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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미국산 쇠고기 군납 재개인가

[주장] 소비자로서의 60만 장병의 힘을 오용하지 마라

등록|2009.02.20 21:09 수정|2009.02.20 21:09
국방부의 미국산 쇠고기 군납 재개

작년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국방부는 의외의 발표를 감행했다. 국군 장병들에게 그해 8월부터 한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군납 금지도 모자라 호주, 뉴질랜드산 수입 쇠고기와 함께 한우를 배식하겠다는 국방부의 결의에 찬 결정.

물론 당시 시국이 워낙 어수선하고 정부에게 불리하다 보니 국방부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어쨌든 그 소식은 나름 신선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국방부가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기민하게 행동하는 거려니.

그러나 최근 국방부의 ‘미국산 쇠고기 군납 재개’ 소식은 잠깐이나마 국방부를 기특하게 여겼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결국에는 국방부가 나의 동생, 후배 뻘 되는 국군 장병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이겠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설마 했으나 역시나인 그들. 그래, 그러면 그렇지.

개인적으로 이번 국방부의 발표는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최근 ‘제2롯데월드’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직까지 우리 군부는 해방 이후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5.16과 12.12, 5.18의 전통이 어디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다만 국민들이 많이 배우고 똑똑해진 탓에 좀 더 눈치를 보게 된 것일 뿐.

어쩌면 우리 국민들은 국군 장병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곧 먹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부의 얄팍한 눈속임도 눈속임이지만, 군인이라는 계급만큼 정부가 마음대로, 그리고 편하게 휘두를 수 있는 만만한 이들도 드물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핑계로 국가가 개인에게 그 권력을 함부로 남용할 수 있는 그곳.

게다가 법적으로는 모든 대한민국 남아들이 가야 하는 군대지만, 정치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의 자식들은 이미 자유롭게 면제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 아니던가. 결국 돈도 '백'도 없는 ‘서민’들이 가서 몸으로 때우는 곳이 군대다 보니 위정자들이 그들을 대상으로 아주 쉽게 그들의 정책을 적용시킬 수밖에.

따라서 국방부의 이번 결정을 가지고 군부가 정치권력의 눈치를 봤다느니,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았느니 하는 비판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뿐이다. 원래 우리 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못하며, 국민의 건강은커녕 국군 장병의 건강마저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후진국병이라는 봉와직염을 걱정하고, 배가 아프다는데 얼치기 의무병이 감기 알약을 주는 것이 우리 군대의 수준 아닌가. 오죽하면 군대서 수술을 받느니 의가사제대를 하겠다고 우기겠는가. 이미 많은 예비군들은 군인이 하나의 마루타로 전락할 수 있음을 이미 체험한 바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 나의 후임병이 군의관으로 온 레지던트에게 연습 삼아 쌍꺼풀 수술을 받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군납의 의미 변화

예비군 육군 병장으로서 이미 군대의 선의에 대해 큰 미련과 기대를 갖고 있지 않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위의 국방부 발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그 군납 대상이 바로 미국산 쇠고기라는 점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 ‘군납’이라는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인가를 받은 민간 업자가 군에 필요한 물자를 납품함’ 정도가 되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군대가 가지는 위상이 특수한 만큼 사회적 맥락으로서 ‘군납’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우선 근대화시기를 거치면서 군대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앞장 선 조직이었다. 정당성이 약한 권력은 자신들의 보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충성스러운 군대를 길러 가장 선진화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대, 특히 그 상층부로 군납이 허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물품이란 뜻이었고 사람들은 군납된 물품들을 몰래 빼내어 자신들의 살림에 보태곤 했었다. 부대찌개라든가 군용모포 등에 관한 신화는 단순히 미군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20세기 군대를 기준으로 근대화를 겪은 이 땅의 민중들의 신화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군납의 의미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특수한 제품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소위 싸제 물건들의 질이 군용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군납용을 어딘가 부족한 물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같은 옷을 입어도 군용이라고 하면 왠지 싼 티가 나고, 같은 비누라고 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장병 수가 많은 기형적인 군대를 운용하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변화였다. 분단이란 상황과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국방의 의무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우리 군은 군축은커녕 장병의 숫자도 줄일 수 없었는데, 이 때문에 군대는 그 대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저렴하고 싼 물품을 쓰게 된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군대의 역할

소위 '쪽수'만 많은 기형적인 군대. 그러나 이와 같은 우리 군대의 특징은 또 다른 의미의 군납을 낳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대량 소비자로서의 군대가 가지고 있는 역할이다. 즉, 정부가 수많은 장병을 기반으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소비를 행하게 된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이라면 누구나 군대에서 터무니없이 음식을 많이 주었던 기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그와 같은 군납의 결과이다. 혹자는 삼시 세 때마다 닭 음식이 나와 왜 그런가 했더니 그날 저녁 조류독감으로 닭들이 폐사되었다는 뉴스를 봤다고 하고, 또 혹자는 끼니때마다 나오는 돼지를 맛있게 먹었는데 그 날 저녁 구제역이 의심되어 돼지를 대량 처분한 뉴스를 봤다고 하는 바로 그 기억들.

개인적으로는 2000년 초 군대에서 먹었던 그 귤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제주도의 귤 파동을 까맣게 모르던 우리 부대원들은 잘 해야 한 달에 한 번 먹을 수 있던 귤이 소대 당 한 박스가 나와 무척이나 기뻐했는데, 그 다음날 개인 당 귤 5박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도 역시 우리가 마루타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병사 1인 당 귤 5박스의 위력은 매우 컸다. 거의 모든 부대원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으며, 많은 이들이 설사로 화장실을 들락날락 했던 그 시절. 결국 우리는 중대장의 지시 하에 남은 귤들을 모두 박스 채 뒷산에 파묻었고 오랫동안 귤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런 유쾌하지 못한 기억만으로 위와 같은 행위를 모두 잘못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문제가 있는 물품들을 국민들의 세금으로 사들여 사리에 맞지 않게 군대에 보급하는 것은 문제지만, 남아도는 물품들을 일괄 구매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회적인 순기능을 양산할 것이다. 힘든 농민들에게는 손해를 덜어줄 것이며, 물품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극빈층이 늘어나는 추세라면 이는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작년 국방부가 한우를 군납한다고 했을 때 내가 솔깃했던 이유는 국방부의 결정으로 우리의 축산업이 그래도 그나마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미 우석훈 박사가 지적한 바 있듯이 군대가 그 주위 축산 농가의 일정부분 노동력을 대고, 바로 그 쇠고기를 구입한다면 이는 그 지역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모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방부가 오히려 이와 같은 정책들을 발전시키기는커녕 광우병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군납을 재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WTO 규정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군납 불허를 공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국내 제1의 소비주체로서의 위치를 망각한 군의 정치적인 판단 때문에, 급식체제 안에서 선택권을 잃은 개인에게 국가가 원치 않은 음식을 강요하는 행위이다. 도대체 소비주체로서의 군과 WTO규정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혹여 단가의 문제라면 유통구조를 얼마든지 개선하여 더 좋은 음식을 더 싸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 기본 60만 장병을 소비자로 둔 국가, 군대의 힘 아닌가.

결국 이번 국방부의 결정은 국가가 지니고 있는 자원의 재분배 기능을 포기함으로써 공동체 번영의 길을 놓치는 일이다. 단순히 군납의 기능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요소로 파악하는 이상 국군은 그들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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