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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감성 제대로 어루만지는 <사랑해 울지마>

[아줌마 드라마 뒤집기 40] 조용한 돌풍, 일일드라마 공식 깨

등록|2009.02.23 17:01 수정|2009.02.23 17:08

▲ 상처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며 어루만져주는 <사랑해 울지마> ⓒ imbc






시청률이 승승장구하면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MBC <사랑해 울지마>. 시청률 추이로 보자면 4년 만에 KBS 일일드라마의 아성을 깰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초반 출발 시청률은 '막장' 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밀려 한 자리수로 고전했다.

하지만 이미 방송 초기부터 고정 시청자 층으로부터 ‘보석 같은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그런 지금 또 다른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아내의 유혹>과 <집으로 가는 길> 사이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물론 <사랑해 울지마>가 그렇다고 해서 아주 신선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우리가 즐겨보던, 우리가 즐겨 풀어내던 전형적인 홈드라마로 주인공 남녀들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전반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언뜻 보기엔 <사랑해 울지마>는 진부와 신선 사이에 어디쯤엔가 걸쳐 있는 애매모호한 드라마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전형적인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주인공 미수(이유리)의 친모는 수자(김창숙)이 아닌 신자(김미숙)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고, 난데없는 아들이 등장해 달콤한 결혼을 꿈꾸던 영민(이정진)과 서영(오승은)이 이별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 구조들 자체가 이미 우리가 전에 한 번쯤 아니 수백 번을 봤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 따뜻한 홈드라마를 표방하며 막장 드라마와 차별을 꾀하고 있는 <사랑해 울지마> ⓒ imbc



진부에서 진성성을 찾으려 고민 역력


그럼에도 ‘진부하다’, ‘식상하다’ 라는 비난보다 ‘보석 같은 드라마’ ‘모처럼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드라마’라고 칭찬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사랑해 울지마>가 제작단계에 있어 기획의도를 보면 첫 번째 이유를 알 수 있다.

기획의도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가엾을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어느 한 부분 눈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되어 줄 수 있는 드라마, 아픈 상처를 사랑으로… 용서로… 이해로 치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처럼 <사랑해 울지마>가 시청자들을 매료시키는 부분은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면서 사랑에 대한 진정성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우리는 불륜, 복수로 치닫는 극단적인 사랑의 방식에 익숙해졌다.

즉,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식상해진 내용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진부할 수도 있을 법했던 <사랑해 울지마>의 사랑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한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인물들이 완벽한 사람이 없다. 무언가 부족하고, 무언가에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주인공 미수네를 보자. 미수의 엄마는 자신의 동생 딸을 남몰래 자신의 자식처럼 키웠고, 남편을 잃고 아이들 셋을 키우느라 생활력이 강한 엄마이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너그러운 엄마였다. 하지만 그 안에 남모른 슬픔이 있었다. 자신과 동생 신자를 버리고 간 엄마(강부자), 자기 자식을 맡기고 홀연히 사라진 동생 신자까지.

미수의 엄마, 수자 동생인 신자도 마찬가지였다. 겉은 화려해 보이고 철없는 모습이지만 자식을 버린 죄책감과 미국에서의 생활고 등으로 남모른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미수의 오빠, 언니도 마찬가지이다.

오빠 태섭(김영재)은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에게도 잘하는 효자이지만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 장모의 구박을 감내해야 하고, 언니 미선(이아현)은 바보처럼 착해빠진 성격 탓에 남편과 위장결혼을 한 뒤 배신을 당한다.

주인공인 영민(이정진)도 마찬가지이다. 남부럽지 않은 실력으로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교수로 살아가지만 사랑만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들이 찾아오고, 결혼할 여자를 그 사실을 알고 파혼을 선언한다. 그 뒤로 다시 사랑에 빠진 여자 미수와의 연애를 가시밭길이다.

