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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얼굴도 못봐... 죽겠습니다  가게 문닫고 공공근로 나오래요"

[현지 르포] 금강산관광 중단 7개월 '폐허'로 변한 강원도 고성

등록|2009.02.23 12:13 수정|2009.02.23 12:13

▲ 지난 18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자산삼거리. '금강산 가는 길목'이라 쓰인 간판 밑으로 덤프트럭만 오가고 있다. ⓒ 김영균


"환영, 금강산 가는 길목, 희망의 땅, 살기 좋은 고성"

지난 18일 오후 3시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자산삼거리. 남한 통일전망대와 북한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4차선 도로 위에 대형 구조물이 솟아 있었다. '금강산 가는 길목'이라고 표시된 구조물 아래로 차들이 오갔지만, 관광객을 실은 버스나 승용차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공사용 대형 덤프트럭들만 요란한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다.

자산삼거리를 지나 16km를 더 달려서 도착한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민통선과 맞닿은 강원도 최북단 마을이다. 지난 2003년 2월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된 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이 곳은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7월 고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명파리는 '인적 끊긴 시골'로 변했다.

"예전엔 평일에도 북적... 거의 버스터미널 수준이었는데"

"서글퍼요, 정말...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명파리에서 가장 북쪽, 민통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끝집건어물' 가게를 열어 놓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김미란(가명·40대 초반)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금강산 육로관광이 한창이던 지난 2004년 남편 강아무개(45)씨와 함께 이곳에 가게를 열었다. 한창 장사가 잘 되던 때는 하루 수입이 100만원도 넘었다. 하지만 금강산관광 중단 뒤로는 생계가 막막해졌다. 남편 강씨가 운영하던 금강산관광 여행사도 문을 닫았다. 가게를 놀릴 수 없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하루 '오징어 1축'도 팔기 힘들다고 했다.

"그 땐 버스가 얼마나 많았는데, 평일에도 북적북적했죠. 거의 버스터미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승용차 한 대도 보기 어렵네요. 그래도 예전엔 통일전망대 가는 자가용이 지나가다가 가끔 서기도 했는데, 요샌 경기가 어려우니까 아예 차를 세우지도 않아요."

김씨는 매일 가게에 나와 연탄난로를 켜 놓고 한 시간에 몇 대 오가지도 않는 승용차를 쳐다보다 들어간다. 운이 좋으면 손님 1~2명은 받을 수 있지만, 공치고 들어가는 날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한숨을 쉬던 김씨는 급기야 대통령과 정부에 원망을 쏟아냈다.

"이런 일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권 바뀌고 나니까 이렇게 돼버렸어요. 얼마 전에 TV 보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소 나오는 영화(워낭소리) 관람하고 웃고 그러데요. 한가하게 소 나오는 영화나 볼 땝니까? 지금 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데…."

▲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7번 국도변 가게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뒤로 거의 대부분 문을 닫았다. ⓒ 김영균


▲ 명파리 7번 국도변 가게들. ⓒ 김영균


김씨 가게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99건어물' 주인 권아무개(54)씨도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승용차가 멈춰서자 손님인 줄 알고 황급히 뛰어나오던 권씨는 "요새 장사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맞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거지 뭐. 우리도 장사 잘 될 때는 매일 7~8대씩 버스가 섰어. (주차장을 가리키며) 여기 봐. 주차장이 이렇게 넓은데도 차 세울 데가 없었으니까. 근데 요새는 진짜 죽지 못해 가게 문 열어놓고 있어."

옆에 섰던 권씨의 부인은 "거짓말 보태서 한 달에 수천만원씩 손해 보고 있다"고 푸념을 더했다.

"가게를 통째로 전세를 냈으니까, 문 안 열어도 손해를 봐요. 예전에 우리 가게엔 물건 파는 아줌마를 3명이나 뒀었어. 그런데 장사가 안 되니까 다 내보냈지. 지금 둘이 나와서 있는데도 하루 손님 1명도 보기 힘들어."

권씨 부부의 화살도 정부를 향했다. "도대체 서민 살리는 정책이라는 게 뭐냐"는 격앙된 목소리였다.

"아니, 우리 정부도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될 걸 괜히 자존심 싸움하는 것 아냐? 북한도 동족인데, 계속 오고 가고 해야 통일도 되고 하는 거지. 문 닫아걸고 싸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건지, 이거 참 답답해서…."

"얼마 전에는 고성군에서 사람이 나와서는 장사가 안되니까 가게문 닫아놓고 공공근로 나오라고 하더라구. 이게 말이 돼? 장사하는 사람한테 가게문 닫으라니…. 하루하루가 죽겠는데, 정부에서는 몇 년 뒤에 뭘 하겠다는 정책만 내놓고."

권씨 부부는 "오늘도 손님이 없어 오후 4시면 문을 닫을 것"이라며 무거운 발길을 가게 안으로 돌렸다.

