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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청은 '불만', 당내는 '불신' 이명박 정부 '불통', 이유 있다

한나라당, 계파 갈려 동력 상실... 청와대는 여당 무시

등록|2009.02.24 21:55 수정|2009.02.24 21:55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오대일 기자)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 소리가 청와대에 바로 통하도록 소통의 고속도로를 만들겠다."


지난해 7월 3일 당 대표경선 때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했던 말이다. 당이 국민과 청와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약속은 과연 잘 지켜졌을까. 이로부터 7개월 뒤인 지난 19일, 박 대표는 그 결과를 이렇게 고백했다.

"그동안 노력했지만, 고속도로는 안 됐다. 그래도 국도 정도는 됐다고 생각한다."

지난 집권 1년을 돌이켜보면, 여당은 민심이 "청심"(박 대표는 '청와대의 마음'이란 뜻으로 이런 표현을 썼다)이 되도록 하기는커녕,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는 일이 잦았다. '당·정·청 불통'이란 말이 1년 내내 따라다녔다.

게다가 당은 '이명박계'와 '박근혜계'로 갈려 '한 지붕 두 가족'이란 지적을 듣고 있다. 박희태 대표가 반년이 넘도록 '국민과 청와대 사이의 소통 고속도로'를 놓지 못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당·정·청 불통] 감세정책 등 주요 경제정책마다 엇박자

'경제살리기'를 전면에 내걸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정책에서 당·청간 혼선을 빚는 일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층인 재벌과 부동산 부자를 위한 정책에서 특히 그랬다. 18대 국회 초반부터 초대 경제수장이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총대를 멘 듯 이런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여당조차 난색을 표했지만, 그에겐 마이동풍이었다. 여권에선 "강 장관 뒤엔 대통령이란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 이명박정부 출범 1주년을 앞두고 23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건물에 "1분 1초를 아껴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부자감세안·종부세 완화안으로 충돌... "당이 끌려다니기만 한다"

대표적인 불협화음 사례는 지난해 9월 1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이다.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이견을 표시했지만, 정부는 ▲양도소득세 비과세 상한선 완화 ▲법인세 인하 ▲상속·증여세 완화 등을 개편안에 모두 포함시켰다.

여당의 경제통들조차 "서민들은 생활이 어려워서 난리인데 있는 사람이 상속·증여 받는 것까지 세금 부담을 낮춰줘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이한구 의원)고 정부의 '부자감세'에 불만을 드러냈다.

같은 달 당과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안을 놓고도 부딪쳤다. 정부가 과세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크게 완화한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당에선 "당이 정부에 질질 끌려만 다닌다"는 자조가 터져나왔다.

'종부세 논박'은 11월까지 이어졌다. 헌법재판소가 세대별 합산 과세가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이번엔 종부세 존치 여부를 두고 당·청이 입씨름을 벌였다.

고위당정회의에서 당시 강만수 장관이 "세제 합리화의 차원에서 종부세는 종국에 폐지돼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홍준표 원내대표는 "헌재의 결정은 위헌이나 헌법 불합치가 난 부분만 바꾸고 나머지는 그대로 놔두라는 의미"라며 맞받아 쳤다. 결국 정부가 당에 전권을 넘겼고 한나라당은 '과세 기준 6억원 유지'로 당론을 정했다.

'11·3 경기부양 종합대책'도 정부가 사전에 당과 조율하지 않고 발표한 경우다. 당시 주요 당직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발표한 뒤에야 자세한 내용을 받아봤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해 4월 22일 저녁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당선자 부부 동반 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정치인 입각해야" 당 의견 무시하다 '이달곤 장관' 받아

정무 소통도 원활했다고 보기 어렵다.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가 귀를 막았다", "당을 무시한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막전막후가 단적인 예다.

정치인 입각에 부정적이었던 이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기까지 당과 청와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간 박희태 대표는 청와대에 여러 차례 '의원 입각'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지난달 19일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에서도 박 대표는 같은 건의를 했다. 그러나 1시간 뒤, 청와대가 당에 알린 부분 개각 명단엔 박 대표의 건의가 반영되지 않았다. 박 대표는 내정자들을 두고 "나도 처음 듣는 사람들"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후 이 대통령은 후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당이 거듭 추천한 '이달곤 카드'를 받아들였다. 내정 발표도 박 대표가 국회에서 먼저 한 뒤 청와대가 수용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당의 반발을 의식해 체면을 세워주려는 '배려'다.

[당내 불통] 여당은 아직도 '한 지붕 두 가족'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당내 소통도 껄끄럽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박 대표가…"라고 말을 건네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되묻는다. "어떤 박 대표요?" 박희태 현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중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냔 뜻이다.

박 전 대표는 퇴임한 지 2년 반이 넘었지만 아직도 '박 대표'로 불린다. 당내에 엄존하는 '박근혜 파워'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현재 당내 박근혜계는 60여 명으로 대선후보 경선 당시보다 두배 가까이 늘었다.

'당심'에서 지고도, '민심'에서 이겨 당 대선후보가 됐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이래서 여전히 박 전 대표가 불편한 존재다.

박근혜 '발언정치'에 여권 '출렁'

주요 정국 때마다 박 전 대표는 '말 한마디'로 여론을 흔들었다. 대부분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재협상 밖에 해결방법이 없고, 그렇게 해야만 된다면 재협상도 해야 한다." (2008년 5월, '쇠고기 촛불정국' 당시 기자들과 만나)
"경제를 살릴 묘약은 신뢰다." (2008년 10월, 의원들과 오찬에서)
"정권 교체를 했는데 어려움이 많아 면목이 없다." (2008년 11월, 오찬 기자간담회)

지난 2일 청와대 회동 때는 대통령에게 "정부가 바라보는 관점, 야당이 바라보는 관점, 국민이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차이가 크다"며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국민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여론 수렴 없이 무조건 법안을 밀어붙이는 방식을 꼬집은 말이다. 지난달에 이은 두 번째 비판이었기에 작심하고 한 얘기로 들렸다.

친박진영이 미디어 관련 법안, 사회개혁 법안 등 주요 쟁점법안 처리를 친이에 맡기고 '침묵'하는 이유도 박 전 대표의 이런 판단을 의식해서다.

앞서 공천파동에서도 박 전 대표는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눴다. 이 한마디로 그는 대통령과 측근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친이↔친박, 틈만 나면 보이지 않는 '전투'

이명박계와 박근혜계도 틈만 나면 전투모드에 돌입한다. 

지난해 수도권규제완화안을 둘러싸고는 서울-경기권 중심의 친이와, 영남-충청권의 친박이 '수도권 견인론'↔'균형 발전론'으로 맞섰다. 친이인 안경률 사무총장이 사무총장 권한을 대폭 강화한 당 혁신안을 내놓자 친박이 반기를 든 일도 있다.

이러니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석에서 심심찮게 당을 "한 지붕 두 가족", "두나라당"이라고 비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는 3월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 4월 재·보선 공천, 5월 당협위원장 교체, 10월 재·보선 공천 등 앞으로도 양쪽이 부닥칠 사안은 산 넘어 산이다. 여기다 차기 대선후보 경선이라는 '대전'까지, 한나라당은 늘 내전이 내재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친여매체'인 '조·중·동'조차 "동력 잃은 여당"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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