 제목은 국방부 발표 내용과 반대다. 제목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대체복무제 시행을 염두에 둔 연구 보고서임을 알 수 있다. 국방부는 도입 보류를 발표하며 수백 쪽에 달하는 연구 보고서 내용 중 여론조사 부분 몇 쪽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6개월간 애써서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을 연구한 진석용 교수(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는 국방부의 발표에 당혹감과 실망감을 나타냈다.

진석용 교수는 스스로 "나는 대체복무제 도입론자"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2월 10일 진 교수를 만났다. 진 교수는 대체복무제 도입 계획을 뒤집은 국방부 발표의 문제점과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주장을 펼쳤다.

진 교수는 지난해 8월 연구를 시작했다. 병무청은 진석용 교수에게 대체복무제 도입 시 운영할 관리 기구와 부서, 인력 구성, 예산, 심사절차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연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진 교수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의지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연기 발표에 대한 진 교수의 생각은 한마디로 "속았다"이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외국 사례까지 꼼꼼히 살펴 도입 방안을 연구한 결과물 수백 쪽 중 국방부가 사용한 것은 여론조사 내용 몇 쪽뿐이었기 때문이다.

"대체복무제는 여론조사로 결정할 문제 아냐"

진 교수는 국방부가 여론조사를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여론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 내용이나 시행 기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론조사가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내용은 보고서에도 설명했다.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물은 이미 20여 개나 나와 있으며 결과는 일관성이 없다.

"동일한 질문으로 조사해도 3일 후면 결과가 달라지는 게 여론조사다. 더구나 우리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규범적인 여론조사다. 조사 대상자들은 대체복무제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군대와 대체복무제 중 하나를 선택했다. 한국 사회가 규범적으로 병역거부 문제를 반대해 온 것은 이미 아는 내용 아닌가. '소수자 인권'이 핵심 쟁점인 대체복무제는 여론조사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많이 알수록 찬성, 모를수록 반대

▲ 진석용 교수가 보고서에 "여론조사 결과가 객관성을 갖기 어렵다"는 내용을 기록한 부분을 지목하고 있다. ⓒ 뉴스앤조이

진 교수는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문제는 내용을 많이 알수록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반면 모를수록 부정적으로 반응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집단에서 대체복무제에 찬성 여론이 월등히 높은 것은 이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 교수의 연구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 중 서울대사회과학연구소(소장 김세균)가 조사한 '사회지도층 의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0% 이상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찬성했다. 진 교수는 한국 사회는 아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의 역사와 국제적 실태를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실시하면 병역기피자가 속출하고 국방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둘 다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입 초기, 대체복무를 하려는 이들이 많이 나올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무 기간을 길게 설정하면 병역기피 수단으로 대체복무를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 연구 보고서에 수록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체복무 기간으로 1~1.5배를 선호하는 응답이 다수였고 2배 이상을 요구하는 의견도 37%에 달했다. 진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남들보다 1~2년이나 사회 진출을 늦추려는 남성이 어디 있겠느냐며 병역기피자가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 사례를 보면 이런 염려가 기우임을 알 수 있다. 대체복무제를 실시한 나라들이 처음에는 이런 염려 때문에 대체복무 기간을 길게 잡았다. 그러나 위장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자가 거의 없어 복무 기간을 줄였다. 기간이 같은 나라도 상당수다. 병역기피자가 얼마나 나올지는 시행해 보기 전에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병역기피자 양산? 안보 위험?

진 교수는 병역거부로 위장한 병역기피자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이유라면 이를 막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체복무자 수를 제한하고 심사과정을 강화하면 된다. 진 교수는 병역거부자의 신념은 본인의 진술과 사회활동, 정황 증거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보 논리에 대한 진 교수의 반박은 명쾌했다. 병역거부자의 감옥행은 국방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매년 700~800명의 병역거부자는 군대가 아닌 감옥에 간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이들은 수감 생활이 아닌 사회봉사를 하게 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계속 감옥에 간다. 진 교수는 한반도의 엄중한 안보 현실을 근거로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려면 집총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를 군인으로 만들 방안을 찾으라고 주장했다. 

반대론자들이 펼치는 또 다른 논거는 군의 사기 저하다. 진 교수는 "만약 모든 사람이 군 복무를 법에 따라 억지로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대체복무제 도입이 군의 사기를 일정 수준 저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수긍했다. 그러나 "국민이 병역을 마땅한 의무로 여기고 자랑스럽게 수행한다면 군대의 사기 저하는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군의 사기가 떨어져 전투력이 약화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러시아나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의 국방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 진석용 교수가 연구 보고서 제목을 지목하며 이번 연구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염두에 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 뉴스앤조이


기독교 복지 시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도 OK

진 교수는 한기총 등 대체복무제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그룹의 편협한 태도에도 실망감을 표현했다.

"지난해 10월 공청회에서 한기총 이단상담소장 최삼경 목사는 대인 봉사 아닌 노동 봉사만 하게 만들면 대체복무제 도입을 찬성하겠다고 말했다. 대인 봉사를 하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포교활동을 할 것이란 우려였다. 포교의 자유를 국가가 제한할 순 없는 거 아닌가.

만약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대체복무제를 위해 운영할 시설 중 약 40%가 종교단체에 속한다. 그 중 기독교 시설 비율이 가장 높다. 조사 결과 기독교 시설에서는 봉사할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수 기독교 지도자 그룹의 생각와 복지시설 운영자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진 교수의 연구 보고서에는 대체복무제 반대 의견들과 이에 대한 반론이 실려 있다. 진 교수는 반대 의견 14개 중 12개는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대체복무제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근저에는 보복심리가 깔렸다고 진단했다. 자신과 동일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방부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에 실망감을 드러낸 진 교수는 앞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논란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대체복무 도입론자로서 "사람들이 내용을 많이 알수록 찬성하게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따라 앞으로 전개될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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