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다시 먹구름... 경제위기 '시즌2'
[분석] 일주일넘게 원-달러 환율 상승, 주식시장은 1100선 위협
▲ 코스피지수가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간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시황판에 전일대비 14.00포인트(-1.24%) 내린 1113.19로 거래를 마감한 코스피지수가 적혀있다. ⓒ 연합뉴스 김현태
금융시장이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18일 주식시장은 3일째 하락세를 보이면서 종합주가지수 1113.19를 기록, 가까스로 1100선을 유지했다. 특히 외환시장은 더 불안하다. 원-달러 환율은 일주일 넘게 올라 1468.0원으로 마감했다. 올들어 가장 높은 수치다.
시장 일부에선 '3월 위기설'과 겹치면서, '금융 공황'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유는 국내외 경제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침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수출 급감과 대외 무역수지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수출 감소는 기업의 이익 감소로 직결되고, 다시 고용 축소, 소비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심각한 경기침체 양상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와 실업,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불안까지 더해져 경제위기가 확산될 경우 자칫 한국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복되는 외환시장 불안... 곳곳서 "달러를 사라"
▲ 최근 외환시장 3대 현상의 발생 배경 ⓒ 삼성경제연구소
이번 금융시장의 불안 역시 외환시장에서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미국과 통화스와프(원-달러 화폐 교환)를 체결한 후, 1250원대로 안정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다시 조금씩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12일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로 올라서고, 일주일새 1500원선을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환율이 오르는 것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그만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는 다시 말해 시장에 달러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최근 들어 달러 매수 심리가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면서 "해외 여건 악화 등의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미 그동안 시장에서 나왔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달러 가뭄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이 같은 달러 가뭄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긴 하다. 미국 GM 파산설과 동유럽 국가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 가능성 등으로 인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고,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 달러가 한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사정도 좋지 않다. 최근 우리은행이 4억 달러의 외채를 조기에 상환하지 않기로 발표하자, 시장에선 국내 금융권의 외채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는 은행권의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졌고, 그만큼 달러를 빌려오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는 곧 국내 금융권에서 올 2월과 3월에 갚아야 할 100억달러의 빚 상환과 맞물려 달러 사재기 현상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물론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빌려오는 데 들어가는 이자 비용도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위기설의 본질은 불안한 외환보유고와 은행의 건전성
▲ ⓒ 삼성경제연구소
정부와 금융당국에선 국내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가 넘기 때문에 위기까지 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하고 있다. 작년 '9월 위기설' 등이 나올 때도 같은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외환시장을 둘러싼 위기설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과연 정부가 가지고 있는 달러 보유량이 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적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국내 외환보유고는 2017억달러다. 시장에선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 채무를 갚을 수 있는 수준을 적정한 외환보유고로 보고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으로 1년 이하 단기외채는 1894.2억 달러에 달한다. 또 장기 외채 가운데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까지 합할 경우 1년 안에 갚아야 할 외채는 모두 2271억 달러가 넘는다.
이럴 경우 현재 한은에서 가지고 있는 2017억 달러로는 단기 채무를 갚는데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 달러가 국내에 남아있지 않고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 외환시장은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특히 국내 은행권이 올해 안에 갚아야 할 달러가 자그마치 8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들에 대한 해외시장에서의 신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돈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올 2월까지 이들 은행들이 해외에서 88억4000만 달러를 들여왔지만, 이 금액 가운데 상당 부분은 산업은행(36억 달러), 수출입은행(30억 달러) 등 국책은행들이 조달했다.
나머지 일반 시중은행의 경우 대부분 2~3억 달러에 그쳤고, 이자도 2년 전 1%포인트에 비해 6~7%포인트로 매우 높게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해외에서 달러를 빌리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이들이 가진 빚의 만기 연장도 녹녹치 않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에 한국은행 관계자는 "단기 채무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미국·일본·중국 등과의 통화스와프 체결로 외환보유고 이외 달러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은행권의 신용도는 은행 스스로 자본확충 등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 차원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대책을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경제상황도 최악 국면으로... 3월 위기도 배제할 수 없어
▲ 17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객장에서 장이 마감될 무렵 한 중개인이 업무를 보고 있다. 투자자들이 오바마 정부의 새 금융구제안에 반발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00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채 마감했다. ⓒ EPA=연합뉴스
문제는 정부가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을 지켜준다고 하더라도, 금융시장의 불안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유는 세계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위주의 국내 산업구조의 취약성 때문이다. 수출이 크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달러도 크게 줄고, 무역수지 적자는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작년 11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수출 증가율은 올 1월 마이너스 33.8% 기록하면서, 무역수지도 33억 달러 적자를 보였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력 수출 분야에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수출이 줄어든 만큼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특히 국내 경기 침체와 수출 급감에 따라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줄고, 자칫 도산 위기로 빠질 경우 이들 기업에 대출해 준 은행들도 연쇄적으로 부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 사이에선 현재와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오는 3월이나 4월께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한 시중은행 중소기업 여신 담당 임원은 "최근 들어 수출 중견기업들 사이에 수출 감소에 따른 회사 매출과 이익이 크게 줄고 있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이들 기업들이 대거 부실해질 경우 은행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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