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 제일의 명당, 대운산그 연꽃 봉우리 속으로 ⓒ 김찬순
연꽃 속으로, 대운산(옛 불광산)속으로
봄의 행진곡이 울렁차게 들리는 3월이다. 2월의 달력을 북-찢어 내고, 3월의 진달래 화사한 달력사진 앞에서 심호흡 한번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산벗 ' 일행 없이 혼자가는 산행이다. 그러나 산벗 없는 산행길은 그러나 봄이 먼저 앞장 서면서, 길을 손짓하고 산을 손짓한다. 봉우리의 중심이 연꽃 송이 같다는 대운산 등산로는 연꽃 속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길이 많다. 그래서 어느 길을 이용할까 하다가 나는 부산에서 울산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남창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대운산을 올라 기장군 불광산 척판암으로 해서 부산으로 돌아오길 마음을 먹었다.
울주군 온양면 운화리 소재 대운산은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산이름이다. 나는 젊은 시절 울산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래서 먼빛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대운산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정작 휴일도 없이 근무하는 바쁜 직업 때문에 직장 동료들과 대운산행 계획을 여러번 세웠지만, 끝내 대운산에 한번도 올라 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난 지 이십년도 넘은 것이다. 그러니까 대운산은 내가 잘 알면서도, 또 너무 모르는 산인 셈이다.
▲ 대운산 애기소옥류처럼 맑은 물소리 ⓒ 김찬순
물소리가 원효 스님 염불 소리 같은 도통곡
대운산은 울주군 온양면 운화리에서 양산군 웅상면 명곡리와 삼호리에 걸쳐 있는 높이 742m의 너무 높지도 그렇다고 낮은 산도 아니다. 이 산의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이나 오래된 읍지의 기록에는 불광산으로 적혀 있으나,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대중에게 대운산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불광산이란 이름보다는 산의 넓이나 깊이로 보아 대운산이란 이름이 걸맞은 듯 보인다. 뚝뚝 하늘에서 마치 천사들이 초록물감을 떨어뜨리고 있는 듯 초록빛이 물들어가는 봄빛 완연한 산길을 따라 걷다보니 졸졸졸 물소리가 흐른 계곡을 만났다. 이 소의 이름은 호박소(일명:애기소). 소의 물은 맑고 차다. 옛 시조에 나오는 시구처럼 옥류같은 맑은 물. 대운산은 물과 계곡으로 이루워진 산이다. 이 계곡을 도통곡이라 이른다. 신라시대 원효 대사가 이 골짜기에서 암자를 지어 살면서 도을 닦았다 하여 도통곡이라고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 산봉우리가 연꽃 송이 같다는대운산, ⓒ 김찬순
큰 바위 속에 숨은 대운산 얼굴
파릇파릇한 연둣빛 물감이 번져가는 산행로는 대운산 주봉과 둘째봉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이 계곡 사이를 물소리가 졸졸졸 채우고 있었다. 도통곡을 따라 올라가는 산행로에서 혼자 온 등산객, 여럿이 온 등산객 함께 헉헉 거친 호흡을 뱉으며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된다. 산행의 중간쯤 오르다 보니 산비탈에 ㄱ자처럼 보이는 웅장한 바위가 있었다.
등산객 하나가 친절하게 이 바위의 이름이 '포크레인 바위'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덧붙여 이 바위에서 공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포크레인 바위'라... 왠지 어울리지 않는 바위 이름이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원을 빌며 태우다 남은 촛불과 과일 등이 담긴 쟁반이 보였다. 봄빛 완연한 산 속에 무거운 마음의 그림자를 내려 놓고 나는 산신께 합장했다. "삼월에는 좋은 일만 초록빛 같은 일만 이 세상에 번져가길..."
산행의 초입에 혼자 왔다는 외로움 비슷한 것은 온데 간데 없다. 산길을 올라가다보니 울긋불긋 치장한 듯 입은 등산복이 하나의 유니폼처럼 산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어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왔다. 산은 정말 혼자와도 좋고 둘이 오면 더 좋고 셋이 오면 더욱 더 좋은 것이다. 진달래, 철쭉꽃처럼 산을 천천히 물들이며 올라가는 봄산을 타는 산나그네들은 산이 좋아 산이 되는 것이다. 산과 하나 되어 산길을 따라 가파른 곳을 약 30분 올라가니 대운산의 정상. 이 산은 해발 743m.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삼천대계가 내 작은 품에 가득히 안겨 든다.
▲ 대운산 계곡물과 계곡이 아름다운 영남의 명당이라 이른다. ⓒ 김찬순
▲ 나무연못 ?마치 천년기념물을 발견한 듯 가슴에 파문이... ⓒ 김찬순
영남제일의 명당, 일출도 장관 !
대운산 정상의 동남쪽으로 멀리 남창 마을 등이 한눈에 보이고, 서생, 온산 앞바다가 지척이다. 누군가 여기서 일출이 장관이라고 한다. 새삼 명산들은 모두 원효 대사가 왔다 간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효 대사가 이곳에 온 연유를 내게 물어 보는 것도 같다. 산은 산 이름처럼 크고 깊고, 여러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자연의 목탁 소리처럼 낭랑하다.
대운산에는 빈 절터만 남은 내원사지가 있고, 유서 깊은 내원암이 있다. 이 내원암에는 수령 500년 넘은 팽나무가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다. 나는 내원암으로 가는 일행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 혼자서 불광사로 향했다.
불광산, 척판암 전설을 찾아서
불광산 척판암은 신라시대 원효 스님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원효 스님이 널판자를 중국 종남산 운제사로 날려보냈는데 운제사의 대중 가운데서 한 사람이 "웬 널판자가 동쪽하늘에 떠있다"라고 소리치자, 이 소리에 널판자를 따라 절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절이 무너져서 죽을 뻔한 인명을 구했다고 한다.
이들이 '해동원효 척판 구중(海東元曉 擲板救衆)'이란 글씨가 쓰인 널판자를 따라 이곳까지 와서 절을 세웠는데, 이 절 이름이 내원암(현재의 내원사). 그들은 이곳에서 정진하여 성인을 이루었다 하여, 산이름을 천성산이라 산이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넓은 들을 '화엄벌' 이라 이름한 연유는 주춧돌 같은 돌덩이 천여개가 마치 좌석인 것처럼 널려 있어,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차려 화엄경을 설하였다는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언제나 등산의 즐거움 뒤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산은 그곳에 있어 나를 부르지만, 나는 산의 정상까지 산을 정복해도 항상 그 산의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꽃 봉우리 같다는 대운산 등산은 더욱 이런 아쉬움이 든다.
연꽃 속으로 들어간 듯, 내게 대운산의 구름 한 조각, 바람 한줄기, 파릇파릇 풀잎의 속삭임들도 만나지 않는 듯 하니 말이다. 그러나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 연못 만난 것으로 이번 대운산 산행의 즐거움은 충분한 듯 하다. 다음 번에는 철쭉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대운산을, 산벗 일행 둘째 형님과 다시 올라가보리라 다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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