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탄 반도 정글 속에서 만난 사람들
[자전거 세계일주 95] 멕시코 유카탄 반도
▲ 유카탄 정글 도로곧게 뻗은 도로가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 문종성
유카탄 반도의 중심도시인 메리다를 떠난 지 사흘째. 길 가다 만난 조셉은 친절했다. 전날 밤 시골 경찰서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더랬다. 물만 나와도 감사하다고 생각되는 노후한 화장실에서 어찌어찌 샤워도 해냈다. 수건이 없어 손수건으로 몸을 닦아냈지만 안 씻는 것보다야 백 번 나은 일이다. 허기는 이곳의 맛좋고 영양가 풍부한 과일로 달랬다. 이러니 몰골자체가 보릿고개다. 정글의 이름도 모를 작은 마을에서 인터넷방 겸 작은 슈퍼를 경영하는 조셉을 만난 건 그래서 행운이다.
▲ 고마운 친구 조셉그의 따뜻함이 유카탄 자전거 여행의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 문종성
아이까지 딸린 애 아빤데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하지만 의젓함은 나와 견줄 바가 아니다. 인터넷 할 생각으로 들어간 내게 그는 빵부터 내어 왔다. 흠칫 놀라는 내게 무료니 그냥 먹으란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간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자 그는 다시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 한글 수업수강생 3명이지만 열정 하나로 한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문종성
▲ 또박또박한글 아래 스페인 어로 음을 달았다. ⓒ 문종성
정글 진입 나흘 째. 한낮의 더위와 허기를 단번에 날릴 방도를 찾던 중 어느 허름한 과일 가게에 들어갔다. 깔끔하게 한 통이나 1kg이 아닌 수박 한 조각과 망고 하나, 파인애플 반개를 일일이 흥정하는 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쫌생이’ 캐릭터가 된다. 그런데 파리 날리는 가게 안 과일박스 위에 걸터앉아 우적우적 과일을 씹던 중 또 한 번 귀가 솔깃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 정글 안에 한국인이 산다는 것이다. 다니면서 참 놀랄 일도 많다.
현지 유치원을 경영하는 한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토요일은 한글수업이 열린단다. 유카탄 반도의 어느 이름모를 해안 도시에는 단 한 가정뿐인 선교사 가족이 살고 있다. 또다른 한국인인 그가 강의하는 수업에 참관했다. 수강생은 달랑 세 명. 거기에는 심지어 일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짧은 수업을 위해 차로 한 시간 반이나 달려오는 열정을 보인다.
유카탄 반도에는 1세기 전 대양을 건너 온 한인 후손들의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다행히 열악한 노동자의 신분을 벗어나 자기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현지화 되어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그나마 아직 한국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라도 한국 문화를 전하기 위한 노력이 힘겹게 경주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나 단체의 후원 없는 개인적 열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한글 강의무명의 선교사는 유카탄 반도 어느 작은 마을에 가족과 살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한글 강의를 하러 차를 몰고 온다. ⓒ 문종성
▲ 학생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일본인이다. ⓒ 문종성
유카탄 어느 한인 후손의 집에 방문해 이틀 간 묵었을 때 일이다. 외관은 영락없는 한인이고, 집 안에는 이런저런 한국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장식물들이 있었으며 한 형제로 반갑게 맞아준 한국적인 정이 남아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감정표현에서 한국어가 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도 그것을 우리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때 오는 안타까움과 서운함(그들에게 느끼는 것이 아닌)이 아직도 마음의 생채기로 남아 있다.
▲ 한인 후손 집집안 곳곳에 태극기와 한복 입은 인형, 한국 풍경 사진 등 우리 정서를 함의한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 문종성
유치원에서 사흘 간 쉬는 동안 수업 시간에 만난 꼬마신사, 꼬마숙녀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천사 다름 아니다. 어찌나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인물 사진의 8할을 할당할 정도로 특별히 아끼는 내게 이 조그만 개구쟁이들과의 교제 시간은 아무 근심없이 순간을 즐기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깊은 눈망울과 허물없는 장난, 그리고 언제든 내 품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의 체온은 나를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 미소귀여운 멕시코 아이. ⓒ 문종성
▲ 유치원 커플?왼쪽 여자아이가 유난히 날 따르던 녀석이었다. 사진 찍은 후 유치원 모든 아이들과 프리허그를 했다. 프리허그 동영상은 멕시코 마지막 기사에서 공개 예정. ⓒ 문종성
아이들과 신나게 사진도 찍고, 여행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레 프리허그(Free Hug)를 하게 되었다. 유난히 나에게 안기던 한 녀석만 해 주기가 마음에 걸렸는데 50여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어느 순간 열을 이루더니 가슴팍에 안긴다. 따뜻했다. 행복했다. 봄 햇살 아래 병아리들의 삐약삐약 소리처럼 앙증맞고 생기가 넘쳐흘렀다. 며칠 쉬고 떠나는 나에게 두 팔을 벌려 불러주는 노래의 뜻은 잘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는 천사들의 합창이었다는 것이다.
단조로울 것 같았던 일주일간의 메리다 라이딩을 무난하게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만남은 기분 좋은 긴장을 일으키게 되고, 엔도르핀을 분비시키며, 여행을 하는 본질적 이유를 상기시켜 준다.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 지.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는다. 이 정글이 끝날 때까지 계속 달린다. 저기 멀리서 진한 카리브 해 냄새가 난다. 드디어 칸쿤이 보인다.
▲ 정글 도로 라이딩One way!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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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