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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에쿠스에 감히 구형 마티즈를 비교해?

[시승기] 나를 닮은 마티즈 vs. 사장님 닮은 에쿠스

등록|2009.02.19 09:51 수정|2009.02.19 19:33

▲ 그 동안 베일에 쌓인 최대형 럭셔리 세단 '신형 에쿠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은 지난 17일 열린 에쿠스 비교 시승행사, 에쿠스 뒤로 경쟁자인 벤츠와 렉서스가 보인다. ⓒ 현대자동차 제공


기자는 '황금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똥색'이라고 우겼다. 어떤 사람은 '은행잎색'이라며 기자를 위로했다. 기자의 '애마' 마티즈를 두고 벌어졌던 논쟁은 비단 색깔뿐만이 아니다.

기자의 애마는 분명 가솔린차였다. 그러나 친구들은 혹시 디젤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애마가 우렁차게 내뱉는 엔진소리 때문이다. 때론 가래 끓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에게 그 소리는 경쾌한(?) 음악처럼 들렸다.

또 있다. 친구들은 키 184센티미터에 몸무게 85킬로그램인 기자가 애마 운전석에 앉을 수나 있느냐며 늘 의문을 제기했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게 한이 되지만, 분명히 애마는 기자를 포함해 건장한 남성 5명을 태우고도 잘 달렸다. 애마가 연약해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접촉사고를 포함해 2~3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에도 운전자는 다치지 않았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상적인 치료나 성형수술 한 번 해주지 못했는데도 애마는 불평 한 마디 없었다. 다만 사고 후유증인지 가끔 신음소리를 심하게 내거나 기어가 매끄럽게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애마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03년 가을이었다. 당시 직장 생활 3년차였던 기자는 친척이 몰고 다니던 4년차(1999년식 초기 모델) 젊은 애마를 발견하고서 같은 처지의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200만원이라는 저렴한 돈을 지불하고 주인이 됐지만, 애마는 기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취재 현장 곳곳을 함께 누비며 삶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애마는  지난 2007년 겨울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1톤 트럭 뒤꽁무니에 머리를 처박은 흉측한 모습으로 기자의 곁을 떠나갔다. 물론 당시에도 애마의 온몸을 던진 희생 덕분에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럭셔리 세단' 신형 에쿠스 (자료 : 현대차 제공) ⓒ 최경준


정몽구 회장 취임 후 첫 작품... "최고급 럭셔리 세단, 수입차와 경쟁"

애마를 떠나보낸 지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애마를 떠올린 것은 엉뚱하게도 현대자동차에서 출시를 앞두고 있는 '초대형 럭셔리 세단' 신형 에쿠스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난 17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신형 에쿠스와 해외 경쟁차의 비교 시승회를 열었다. 언론인 80여 명을 초청해 '미디어 프리뷰' 행사를 개최한 것.

비교 시승회에 사용된 경쟁 차종은 벤츠S500(국내 판매가 2억190만원)·S350(1억3750만원)·렉서스 LS460(1억3000만원) 모델이다. 신형 에쿠스 역시 아직 가격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1억 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가 타던 구형 마티즈 신차 가격 10배가 넘는다. 가격뿐이 아니다.

구형 마티즈는 예전 티코의 엔진을 기반으로 한 3기통 SOHC 796cc 엔진을 얹었으며 최대 52마력의 출력을 냈다. 말이 52마력이지, 800kg 안팎의 차량 중량을 고려하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신형 에쿠스에는 4.6L 타우 엔진과 3.8L 람다 엔진이 장착됐다. 2009년 워즈오토 선정 10대 엔진상을 수상한 타우엔진은 8기통에 최대 366마력의 출력을 낸다. 애마의 7배다. 하지만 가속력이나 정숙성에서 경쟁 차종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수준이다.

기자가 탔던 구형 마티즈는 5단 수동변속기였다. 4단 자동변속기를 쓰는 마티즈도 있었지만 길이 막힐 때를 제외하고는 부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자동보다 수동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운전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게다가 기름도 적게 먹는다고 하니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반면 신형 에쿠스는 독일 ZF제 6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했다. 제네시스도 같은 변속기를 쓰고 있다. 벤츠S550이 7단, 렉서스 LS460이 8단 자동변속기를 쓰는 것과 비교가 된다.

이렇게만 보면 구형 마티즈가 한 없이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마티즈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20.9km/ℓ(수동변속기 기준)의 경이적인 연비다. 고유가 시대에 걸맞은 최고의 스펙이지 않은가. 반면 신형 에쿠스4.6(8.8km/ℓ)을 비롯해 벤츠S500L(6.9km/ℓ), 렉서스LS460L(8.8km/ℓ)은 마티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실 '최고급 럭셔리 세단'을 지향하는 신형 에쿠스와 이미 10년 전에 단종된 구형 마티즈를 비교한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신형 에쿠스는 현대차가 '수입 럭셔리 세단'과 경쟁하겠다며 10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이다. '회장님 취임 이후 첫 작품'인 셈이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신형 에쿠스는 지난 99년 정몽구 회장이 현대기아차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직접 개발에 관여한 최초의 플래그십(최고 사양) 모델"이라며 "그러니 간부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겠나, 지난 6개월 동안 집에도 잘 못 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날 비교 시승회에 내놓은 다른 수입차와 비교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대목이다. 세 차종 간에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등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기자가 고민 끝에 "그래도 내가 타보던 차와 비교하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 대우자동차가 지난 98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마티즈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신형 에쿠스 직접 타보니... "마티즈가 그립다"

신형 에쿠스를 본 첫 인상은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다. 마티즈를 타던 사람에게는 당연한 생각이겠지만, 제네시스의 차체를 이용해 개발한 신형 에쿠스는 기존 에쿠스보다 전장 40㎜, 전폭 30㎜, 전고 15㎜가 커져 국내 승용차 가운데 가장 크다.

