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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하고만 '통'해서 <조선>에 찍혔나?

[取중眞담] 성희롱 발언 박범훈 총장, 뒤늦게 조선-동아에 몰매

등록|2009.02.26 12:43 수정|2009.02.26 13:42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이명박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23일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초청 강연회에서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며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한나라당 친이(親李) 의원 모임에 가서 특강을 했다가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박 총장은 지난 23일 한나라당 의원 연구모임인 '국민통합포럼'(대표 안상수)과 '함께 내일로'(공동대표 최병국·심재철)가 공동주최한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초청강연회에서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한다'는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국악을 전공한 박 총장은 이날 수십 명의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서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원)을 소리꾼과 고수로 비유해 고수는 아첨성 추임새를 할 것이 아니라 소리꾼과 같은 운명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취지로 열강을 했습니다.

박범훈 총장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난에 웬 풍류 타령이냐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풍각쟁이(본인 표현을 빌리면 '예술하는 사람')의 입담과 쇼맨십으로 들어줄 만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 풍각쟁이는 관객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말에 도취해서인지 몰라도, 소리꾼으로 출연한 자신의 여제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혹시 거두절미한 것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그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동아닷컴박범훈 총장의 부적절한 발언 기사를 국회 문방위 직권상정보다 더 비중있게 배치했다. ⓒ 동아닷컴 캡춰


"미스코리아 (대회 하면), 이런 이쁜 아가씨들만 다 나와 가지고 고르잖아요. 진선미, 요새 그게 없어졌는지 모르겠는데, 참 그거 심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심사하기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럴듯한 사람을 하나 갖다가 세워놓고 옆에다 못난이를 갖다놓으면 금방 이쁘게 보여.

원래 요렇게 생긴 토종이 애기 잘 낳고 억척스럽게 살림 잘하는 스타일이죠. 이제 음식도 바뀌고 해서 요즘엔 키가 큰데 (여제자를 가리키며) 이쪽이 토종이고 표본이라면 저야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닙니까. 요새 뭔가 우리 때와는 음식이 달라서 길쭉해지고 했는데 사실 요 (조그만 게) 감칠맛이 있고, 이렇게 조그만 데 매력이 있습니다. 시간상 제가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 못 드리겠는데..."

여성의 상품화 혹은 여성 비하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한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비교육적 발언의 당사자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총장이었습니다. 본인은 정작 "시간상 제가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 못 드리겠는데…"라고 아쉬워했습니다만, 사실 더 자세하게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했더라면 더 큰일 날 뻔했습니다.

처음 발언 내용을 접했을 때 떠오른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마사지걸' 발언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에 중앙일간지 편집국장 10여 명과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에 한 "(태국에서) 마사지걸을 고를 때는 못생긴 여자를 고르는 것이 서비스가 좋다"는 발언 말입니다.

박 총장은 지난 대선 전에는 이명박 후보 캠프의 문화예술정책위원장을 맡았고, 대선 이후엔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른바 '폴리페서'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유유상종이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박 총장의 강연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처음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뒤도 아니고 이틀 뒤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합뉴스를 필두로 해서 조선닷컴과 동아닷컴이 이 기사를 대서특필한 것입니다.

조선 톱1, 동아 톱3... 뒤늦게 이 기사를 키운 까닭은?

조선닷컴조선은 이날 국회 문방위 언론관계법 기습상정이라는 빅뉴스가 있음에도 박범훈 총장의 부적절한 발언을 더 비중있게 배치했다. 이 기사는 톱1에 배치돼 있다가 톱3으로 내려왔다. ⓒ 조선닷컴 캡춰


조선(중앙대 총장, 여 제자에 "감칠 맛 있다" 발언 물의)은 큼지막하게 머리기사로 앉혔고, 연합 기사를 전재한 동아(여제자 가리키며 "이런 토종...감칠맛 있다"- 박범훈 중대총장, 공개강연서 부적절한 발언) 역시 톱에서 세 번째로 비중 있게 배치했습니다. 특히 이날은 국회 문방위 언론관계법 기습상정이라는 빅뉴스가 있음에도 두 언론은 이 가십성 기사를 더 비중있게 배치했습니다.

사실 기사 내용이야 대동소이합니다. 다들 "중앙대 박범훈 총장이 한 강연회에서 자신의 여성 제자를 가리키며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조인스닷컴도 이 사안을 다루긴 했지만, 조선-동아가 이 기사를 각각 톱1과 톱3으로 왜 이렇게 주요하게 배치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25일자 중앙일보를 펼쳐본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중앙일보는 이날 센터폴더면(14~15면)의 양 날개에 박범훈 총장과 박용성 이사장 사진을 앞세운 중앙대 이미지 광고를 큼지막하게 실었습니다. 업계에서 센터폴더 광고는 1면 광고 못지않게 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불황기에 대학이 이런 광고를 실었으니 신문사로서는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날자 조선-동아에는 이 고마운 광고가 실리지 않았습니다. 조선-동아가 이렇게 정색을 하고 키운 것은 혹시 '올커니, 너 잘 걸렸다, 이참 한번 당해봐라' 이런 심보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뒤늦게나마 사회적 유명 인사의 저급한 성 의식에 확대경을 들이댄 것은 언론으로서 당연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중앙일보 중앙대 광고25일자 중앙일보 센터폴더면에 실린 중앙대 이미지 광고. ⓒ 중앙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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