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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

등록|2009.02.22 11:28 수정|2009.02.22 11:28
고 김수환 추기경을 너나 할 것 없이 본 받자고 한다. 조문객만 40만명이 넘었고, 장례식이 끝났지만 많은 이들이 묻힌 곳까지 찾아가고 있다. 언론은 '교황까지 부러워할 일'이라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는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생명 사랑도 한 몫했다.

삶과 섭리에 순종하는 방식을 실천해온 김 추기경의 죽음이 생명 사랑이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사회 현상과 맞물리면서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한 생명 사랑은 단순히 죄 없는 사람의 생명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죄 있는, 그것도 다른 사람을 죽여 국가로부터 생명권을 박탈당하는 사형수 생명까지 사랑한 것.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인해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 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까?”( 1993년 평화방송·평화신문 새해 특별대담 중 '사형폐지를 주장'하며)

그는 평화방송과 평화신문 대담에서 뿐만 아니라 신문에 직접 기고하면서까지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가톨릭 신문이 시리즈로 실었던 '사형제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을 통하여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이므로 그 생명 또한 존엄하다면서 어느 누구도 존엄한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면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창조주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박탈한 권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가나 다른 어떤 ‘권위’에 의해서 사형제도가 존속해 오는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가톨릭신문 <사형제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2007.10.7)

김수환 추기경은 사형제는 범죄예방 효과가 없다면서 사형제 폐지를 통하여 흉악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자유로운 인격과 존엄성을 구현하는 정의로운 사회질서가 중요하며, 존엄성과 인권보장을 통하여 공동체 질서를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인격과 존엄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틀은 바로 정의로운 사회질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보장은 인간생명과 인간성의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국가, 사회, 종교단체가 다 함께 인간 중심의 공동체 질서를 마련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사형제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2007.10.7)

40만명이 조문행렬에 참여하고, 온 미디어가 김 추기경을 기리는 기사를 쏟아내면서 그가 살았던 삶을 살아가자고 외쳤다. 그렇다면 '사형제 폐지'를 찬성했던 추기경 말과 글은 과연 우리 사회를 향해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21일 법무부는 사형제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의할 점은 사형제 존속과 폐지와 사형집행을 함께 물었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최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 남녀 3천여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유지와 집행'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이 사형제 유지와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형 집행 찬성 64.1%, 사형 집행 반대는 18.5%, '모르겠다'는 응답은 17.3%로 집계돼 사형집행 찬성이 3배를 넘는다. 사형제 찬성은 64.1%, 반대는 13.2%, '모르겠다'는 응답은 22.6%였다. 사형제 찬성이 무려 약 5배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여론조사를 실시한 법무부가 답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강아무개 사건 이후 사형제에 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여론의 추이를 다각적으로 살피기 위해 이번 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형수 생명까지 존엄하다면서 그 생명을 다른 이가 박탈할 수없다고 말했던 김수환 추기경 말과 글을 통하여 사형제와 사형집행을 여론조사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참 궁금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상과 이념을 떠나 생명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앞장서는 일은 우리 모두의 으뜸가는 사명"이라 했다. 사형제 폐지 국가가 되기를 간절하 소원했다.

강아무개 사건은 평범한 사람도 사형제와 사형집행을 찬성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여론조사는 매우 위험하다. 사형제 찬성과 폐지, 사형집행은 특정 사건이 던지는 감정을 통한 선택이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 말처럼 어떤 생명도 다른 이가 박탈할 수 없다는 인간 존엄성을 생각하며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린 강아무개 사건을 놓고 단편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고민 한 뒤 사형제 논란을 끝내야 한다.

아울러 한국의 현 정부(참여정부)가 우리의 이러한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최초로 사형제도가 없는 나라,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가톨릭신문 <사형제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2007.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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