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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신드롬과 <한반도의 공룡>

등록|2009.02.19 21:38 수정|2009.02.20 09:52

▲ 지난해 11월 24-25일 방송한 EBS <한반도의 공룡> ⓒ EBS


밤비 콤플렉스(Bambi Complex) 내지 밤비 신드롬(Bambi Syndrome)은 자연을 인간의 생각대로 의인화하는 심리를 말한다. 나아가 동물을 향한 감상적·동정적인 행태를 가리킨다. 밤비 신드롬은 1942년 월트 디즈니의 어린이용 만화영화 <밤비>가 흥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념화되었다. 1924년 펠릭스 잘텐(Felix Salten)의 <밤비>(Bambi, A Life in the Woods)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성인을 위해 독일어로 나왔을 때는 이러한 개념이 없었다.

원작과 달리 월트 디즈니의 <밤비> 는 자연의 잔인함, 불공평, 전율, 자연의 법칙 등을 간과하고, 인간적 관점에서 매우 낭만적으로 동물의 세계를 묘사했다. 예컨대 원작에서는 서로 먹고 먹히는 자연 생태계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밤비 신드롬은 어린이들에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누군가 구획한 인간 중심주의의 프레임으로 자연을 보도록 만든다.

더구나 만화영화 <밤비>는 귀여운 밤비 같은 동물은 죽이면 안 된다는 심리를 주입했다. 귀엽지 않은 동물은 죽음의 대상이 되어도 관계 없었다. 사슴은 착하고 늑대와 사자는 악했다. 특정 동물에 대한 한없는 동정과 감정이 우선했다. 원작은 단순히 동물을 감상적·동정적인 태도로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노자가 말한 '자연은 인(仁)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사슴의 성장기였다.

EBS의 <한반도의 공룡>은 밤비 신드롬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우선 이 콘텐츠에서 주인공은 흔히 순하게 여기는 사슴 같은 초식 동물이 아니라 최대 육식 공룡 타르보사우루스다. 웬만한 미디어 콘텐츠에서 육식공룡은 악역 전문으로 영화 <쥬라기공원>에서도 악당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육식공룡은 어린이들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밤비>와 달리 절대 선인도 악인도 없다. 점박이 타르보사우르스를 중심으로 먹고 먹히는 자연의 법칙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공간은 없다. 또 다른 공룡 콘텐츠와 달리 생애 서사구조를 통해 육식공룡의 일생을 다루고 절대 강자라고 여길 수 있는 타르보사우루스의 처절한 생존 투쟁과 실존적 고독을 통해 현대인의 자아를 비치고 있다.

디즈니식 아동물은 어린이들조차 외면할 태세다. 밤비 신드롬 차원에서 낭만과 순수의 틀로 <한반도의 공룡>을 제작했다면, 실패했을지 모른다. 재난과 재해에서 각종 일상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거나 생존법을 알려주는 KBS <위기탈출넘버원>의 시청자 가운데 상당수가 어린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생존이 두려운 사회다. 한편으로 유아 때부터 생존경쟁으로 내몰리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강자를 열망하며, 생존 투쟁의 주인공 공룡에게 자신을 투영시키는지 모른다. 이명박 정권의 교육, 경제, 복지 정책들을 보니 강자만 살아남는다고 강조하는 한반도의 공룡은 더욱 더 많아질 듯싶다.
덧붙이는 글 위클리 경향(813호, 2009.2.24)에 실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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