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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물이 아니고, 약수라구요"

고로쇠 한 모금에 한해 건강 챙기고 가족사랑까지 듬뿍

등록|2009.02.20 16:19 수정|2009.02.20 16:19

▲ 봄의 기운이 움트는 요즘, 남도에선 고로쇠 수액 채취가 한창이다. 겨울 칼바람과 눈보라를 묵묵히 견뎌낸 이 수액은 우리 몸의 건강을 가져다주는 약수가 된다. ⓒ 김인호



반짝 추위도 누그러졌다. 겨우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뭇가지에도 작은 싹이 보인다. 산골짜기도 조금씩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들에도 파릇파릇 봄나물이 돋아나면서 봄이 느껴지고 있다.

입춘도, 우수도 지나고 경칩이 얼마 남지 않았다. 봄의 초입이다. 오늘은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는 봄을 마중하러 가본다. 봄마중 장소는 전남도내 유명 산 주변이다. 산에서 봄이 오나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펼쳐지는 풍경이 있다.

따뜻한 방에 가족, 친구들과 함께 두런두런 둘러앉아 고로쇠 약수를 마시는 것이다. 초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고로쇠 약수만한 것도 없다. '신비의 약수'로 불리는 고로쇠 수액 채취는 벌써 시작됐다. 고로쇠나무는 한겨울 칼바람과 눈보라를 묵묵히 견뎌내고 봄의 기운이 움틀 때 수액을 배출한다.

▲ 뜨끈뜨근한 방에서 가족끼리, 친구끼리 두런두런 둘러앉아 마시는 고로쇠 약수는 초봄의 정취를 선사하면서 1년 건강까지 담보해 준다. 고로쇠 약수는 오징어, 북어포, 땅콩 등 짭짤한 음식을 섭취하며 마시면 더 좋다. ⓒ 이돈삼




올해 채취는 지난달 21일 장성 남창골에서 시작됐다. 고로쇠 수액 채취는 입춘 직전부터 우수와 경칩을 거쳐 곡우 전후까지 계속한다. 채취량은 3월 초인 경칩 전후가 가장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칩 전인 2월에 생산된 것을 선호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고로쇠나무는 고지대에 많이 자생한다. 수액은 이 나무의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가는 물을 인위적으로 채취하는 것이다. 보통 1m 정도 높이의 나무 몸통에 드릴로 2∼3㎝ 깊이의 구멍을 뚫은 뒤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는다.

이 수액이 우리 몸에 좋고 효능도 높다. 고로쇠 약수는 숭늉처럼 뿌옇다. 맛도 독특하지 않아 어른 아이 다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이 수액에는 당분 칼슘 마그네슘 칼륨 비타민 그리고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런 영양소가 일반 물보다 40배 정도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인체에 쉽게 흡수돼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해 주고, 피부미용과 관절염 신경통 변비 등에 효능이 있다. 국립 산림과학원은 지난해 3월 고로쇠 수액이 신체에 충분한 미네랄 성분을 공급해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이를 개선하는데 효과가 탁월하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통일신라시대 동백꽃 군락지로 널리 알려진 백운산 자락 옥룡사에서 수도하던 도선국사가 나뭇가지에서 나온 수액을 먹고 잘 펴지지 않던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이때부터 고로쇠 수액을 ‘뼈에 이로운 물’이라고 해서 골리수(骨利水)라 불렸다고 한다.

▲ 고로쇠 약수 채취는 고로쇠나무의 몸통에 드릴로 구멍을 뚫은 뒤 그곳에 호스를 꽂아 흘러내리는 수액을 받는 방식으로 한다. ⓒ 이돈삼



전남지역의 고로쇠 수액 채취는 구례 지리산과 광양 백운산에서 많이 생산된다. 순천 조계산과 장성 백암산, 담양 추월산, 화순 모후산 일대에서도 채취한다. 전남도내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면적이 총 3만여㏊에 육박한다. 올해는 이 가운데 3000㏊, 13만 그루에서 수액을 채취한다. 채취량은 120만ℓ. 돈으로 환산하면 30억원에 이른다.



광양 백운산에서 얻은 고로쇠는 지리적표시 등록을 받은 것이다. 백운산의 토질이 암석과 적당히 섞이고 습기를 고루 갖추고 있어 약효가 뛰어나다.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좋아 생산량도 많다.

구례 지리산에서 난 고로쇠는 일교차가 큰 고산지대에서 해풍을 받지 않고 수액을 머금은 것이어서 품질이 좋다. 순천 조계산 고로쇠는 150여 년 전부터 선암사 스님들이 즐겨 마시던 건강수다.

고로쇠 수액은 장에서 흡수를 잘 한다. 하여 한꺼번에 많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 다른 음식에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뜨끈뜨끈한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오징어나 북어포, 땅콩 등을 곁들여 갈증을 유발시키면서 마시면 보다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다.

현지에 가서 마시면 분위기도 있고 더 좋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현지에 가기 어렵다면 생산자단체에 연락해서 택배 주문을 해도 된다. 가격은 대여섯 명이 밤새 마실 수 있는 량인 18ℓ에 5만원 선이다. 택배비는 별도.



▲ 고로쇠 약수의 변신은 무죄(?). 고로쇠 약수가 우리콩과 만나 고로쇠 된장과 간장으로 변신,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한다. ⓒ 이돈삼



최근 고로쇠를 이용한 가공제품도 나오고 있다. 고로쇠약수는 보존기간이 짧은 게 흠. 그래서 생각해낸 게 고로쇠를 이용한 식품이다. 광양에선 이 고로쇠 수액을 이용해 만든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선보이고 있다.



광양 고로쇠된장영농조합법인에서 특허를 얻어 만들고 있는 고로쇠 장류는 몸에 좋은 고로쇠 수액에다 우리콩을 이용해 장을 담근 것이다. 물이 다르니 맛도 다르다. 일반 장류보다 맛이 개운하면서 깔끔하다. 몸에 좋은 고로쇠 약수와 우리콩이 만났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남도로 고로쇠 약수를 마시러 오가는 길에는 가볼만한 곳도 지천이다. 고로쇠 약수를 산에서 채취하는 만큼 산행을 기본적으로 겸할 수 있다. 그 산은 또 이름난 사찰을 하나 이상씩 품고 있다. 구례와 광양으로 간다면 환상적인 섬진강변 드라이브도 즐길 수 있다.

강변에는 화엄사, 운조루, 연곡사, 쌍계사, 사성암, 백운산휴양림 등 들러볼만한 곳이 많다. 화엄사 바로 뒤 구층암에 가면 스님이 내주는 고로쇠 약수도 맛볼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견학하는 것도 좋겠다. 견학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섬진강변에는 또 참게탕, 광양숯불구이, 산야채 등 독특한 먹을거리도 푸짐하다. 섬진강에서 채취하는 강굴도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구례에서 재배한 우리밀을 이용한 팥국수도 좋다. 이번 주말과 휴일, 남도에 가면 제 철을 맞은 고로쇠 약수 한 모금으로 봄기운을 만끽하면서 한 해 건강까지 챙기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 고로쇠 약수를 맛보러 오가는 길엔 들러볼만한 곳이 지천이다.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생각케 하는 운조루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매화가 꽃망울을 머금은 섬진강변 드라이브도 그만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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