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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 '고소'할까 '고발'할까

[아는만큼 보이는 '법' ②] 알쏭달쏭 법률용어, 아는 게 힘

등록|2009.02.25 09:33 수정|2009.02.25 10:33

▲ 서울 서초동 서울 중앙지방법원. ⓒ 김태헌




피고-피고인-피의자.
기소유예-선고유예-집행유예.
항소-상소-상고-항고.
고발-고소-기소-제소.

언뜻 보면 모두 아는 낱말 같다. 그런데 막상 구별해서 설명하려면 그게 쉽지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선택형 문제로 접근해보자.

다음 사례를 보고 괄호 안에서 알맞은 말을 골라본다면?

유부남인 A씨는 단골 술집 마담 B씨와 사랑에 빠졌다. A씨는 B씨를 만나기 위해 이틀이 멀다 하고 술집을 찾았고, 두 사람은 결국 '모텔에 함께 가는 관계'로 발전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둘의 만남을 눈치챈 A씨의 부인 C씨는 둘이 한 이불 속에 있는 현장을 덮쳤다. 

C씨는 가정법원에 이혼 소장을 냈고, 동시에 A, B씨 두 사람을 간통죄로 경찰서에 (고소, 고발)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피의자, 피고인) 신분으로 두 사람을 불러 조사한 결과 범죄사실이 인정된다며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검찰은 B씨에 대해서는 A씨가 유부남인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전과가 없는 점을 감안하여 (기소유예,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씨는 법원에 (기소,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피고인, 피고)이(가) 되어 형사 법정에 섰다. 그는 "아내와 재결합하여 다시 살고 싶다"고 호소했으나 1심 법원은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A씨는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2심 법원에 (항소, 항고, 상고)했다.

[고소-고발] 피해자가 "처벌해달라"고 하면 '고소' ... 제3자가 하면 '고발'

형사사건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말이 고소와 고발이다. 두 용어는 수사기관에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의사표시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고소가 형사사건의 피해자(또는 법정대리인)가 직접 하는 것이라면, 고발은 제3자가 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는 "범죄로 인한 피해자는 고소할 수 있다"(223조),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234조)고 되어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배우 김태희는 2006년 자신과 관련한 악성 루머를 퍼뜨린 네티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취하한 적이 있고, 참여연대는 2007년 삼성의 비자금 의혹 등에 대해 이건희 회장을 업무상횡령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참고로, 간통, 강간, 강제추행, 모욕죄 등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데 이런 범죄를 친고죄라고 한다.

[피의자-피고인-피고] 수사 기관의 '피의자'가 법원으로 오면 '피고인'

2007년 4월 어느날 오후, TV는 일제히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앞다투어 긴급방송을 내보냈다. 모 그룹 회장이 남대문경찰서에 나타나는 장면을 내보낸 것이다.

그는 아들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은 바 있다. 이렇게 수사기관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피의자이다.

피의자가 경찰, 검찰 등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재판에 넘겨지면 신분은 피고인으로 바뀐다. 수사기관의 사건을 법원으로 넘기는 것을 기소(공소제기)라고 하는데, 기소 여부가 피의자와 피고인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기소권은 검사만이 갖고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 (기소와 달리, 제소는 민사소송 행정소송 등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수사 단계에 있으면 피의자, 법원으로 넘어오면 피고인이 되는 것이다. '경기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의 강아무개씨도 아직은 피의자다.

형사 피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 2가지. 무죄추정의 원칙과 묵비권이다. 헌법에도 나와 있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며 "모든 국민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형사사건의 피고인과 피고는 엄연히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사실. 개인 간의 민사사건에서 소송을 당한 사람이 피고이다. 민사사건은 원고의 청구가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상대방(원고)이 소송을 걸어오면 피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피고는 죄를 지었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때로는 국가가 피고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시위대로 오인한 경찰에 폭행당한 시민이 국가를 피고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판결이 나기도 했다.

[기소⋅선고⋅집행유예] 기소유예는 검사가, 선고유예⋅집행유예는 판사가

법에는 범죄자의 처벌을 유보하는 여러 가지 제도가 있다. 범행동기나 범죄후 정황, 피해자의 의사 등을 기준으로 볼 때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다면 선처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이다.

먼저 기소유예는 검찰의 권한이다. 피의자의 범죄사실은 인정되나 사건이 가볍거나 우발적으로 죄를 저지른 경우 굳이 재판까지 갈 것이 못된다고 보고 기소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는 판사가 판결선고와 동시에 내린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인에게 일정기간 동안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기간이 지나면 형이 없던 것으로 보는 제도이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개전의 정이 현저할 때'(뉘우치는 빛이 뚜렷할 때) 가능하다.

대법원은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를 "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사정이 현저하게 기대되는 경우를 가리킨다"(2001도 6138 판결)고 해석하기도 한다.

다음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집행유예이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금고를 선고하면서 일정기간(1년-5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다. 하지만 징역형을 집행한 지 3년 내에 저지른 죄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다. 또한 집행유예 기간 중 다른 사건으로 징역형이 확정되면 집행유예는 효력을 잃는다.

기소유예, 선고유예, 집행유예를 내릴 때 기준이 되는 것은 형법 51조(양형의 조건)이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후의 정황을 참작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소유예 처분은 재판을 하지 않으므로 전과가 되지 않는다. 선고유예⋅집행유예는 엄연한 유죄판결이라는 점에서 기소유예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상소-항소-상고-항고] 1심 판결에 불만-> 2심은 '항소'-> 3심은 '상고'

우리나라는 3심제를 인정한다. 재판에 불만이 있으면 2심, 3심 등 상급법원에 다시 재판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것을 통틀어 상소라고 한다.

상소에는 1심 판결에 불복하여 2심 법원에 하는 항소와 대법원에 하는 상고가 있다. 

상소를 제기하는 기간은 민사와 형사가 차이가 있다. 형사사건은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한 날을 기준으로 1주일 내에 법원에 상소장(항소장, 상고장)을 제출해야 한다. 민사사건은 판결을 직접 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한편, 항고는 판결이 아닌 법원의 결정, 명령에 대해 불복하는 방법이다. 항고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피해자가 검찰에 불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아는 것이 힘이다

일반인이 복잡한 법률용어를 다 알 필요도 없거니와, 굳이 외울 이유도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용어를 이해하면 훗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때로는 법도 아는 것이 힘이다.

*사족 :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서 정답을 알려드린다. 괄호 안에 있는 용어 중에서 앞쪽에 있는 것이 모두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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