차체도 차체지만, 바퀴는 눈에 확 뛸 정도로 크고 번쩍였다. 제네시스(17~18인치)보다는 크고, 체어맨(쌍용)과 같은 19인치다. 그러나 19인치 대형 크롬도금 휠이 너무 번쩍이는 바람에 '사장님 전용차'치고는 약간 촌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히 보니, 앞바퀴(P245/45 R19)와 뒷바퀴(P275/40 R19)의 크기가 다르다. 스포츠카에서나 쓰던 믹스 타이어를 세단에 적용한 것이다. 현대차 측은 "동작, 성능, 드라이브 펀 등을 감안해 후륜 구동에 맞춰서 세팅 시킨 것"이라며 "향후 리무진에도 이와 같은 믹스 타이어를 전부 적용시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조등에서 시작해 후미등까지 이어지는 물결 모양의 사이드 캐릭터 라인이 눈에 띈다. 현대차측은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라고 했다. 산타페(현대차)보다는 굴곡이 약하긴 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신선함과 민망함'으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것 같다. 산타페의 경우 사고가 나지 않은 차도 괜히 찌그러져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만일 실제 찌그러지기라도 할 경우, 이런 식의 곡선은 100% 펴내기도 힘들다고 한다.

물론 마티즈도 찌그러지면 펴기 힘들다. 그래도 고급차에 비해서 부담은 덜하다. 크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상당수 마티즈 운전자는 찌그러진 상태를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 차가 작은 만큼 심하게 눈에 거슬리지 않기 때문이다. 경차의 자유로움이랄까?

신형 에쿠스에는 해외 경쟁 차가 사용하고 있는 신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 중앙선을 구별해 차선 이탈을 막아주는 차선이탈감지시스템(LDWS) ▲ 주차할 때 핸들 방향과 연동해 예상 경로를 표시해 주는 조향 연동 주차가이드 시스템(PGS) ▲ 충돌 직전에 시트벨트를 되감고 브레이크를 밟아 승객을 보호하는 차량통합안전시스템 등으로 국산 차에는 처음 선보인 기술이다.

고속주행을 하기 위해 신형 에쿠스 뒷좌석에 앉았다. 마티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사지 기능도 넣고, 타고 내릴 때 자동으로 시트가 작동해 레그룸을 넓혀주는 기능도 달렸다. 뒷좌석만 보면 '아, 사장님 전용차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 길이가 4.5㎞인 고속주행로를 2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안 됐다. 시속 220㎞/h 이상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고 나니, 머릿속이 하얗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어서 승차감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티즈를 몰면서 시속 120㎞/h 이상 속도를 내 본 기억이 없다. 차가 떨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닥에서 떠서 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역시 대형 세단은 달랐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체는 바닥에 납작 붙어서 안정적인 느낌을 줬다.

이번엔 핸들링 코스, 신형 에쿠스는 물론 경쟁차인 벤츠와 렉서스도 함께 직접 운전해 볼 기회가 주어졌다. 솔직히 그랜져 구형XG(2.0)을 한 차례 운전해 본 것 외에 2000cc급 이상 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 전무했다. 살짝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차는 뭐니 뭐니 해도 직접 운전해 봐야 안다'는 생각에 운전대를 잡았다.

먼저 렉서스에 탑승해 지그재그로 차량을 운전하는 슬라럼 코스와 원선회 코스, 차선이탈감지시스템을 시험해 볼 수 있는 LDWS 코스, 브레이킹 코스를 차례로 지나서 안전하게 복귀했다. 다음은 신형 에쿠스, 이어서 벤츠도 운전해 봤다. 그런데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다만 LDWS 코스에서 에쿠스의 경우 노란색 중앙선을 넘어가면 약한 경보음과 함께 운전석 벨트가 조여지는 차선이탈감지 시스템이 작동했다. 이 기능은 고급 세단이면 대부분 차용된 것이지만, 에쿠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바로 세계 최초로 중앙선과 일반 차선의 색을 구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차선 이탈은 보통 졸음운전을 하거나 휴대폰 사용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약한 경고음이나 살짝 느껴지는 안전벨트 압박으로는 '사전 경고'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 같다. 차라리 좌석 뒤에 압정이라도 박아 두었다가 찌르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또 이 차는 현대차 측의 설명대로 철저하게 뒷좌석에 힘을 준, '사장님 전용차'다. 뒷좌석에 앉아 편안히 졸기보다는 심각한 주차난 속에서 어떻게든 작은 빈틈이라도 찾아 밀고 들어갈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기자는 오히려 예전의 마티즈가 그립다. 고속도로 통행료나 공영주차장 요금이 과감하게 50%씩 할인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자동차세 나온 것을 보며 뿌듯해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시승행사가 끝나고 연습장 한 켠에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던 '초대형 럭셔리 세단'들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리며 든 생각들이다. 신형 에쿠스는 다음달 11일 신차발표회를 하고 판매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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