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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디딘 땅도 현실이다

신현수 시인 시집<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등록|2009.02.28 17:10 수정|2009.02.28 17:10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신현수 시인의 5번째 시집 ⓒ 이즘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를 쓴 신현수 시인은 부평고등학교  현직 국어 교사다. 손세실리아 시인을 통해 순백의 아름다운 양장본 시집을 건네받고 책을 펼쳐 읽으며 든 느낌은 뭔지 모를 불편함이었다. 잘 조어된 시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의 중간 중간 걸러내지 않은 욕설들이 눈에 들어 올 때는 목에 뭔가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불편함을 참아가며 한 장 한 장 시집을 넘겨 읽어가노라니  어느덧  내 자신이  현실 속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싸해져 왔다. 그랬다 그의 시는 말 그대로 '날것'이었다. 조미되거나 치장되지 않은 날것이 어느새 나에게는 생소함과 불편함이 돼 있었던 것이다.

어떤 저항

모의고사 보는 날
점심시간이 평소와 조금 달라졌다고
정해진 반 순서대로
'질서 있게' 즐을 안서고
미친놈들처럼 학생식당 앞으로 마구 달려와
개떼처럼 이리몰리고 저리몰리고 하길래
나도 나이들 따라 미친놈처럼 이성을 잃고
몽둥이를 막 휘두르면서
점심식사 지도를 마치고
교무실 내 자리에 와 앉았는데
엉덩이가 축축한 게  이상해
벌떡 일어나 의지를 내려다봤더니
글쎄 그새 어떤 놈이 내 의자 방석에
물을 부어놓고 도망갔던 것이다.-어떤 저항 전문-

저 시를 읽으며 대부분 선생님보다 덩치가 클 아이들과 정신없이 씨름하는 전쟁터를 방불할 점심시간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그려진다.  그래서  그냥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것이 바로 투박함 속에 담긴 진정성이다.  아마도 시인은 일부러 계산하지 않았겠지만 투박함 속에 담긴 진정성이 갖는 힘을 선험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나 보다.

그는 교사며 시인이지만  미친 시대의 경주에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고 함께 고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시에서 그런 그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잠시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잘 포장되어 치부가  속속들이 가려진 시에만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 것이 불편함을 더 크게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시를 다 읽고 난 후에야  시인의 프로필을 자세히 읽어봤다. 그의 프로필은 그의 시가 지향하는 길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89년 학생들의 야간 자율학습 폐지를 주장한 이른바 전교조 사건으로 해직, 94년 복직되기까지 전교조 활동만이 아니라 복지센터. 문인 협회,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 시민연대 등에서 활동했다. 그의 활동 무대만 보더라도 그의 시를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시에는 그가 만난 문인, 간사, 학생, 학교생활의 단면까지 포장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드러난다.  이른 바 '생얼'이 주는 충격이 가시고 나면 슬그머니 내가 선 자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충격을 발문을 쓴 조제도 시인은 한마디로 '신현수 표 시에는 폼이라는 게  없지만 그것은 곧 정직함과 통한다'고 표현했다. 시의 형식을 취한 생활 속 반추를 겸한 자기고백서는 표지처럼 순결한 백색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출판기념회에서 잠깐 마주친 시인은 그의 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시에 문외한인 나는 그저 시를 통해 나름대로의  느낌으로 그가 맛본 세상을 엿볼 뿐이다.  어쨌거나 그가 시인으로 또 신념 있는 교사로  시쓰기와 가르침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는 신현수 시인의 5번 째 시집으로 이즘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이 시집의 수익금은 북한 어린이들에게 빵을 나눠줄 수 있는 밀가루를 보내는데 쓰여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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