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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25)

[우리 말에 마음쓰기 562] '작고 힘이 없는 존재', '제 스스로의 존재' 다듬기

등록|2009.02.25 11:26 수정|2009.02.25 11:26
ㄱ. 작고 힘이 없는 존재

.. 나는 최근 몇 년 전까지 작고 힘이 없는 존재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있었습니다 ..  <잘 먹겠습니다>(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 그물코, 2007) 9쪽

'최근(最近)'은 '요사이'나 '요즈음'이나 '요'로 고칩니다. "몇 년(年) 전(前)까지"는 "몇 해 앞서까지"로 다듬어 줍니다.

 ┌ 작고 힘이 없는 존재인 내가
 │
 │→ 작고 힘이 없는 사람인 내가
 │→ 작고 힘이 없는 내가
 │→ 작고 힘이 없는 보잘것없는 내가
 └ …

우리들은 작다고 하든 크다고 하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목숨 하나 붙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작고 힘이 없는 목숨붙이인 내가
 └ 작고 힘이 없는 주제인 내가

우리는 사람이니 '작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고, 힘이 없는 목숨붙이이니 '힘이 없는 목숨붙이'라고 가리킬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이런 말 저런 말 넣지 말고 "작고 힘이 없는 내가"나 "작으면서 힘도 없는 내가"로 적을 수 있습니다.

 ┌ 작고 힘이 없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작고 힘이 없는 주제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뒤따르는 '내가'까지 덜고 "작고 힘이 없으면서"만 적어 봅니다. 어떤 말이든 꾸밈없이 적을 때가 가장 단출하고 또렷하고 느낌이 살고 넉넉합니다.

ㄴ. 제 스스로의 존재를

.. 다시 돌아보니 누군가에게 띄웠다고 생각했던 이 편지 창은 그들과 저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제 스스로의 존재를 들여다보기 위해 만든 작은 창이었으며 부끄러운 독백이었습니다 .. <초록의 공명>(지율, 삼인, 2005) 5쪽

"그들과 저의 거리감"은 "그들과 저 사이에 놓인 거리"나 "그들과 저한테 가로놓인 거리"로 다듬어 봅니다. "극복(克服)하기 위(爲)해"는 "이겨내려고"나 "딛고 일어서려고"로 손보고, "들여다보기 위(爲)해"는 "들여다보고자"나 "들여다보려고"로 손봅니다. '독백(獨白)'은 '혼잣말'이나 '중얼거림'으로 손질합니다.

 ┌ 제 스스로의 존재를 들여다보기 위해
 │
 │→ 제가 누구인가를 들여다보려고
 │→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보려고
 │→ 제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 …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자기 목숨은 어떻게 태어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를 돌아보곤 합니다. 때로는 이런 모습조차 돌아보지 못할 만큼 바쁘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은 거의 모든 사람이 제 발자국을 돌아볼 겨를 없이 살아가지 않느냐 싶습니다. 한 번 태어나고 죽는 이 소담스러운 목숨을 고이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간다고 할까요. 이러는 가운데 내 삶뿐 아니라 이웃 삶을 보지 못하고, 이웃 삶을 보지 못하면서 나라 삶을 보지 못합니다. 삶을 삶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우리 일과 놀이 또한 일과 놀이 그대로 보지 못하고, 이러는 동안 우리 말과 글도 말과 글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 터전과 우리 마을을 고이 껴안지 못합니다.

 ┌ 제 모습을 들여다보려고
 ├ 제 참모습을 들여다보려고
 ├ 제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려고
 └ 제가 걷는 길을 들여다보려고

지율 스님은 천성산에서 부처님(또는 하느님)을 보았고, 이 님을 고이 껴안고자 온몸과 온마음을 바쳤습니다. 당신 스스로 옳게 서면서 당신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옳게 설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천성산이라는 곳을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오로지 우리 눈에는 돈만 스며들고 끼어들고 젖어듭니다. 돈에 따라 세계화를 외치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외치고 군비증강을 외치며 오바마를 외치는데다가 재개발과 영어바람을 외칩니다. 우리 삶을 외치거나 우리 이웃을 외치거나 우리 스스로를 외치는 법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삶을 보았으면, 굳이 외치지 않고 따뜻하게 껴안을 테지요. 우리 이웃을 보았으면 구태여 외치기보다 넉넉하게 보듬을 테지요. 우리 스스로를 보았다면 딱히 외칠 까닭 없이 가만히 두 손을 맞잡을 테고요.

 ┌ 제 삶을 들여다보려고
 ├ 제 삶과 길을 들여다보려고
 ├ 제 삶과 길과 모습을 들여다보려고
 ├ 제 삶자락을 들여다보려고
 └ …

나다움을 보고 너다움을 보며 우리다움을 보아야 합니다. 아니, 나다움과 너다움과 우리다움을 볼 수 있을 때 바야흐로 참다운 아름다움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즐거움을 얻기 어렵고, 너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사랑을 펼치기 어려우며, 우리다움을 보지 못하면서 믿음을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다움'을 잃거나 놓으면서 말을 잃거나 놓칩니다. '다움'을 찾지 않으면서 글을 잊거나 동댕이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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