이처럼 모두가 하나씩의 상처를 가졌고, 모두가 완벽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에 특별한 악인이 없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영민의 애인이었던 서영이 미수와의 사이를 질투하기 시작하면서 잠시 악녀로 변신을 했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신의 이기적인 성격까지도 버릴 정도로 한 남자 영민만을 사랑했는데, 어느 날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자신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만도 하다.

<사랑해 울지마>는 이처럼 등장인물들이 나름의 개연성을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논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미수가 영민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던 비난도 있었고, 서영의 캐릭터가 영민을 집착하는 과정에서 악녀로 변신한 모습이 ‘막장 드라마’가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사랑이란 게 누구에게 마음 가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노릇이며, 누구에게 분노를 느끼고 이성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수와 서영이의 캐릭터가 여타의 드라마에서처럼 극단적이면서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것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미 기획의도를 살리기 위해서 진부한 소재를 최대한 유연하게 활용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진정성을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자체가 가벼운 것으로 그려지는 요즘, 서로의 상처와 허물을 덮고 사랑과 가족애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만으로도 <사랑해 울지마>가 충분히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아닐까.



일일드라마의 공식을 깨고 뒤틀어


▲ 일일드라마 공식을 파괴하고 내용전개 속도를 꾀하고 있는 <사랑해 울지마> ⓒ imbc

이러한 점 말고도 <사랑해 울지마>는 진부한 소재를 최대한 진부하지 않게 그려내기 위해 시청자들이 익숙할 법한 구조를 탈피하며 시청자들의 예측을 엇나가게 만들고 있다. 사실 드라마 초반부터 그러했다.

지금까지 60회 가량 진행되면서 앞으로 드라마를 어떻게 전개시키려 할까 궁금할 정도로 내용의 전개 속도가 남다르다.

물론 <아내의 유혹>처럼 템포가 유례없을 정도로 빠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일일드라마 특성을 고려해 보면 지금의 속도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초반부터 영민의 아들이 등장하며 파란을 예고했고, 싱글대디가 되는 과정을 짧게 그려내 서영과의 파경이 곧바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 역시 10회 가량에 담아졌고 영민과 서영의 갈등과 이별이 길게 늘어지지 않았다.

또한 가장 드라마의 갈등 축이었던 출생비밀 조차 단 2회에 걸쳐 밝혀졌다. 사실상 이러한 과정들이 보통 일일 드라마였다면 중반부 이후에 일어나야 했다. 특히 출생의 비밀의 경우는 인기드라마 연장에 가장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코드였기 때문에 지금에 출생이 밝혀지는 부분은 시청자들이 의아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엇을 이야기할 것이냐고. 미수와 영민의 사랑이 깊어지고 최근에는 미수의 엄마 수자의 마음이 조금씩 영민에게 기울어지는 인상을 남기고 있어 그대로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다면 <사랑해 울지마>는 종영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여기에 내용 구성에서도 기존 일일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미수의 사랑 방식이다. 사실 이전까지 일일드라마의 착한 여주인공들은 사랑에 있어 수동적이었다. 남자의 구애를 받고 착한 마음에 갈팡질팡하며 고뇌를 했던 것에 반해 미수는 사랑에 적극적이었다.

일례로 사랑을 미수가 먼저 느끼면서 사랑을 고백을 당당하게 했다. 또한 서영의 질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영과는 무관하게 영민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 때문에 미수라는 캐릭터가 적잖은 비난을 받고 논란이 있었지만 미수의 행동은 사실 솔직하다.

어차피 현실에서의 사랑은 이기적이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마음 가는데 그것을 숨기기에 버거운 것이 사랑이니, 미수의 행동이 과할지는 모르겠으나 솔직했다.

이처럼 <사랑해 울지마>는 기존 일일드라마와 다르면서도 따뜻한 감성으로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려내고자 작지만 색다른 변화를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조용한 지지를 얻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지지로 연적인 KBS 일일드라마를 뛰어 넘을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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