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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에서 찾은 소중한 선물

잘못만 한 인생은 아니었을 거란 자위

등록|2009.03.01 15:08 수정|2009.03.01 15:08
오늘도 새벽에 있어났습니다. 경제적으로 고민이 깊으니 당최 잠이 안 와서 말이죠.
하지만 주책없이 배는 고프기에 몸이 아픈 아내 대신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캔 꽁치와 신김치로 찌개도 만들었습니다.

밥이 뜸이 드는 시간을 이용하여 예전에 이런저런 글쓰기 등의 묶음을 갈무리 해둔 클리어 화일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사이버대학 2학년이 되는 저도 공부하고 자료로 정리할 것이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사용했던 클리어 화일을 모두 비워 재활용하고자 한 것이지요.

다락에 올라가 대여섯 개의 클리어 파일을 가지고 내려와 그 안의 내용물을 죄 꺼냈습니다. 그걸 분류하며 노랑 봉투에 집어넣노라니 예전에 보관했던 많은 자료들이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중엔 예전에 투고와 기고를 하여 활자화된 것에서부터 각종 장르의 소중한 정보도 많았는데 가장 압권은 딸이 언젠가 써서 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 축전 서신이었습니다.

▲ 딸이 예전에 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전입니다 ⓒ 홍경석



'엄마, 아빠의 제  주년 결혼기념일을 ~ 축하드려요.
제 20, 30, 40주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P.S: 선물 못 사 드려 죄송해요. ^_^' 딸 올림'

딸이 그같이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서신을 써서 준  편지의 내용에 정작 몇 주년인지의 여부는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글씨체를 보아하니 아마도 딸이 초등학교 3-4학년 때 즈음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이란 계산이 도출되더군요.

올해부터 우리 부부는 결혼 28주년차로 들어섭니다. 그렇다면 13년 전이라면 딸이 열 살이었던 즈음이니 우리 부부로선 그 해가 결혼 15주년을 맞던 시점이지 싶더군요.

그러했음에 앙증맞은 딸은 우리더러 결혼기념일이 앞으로도 '제 20, 30, 40주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했을 터였겠지요.

그토록 정이 뚝뚝 넘쳐흐르는 글의 말미엔 또 추신으로써 '선물 못 사 드려 죄송해요' 라는 겸양의 자세까지 보였으니 이 어찌 귀한 선물이 아니었겠습니까!

지난 설날의 일입니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나자 딸은 아내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지요.

다시 또 상경하게 되면 명절 내지 특별한 일이 없는 경우엔 좀처럼 얼굴을 보기가 힘든 녀석이 바로 딸입니다.

"엄마, 건강하세요!" 라며 인사를 하던 딸은 아내와 포옹을 하면서는 뜬금없이 이번 설에도 딱히 선물을 못 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 하는 말이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정겨운 화수분이더군요.

"아냐! 선물은 바로 내 딸인데 뭘 그래. 엄마에게 있어 너 이상의 선물은 없단다!"

부처님 말씀 중에 '네 과거를 알고 싶다면 오늘 네게 닥쳐오는 것을 보면 되고 미래를 알고 싶으면 네가 지금 하는 행위를 보면 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에서 헤매자면 부처님의 그 말씀이 떠오르면서 '나는 과연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크게 지었기에 오늘날 이처럼 만날 못 살기만 하는가?'라는 자문자답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론 반대로 생각을 하기로 했지요. 그건 바로 조강지처와 28년간을 무변하게 잘 살고 있고 딸에 이어 아들 또한 효자인 건 여하튼 내가 전생을 그리 잘못만 하면서 산 인생은 아니었을 거라는 자위 말입니다.

'나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내가 지금 하는 행위를 보면 된다'는 교훈에서 저는 다시금 이를 악뭅니다.

비록 여전히 험산준령을 넘어가는 것과도 같은 힘겨움이되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만 비로소 평지도 만날 수 있다는 어떤 교훈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하늘이 주신 선물인 딸과 아들, 그리고 가련한 아내를 생각해서라도 새로운 3월과 새로운 한 주일이 시작되는 내일부턴 더 열심히 살 작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샘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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