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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면 질러나 볼 걸

호랑이 같은 일제고사와 잡셰어링

등록|2009.03.02 14:45 수정|2009.03.02 14:46
달아나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 몸이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이렇게 꼼짝할 수가 없다니. 등 뒤로는 생시에 본 적이 없고 그림책에서나 본 호랑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잡아먹을 듯이 쫒아온다. 앞으로 달아나자니 아득한 절벽이다. 어찌할까? 잡아먹힐 수는 없어서 다리가 부러져라 달린다. 항아리 뚜껑만한 큰 입으로 호랑이가 덮치려는 순간, 아 꿈이었다.

어느 날은 나무에 오른다. 왜 오르는지 모르지만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절박함만 머릿속에 차 있다. 한참을 오르는데 갑자기 가지가 부러지고 손을 놓아버린 나는 아득한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른들에게 꿈 얘기를 하면 키가 크느라고 그런 꿈을 꾼다고 했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호랑이에게 쫒기며 부지런히 컸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는지 나보다 훨씬 크다. 이 아이들도 호랑이에게 쫒기는 꿈을 꿀까? 어쩌면 일제고사 점수가 호랑이가 되어 쫒기는 꿈을 꿀 지도 모르겠다. 같은 반 친구끼리 공책도 빌려주지 않고 같은 책상에 칸막이용 파일을 세워놓고 경쟁하는 교실에서 호랑이는 바로 짝꿍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언제부턴지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키가 쪼그라드는 나이이다 보니 누웠다하면 그냥 잠 속으로 곯아떨어진다. 몸도 세상도 고단한지 잠에 빠져 눈을 뜨면 아침일 때가 많다. 그래도 간혹 설핏 잠이 들다가 이런 꿈을 꾸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불가항력이어서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에이 어차피 꿈인데 호랑이하고 한판 붙어보기나 할 걸, 맞서 싸워보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달아나고 쫓겨 다니기만 하다니' 그런 내 모습이 한심스럽다. 이미 꿈에서 깨어나 현실인데도 꿈속의 일이 실제 나에게 후회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나는 내 의지대로 걸어가고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버스를 탄다. 이 모든 일들이 내 맘대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게 하는 내 모든 일들이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는 일들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길을 걷다가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본다. 3월이 시작되고 봄을 몰고 오는 훈기가 느껴진다. 현실의 내 손은 내 의지를 따라 자판을 두드리고 전화기를 잡는다. 한 번 지나간 일들과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후회를 한다. 현실이건 꿈속에서건, 나는 그 세상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 딛는 신입사원들의 초임을 삭감하겠다는 뉴스가 계속 귀를 울린다. 그 동안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다져서 이제 그것을 발휘할 첫 사회에 나서는데 첫 월급을 깎겠다니, 누가 그런 고약한 생각으로 경제적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잡셰어링'을 꿈꾸었을까.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꾸도록 멍석을 깔아주어야 할 나랏님들이 자신의 임금을 먼저 깎지 않고 신입사원의 초임삭감을 강제한다면 개인의 욕심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포악한 자들과 어떻게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sbs u포터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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