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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추리소설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

제5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등록|2009.02.23 13:55 수정|2009.02.23 13:55

▲ <천사의 나이프>겉표지 ⓒ 황금가지



아내가 죽었다. 3명의 강도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됐다. 그나마 어린 딸은 살아남았다. 히야마는 그것이라도 감사하며 하루빨리 범인들이 체포돼 법의 심판대에 오르기를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범인들은 쉽게 검거됐다. 그러나 범인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법은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사회적인 의식이 아직 성장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어른처럼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에 갱생을 시킨다. 시설에 보내는 방법 등이 그 일환이다. 히야마의 아내를 죽인 3명의 아이들도 그런 조치를 당한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히야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안다. 자신이 대신 죽이고 싶다는 히야마의 울분에 찬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건 이후, 히야마는 어린 딸을 보살피면서 살고 있다. 꽤 시간이 지나 충격은 어느 정도 가신 상태다. 그런데 경찰이 갑작스럽게 방문한다. 히야마의 가게 근처에서 3명의 아이 중 한명이 살해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히야마를 용의자로 보는 것인가? 하필이면 히야마의 알리바이가 애매할 때 사건이 벌어졌다. 히야마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또 다시 사건이 벌어지고 아이가 살해당할 뻔 한다. 극적으로 구출됐다. 그러나 나머지 아이는 살해당했다. 히야마와 비밀스럽게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누명이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피해자인 히야마를 몰아세우고 있다. 히야마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사건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일본의 저명한 추리소설 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천사의 나이프>는 뭔가 다르다. 일단 줄거리부터 다르다. ‘소년법’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무기력한 법 앞에서 개인적으로 복수하는 주인공들을 만들어냈었다. 반전이나 트릭이 다를지언정 전체적인 줄거리는 비슷했다. 그러나 <천사의 나이프>는 복수를 포기한 주인공이 다시 그들과 엮이면서 위협을 당한다는 내용으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이런 소설들은 소년법을 비판하는 경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벌 받지 않을 것을 알고 범죄 저지르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천사의 나이프> 또한 초기에는 그런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의 갱생 과정을 조사하던 중 히야마가 소년법의 특혜를 입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위기는 새롭게 변한다. 소년법이 존속해야 하는가, 없어져야 하는가, 의 이분법적인 문제를 넘어서 진정한 갱생의 의미를 묻는다. 한 단계 더 전진한 셈이다.

야쿠마루 가쿠는 이 새로움을 다양한 트릭과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펼쳐 보이는데 그 모양새가 능숙하기 이를 데 없다.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추리의 즐거움과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한데 섞어냈다. 근래에 보기 드문, 완성된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단지 순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사의 나이프>는 그 생각이 편견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그만큼 <천사의 나이프>는 거듭났다. 제5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천사의 나이프>, 오랜만에 본격 추리의 맛을 만끽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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