이날 오후 돌아본 명파리 7번 국도변에는 김씨나 권씨의 가게처럼 '금강산관광 호황'을 누리던 가게들이 즐비했다. 쉼터민박, 명파슈퍼, 금강산슈퍼, 평양면옥, 식당 금강산가는길…. 하지만 문을 연 가게는 거의 없었다. 인적 끊긴 거리에는 이따금 집을 나온 개나 고양이만 나타났다 사라졌다.

지역 부동산업자 "금강산관광 끊긴 뒤로는 문의전화도 없어"

"작년 7월 이후로는 여기 경제가 완전히 침체됐지. 대진항 가봐요. 밤 8시만 되면 불빛이 없어. (팔려고) 내놓은 횟집도 많고. 이 부동산도 문을 닫을까 해. 금강산관광 끊긴 뒤로는 외부에서 문의전화도 없어요."

명파리에서 거진읍으로 통하는 현내면사무소 소재지 인근에서 S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부동산업자는 "금강산관광이 올스톱되면서 동해권, 특히 고성은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탄했다.

"여기 공장이 있나, 기반시설이 있나. 그냥 금강산관광으로 먹고 살았는데, 그것마저 안 되니까 원주민들도 할 일이 없는 거죠. 기껏 하는 일이 공공근로 사업인데, 하루이틀이지 매일 산에 가서 간목하고 산불감시하고…. 어떻게 먹고 살겠어요?"

그는 "여기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 중단 때문에 속초, 양양도 굉장히 경제가 어렵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대진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쪽 간성읍, 거진읍에 재래시장 뒷골목 한번 가 보세요. 다 문 닫고 있어요. 여기 들르는 사람들이 거기서 잠도 자고, 밥이라도 먹고 해서 장사하고 살았는데, 이젠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거 정말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는 "현대아산에서 4월인가 다시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겠다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좋겠다"면서도 "그게 현대가 말하는 대로 이뤄질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 18일 저녁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 풍경.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뒤로 항구 횟집들도 손님이 끊겨 애를 태우고 있다. ⓒ 김영균


같은 날 오후 6시께 찾아간 대진항에는 많은 횟집들이 간판불을 켜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당 안에는 손님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횟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말도 못하죠. 금강산관광 때하고 비교해 보면. 그 때가 정말 좋았지."

'금강산횟집' 주인 김경순(48)씨는 "우리 위쪽으로 횟집들이 다 문을 닫았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하루라도 빨리 금강산관광이 재개돼야 된다"면서 "주민들 생계가 달린 문제라 절박한데, 정부가 좀 도와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나마 우린 현대아산 직원들이 자주 회식하러 와서 장사하면서 살고 있죠. 그래도 관광객들이 몰려와야 나아지지 않겠어요? 4월에 금강산관광 재개한다고 현대 직원들이 말하던데,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고성군 '경제회복' 안간힘... "정부가 빨리 조치 취했으면"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뒤 고성군청도 지역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성군에 따르면,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지역 경제가 입은 직접 손실액은 25억7000여만원에 이른다. 고성군은 주민들의 생계대책을 위해 중앙정부에 실업주민 공공근로 일자리 마련 특별예산을 요청하고, 영세업자 저금리 공공자금 지원 및 전기료 등 공공요금 감면 방안을 건의했다. 하지만 타격을 입은 지역경제 회복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고성군을 찾은 이틀째인 19일. 때마침 거진읍에서는 '명태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외지 손님들로 들썩여야 할 축제장에는 지역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발걸음만 바빴다.

"명태축제요? 그거 해도 똑같아요. 외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물건 팔아주고 해야 되는데, 지역주민들만 재미삼아 구경나오니까…."

거진항 입구에서 건어물상을 하는 이아무개(45)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래도 금강산관광객들 올 때는 좀 나았는데, 그거 끊기고 나니까 명태축제도 완전히 죽어버렸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의 말처럼, 이날 돌아본 명태축제장에서 외지인을 찾기는 힘들었다. 장애인 등 행사 구경을 나온 지역단체와 봉사에 나선 재향군인회 회원들, 청소년들만이 눈에 띄었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최아무개(52·간성읍)씨는 "사실 요즘 명태도 안 잡히는데, 명태축제를 한다니까 좀 그렇다"며 금강산관광이 하루 빨리 재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태축제 이런 걸로는 지역주민들이 먹고 살 수가 없어요. 다 아는 이야기지 뭐. 동네 사람들도 그럽디다. 금강산관광이 빨리 돼야 경제도 살고 우리도 산다고. 정부에서 뭔가 빨리 조치를 취해 줬으면 해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대통령이 너무 신경 안 쓰는 것은 아닌지..."  

▲ 19일 거진항에서 열린 명태축제 모습.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손님들이 별로 없어 썰렁한 기운만 감돌고 있다. ⓒ 김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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