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대구지하철참사 6주기 "우리는 희망을 타고 싶다"

대구시민회관에서 범시민 추모식 열려

등록|2009.02.19 10:19 수정|2009.02.19 15:30

192인의 위패가 모신 가운데 추모행사가 열렸다.대구시민회관 별관 2층 소강당에서는 대구지하철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192인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 김용한


차마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유족들헌화 과정에서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채 위패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대구 참사 유족들. ⓒ 김용한


2·18 대구지하철참사 6주기 범시민 추모식이 18일 대구시민회관 별관 2층 소강당에서 열렸다. 강단에는 대구지하철참사로 세상을 떠난 192인의 위패가 놓였고 그곳을 바라보는 유족들의 슬픔은 6년이 지났지만 아픔을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2·18 대구지하철참사 6주기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추모 묵념과 함께 조성진 마임리스트와 유족 자녀들의 넋 모시기 퍼포먼스로 시작했다.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의식이 이어졌고 정학 시민대표(참길회 대표)와 유족 대표 전재영씨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대구시민회관 앞에 걸린 현수막."우리는 희망을 타고 싶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 김용한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의 비극은 인위적 잘못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그 일을 대처했던 사람들의 비겁함을 새삼스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통한 표정으로 부정을 숨기고 나부끼는 만장 틈에서 책임을 전가하며 비린내 나는 손을 흰 장갑으로 감추고 인색한 굿판에서 공생을 남발하던 거짓은 이제 가야합니다.” - 정학 시민대표 추도사 중.

유족을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한 전재영씨는 “나를 아는 사람들은 자꾸만 잊으라고 하는데... 미영아 어찌 당신을 잊을 수 있겠니, 이젠 당신 앞에서 옛날 생각을 하며 죽은 당신과 이야기하며 웃기도 하는데 그게 나의 업보인 것을, 그게 나와 당신의 인연인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며 추모의 글을 읽어갔다.

전재영씨의 부인 고 박미영(36)씨는 자녀의 마지막 언어치료를 위해 김천에서 영남대병원으로 가다가 중앙로역 지하철 참사로 유명을 달리했다.

전씨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 가족에 대해 슬퍼하는 것보다도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하는 것들이 전혀 이뤄진 것이 없다는 것과 유령탑 건립 등도 진전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참사의 1주기(좌)와 6주기(우)의 모습.대구지하철참사 1주기 추모행사(중앙로역. 좌)와 6주기 추모행사(시민회관) 광경. ⓒ 김용한


“지난 세월을 결코 용납할 수 없어 정신이 혼미할 정도”라고 말한 고 정미희(당시 26세)씨의 아버지 정인호씨도 “추모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분통할 따름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윤석기 위원장도 참사 6주기 대구시장의 불참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윤석기 회장은 “지난 몇 년간 유족들의 마음을 참사 당시보다도 더 아프게 했던 것은 시장님의 모습이었다”면서 “시장님은 부모 대신 우리를 지켜주고 보듬어주어야 할 어른인데...”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황순오 사무국장(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은 “시민안전테마파크는 대구지하철참사의 교훈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유족들의 뜻을 담기 위한 상징 조형물 건립이 개관과 동시에 열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192명 중 무연고 시신이 6명이며 아직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대구시나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지하철 환경미화원들의 영정.죽어서도 차별받고 있는 고 정영선, 김정숙, 김순자 환경미화원. ⓒ 김용한


환경미화원들의 추모행사 광경대구지하철노조원과 대구지하철청소용역노동조합원들이 헌화 후 중앙로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가 숨진 3명의 고인들 넋을 기리고 있는 광경. ⓒ 김용한


대구지하철참사 당시부터 영상물로 기록을 남기며 현장을 발로 뛰었던 현종문 감독은 “유족들에게는 6년의 시간이 고통의 순간이었다는 것과 이제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쓸쓸할 따름”이라면서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덮인 사실들을 정리한 영상물을 올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희생자대책위나 유족들의 마음은 한결 ‘안전한 지하철’, ‘사고 없는 대구’를 기원했다. 이날 추모식장에는 태풍매미 참사의 유족 대표들과 상인동 가스폭발사고 희생자 유족 대표들이 참가해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전 이재용 환경부장관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안전한 지하철을 원한다.사고오명의 대구를 씻어야 한다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의 유족들이 대구시청 앞에서 "안전한 대구지하철"을 요구하며 시위(2003년 3월 20일)하고 있는 광경. 우측은 학원에 가다가 사고를 당한 고 정미희씨의 부친인 정인호씨가 딸의 인적 상황 등을 적은 글을 목에 달고서 답답한 마음에 경찰들 앞에서 항의하고 있는 광경. ⓒ 김용한


대구시는 1주기 추모식과는 달리 부시장이 대리 참석하는 것으로 슬픔을 대신했고 지난해 12월 29일 개관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사고도시의 오명을 벗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정작 희생자대책위와 논의한 추모비 건립 등에는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개관을 맞이해 유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중앙로역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추모할 수 있도록 임시 추모 분향소를 마련했지만 많은 이들은 대구 참사를 잊은 듯 그곳을 그냥 지나치는 모습이었다. 민주노총대구본부와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대구지하철청소용역노동조합원들은 교보문고 앞에서 사고 당시 중앙로역에서 근무하다가 방화사고로 운명한 고 정영선, 김정숙, 김준자 조합원에 대한 추모행사를 가졌다.

중앙로역에 설치되고 있는 안전스크린도어.중앙로역에는 참사 이후 안전스크린, 보행자 안전유도판, 지하철내장재 교체 등이 이뤄졌지만 사고의 중대한 책임이 되었던 1인 승무제에 대한 개선(2인 승무제 원칙)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김용한


또 대구지하철노조원들은 별도로 방화사고 참사로 숨진 고 정연준, 장대성, 김상만, 최환준씨의 묘역을 찾는 것으로 추모행사를 대신했다.

대구참사 후 민자 유치를 통해 중앙로역·반월당역 등 4개 역에 안전스크린 설치·내장재 교체·시설 보강 등이 이뤄졌지만 정작 대구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1인 승무제에 대한 보강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구지하철노조원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2인 승무제와는 다른 방향인 역사무인화·민간위탁 등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추진되고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