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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 아빠 눈물을 삼키다

등록|2009.03.02 15:25 수정|2009.03.02 15:25
"아빠~저기 아빠 있어요!!"

오랜만에 만난 딸아이가 저를 붙잡고 빨리 오라 합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보고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당연히 순간 저는 무슨 소리인가 했지요. 딸아이는 TV를 가리키며 얘기를 하였는데요. 당시 모니터에는 주말 대하드라마 <천추태후>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장면을 보니 강조(최재성)와 조선(오욱철)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건희야, 저기 아빠 있어요? 아빠 여기 있잖아~"
"응, 아빠 있어요. 저기 저기~"

순간 아내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요즘 건희는 TV에서 수염 많은 아저씨들이 나오면 다 아빠라 부른다는 겁니다.

사실 제가 수염이 좀 많은 편이긴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면도를 해야 하구요. 또 일회용 면도기로는 수염이 밀리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저희 결혼식 때 주례를 봐주시던 목사님께서는 지금까지 저보다 털과 수염이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셔서 웃기도 하였지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미안했고, 마음이 울컥하였습니다. 입술을 깨물며 가슴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녀석,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었으면...'

사실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는 너무 잘 압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 이후 시골에서 15년 이상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아이에게만큼은 이런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저렸던 것입니다.

그 동안 딸아이는 주말가족 생활에 잘 적응한 듯 보였습니다. 아빠가 떠날 때마다 '빠이빠이'도 잘하고, 어린이집도 잘 다녔습니다. 저 역시 주말에 만나면 한참을 같이 놀아주고, 잠도 꼭 안고 자며 최선을 다해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려 하였습니다.

허나 이 모습을 보고 나니 녀석의 마음에는 얼마나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잡혀 있는지가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요즘 건희는 제게 안겨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어리광도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좋은 것으로, 비싼 것으로, 더 좋은 환경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제가 15년 이상 뼈저리게 느끼고, 갈망하던 사랑은 나와 함께 하는 부모님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하며 따스한 눈길로 저를 바라봐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제가 지칠 때 더 따뜻하게 안아준다는 것이었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이도 그러겠지요. 비록 아직 어려서 말은 못하지만 아빠와 함께 밥을 먹고, 눈을 마주치며, 함께 손잡고 길을 걷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저도 못난 아빠입니다. 이런 간단한 것을 그 동안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것을 이제야 깨닫다니 말입니다...!

주말부부 아빠의 비애가 느껴집니다. 아니지요. 좀 더 솔직히 제 자신에 대한 비애가 있는 월요일 오후입니다. 이번 주는 좀 더 빨리 집에 들어가 딸아이를 꼭 안아줘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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