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간 끌다가 표결하자고 할 것 문방위 아닌 의장 직속으로 구성해야"
[각계 의견] '100일간 사회적 논의'에 학계·시민사회 깊은 우려
▲ 2일 오후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두고 대치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10여명이 국회의사당 입구를 봉쇄한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2일 한나라당, 민주당, 선진과창조모임 등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타결한 이른바 '미디어 관련법' 최종 합의안은 이렇다.
2.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4개법안은, 3월 초 문방위에 자문기구인 여야동수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 문방위에서 100일간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친 후,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 한다.
2항이 핵심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은 물론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총파업까지 부른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 처리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할까"
그러나 이 합의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줄곧 미디어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을 요구했던 학계, 시민사회단체는 '100일'이란 제한된 시간, '표결'이란 구체적 처리방식, '합의기구'가 아닌 '논의기구' 명명, 기구의 상임위 내 설치 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결국 '표결'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겠느냐는 비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한나라당이 이번 합의를 어떻게 이용하려 들 것인지는 뻔하다"며 "한나라당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닌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기껏해야 100일의 시간을 끌다가 언론악법을 표결처리하자고 나설 것"이라고 비판했다.
두 차례 총파업 투쟁을 벌였던 언론노조는 2일 저녁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재차 '수용 불가' 방침을 밝혔다. 언론노조는 일단 오는 4일 오전 6시부로 총파업을 '일시 중단'하고 소속 조합원들 모두 현업에 복귀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기구' 참여 여부는 추후 비대위를 통해 재논의하기로 했다.
언론노조는 이미 "사회적 논의 기구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단 100일 동안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면서 "오늘 합의가 언론악법 폐기 투쟁을 전개하는 언론노조의 향후 투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고 밝혔다.
비판은 다음 대목으로 집중된다. '사회적 논의'에 시한을 정할 순 없다, '표결'을 위한 요식절차에 그쳐선 안 된다, 사회적 논의 기구를 (문방위가 아닌) 국회의장 직속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더불어 1999년 통합방송법 제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기구' 역할을 했던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의 선례를 참고하라'는 충고도 나온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 관련법은 한국 사회 여론 지형을 바꿀 수 있는 큰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표결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사회적 기구를 통한 논의로 결정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100일'이란 시간 동안 논의한 뒤 표결한다는 것은 아직 국회에서 이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 사례 참고해야"
김 교수는 이어 "국회 문방위 산하에 '사회적 논의기구'를 두면 또다시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국회의장 산하에 설치,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편법으로 운영한 뒤 '합의했다, 표결로 가자'라는 정략적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해서는 "결정에 힘이 실리려면 사회 각계 각층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전문성을 갖춘 학계와 학술 연구자 등의 지원집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위원회와 실행위원회 등의 체계로 나눈 뒤, 충분히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낸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역시 "기본 가이드라인을 다 지정해 둔 합의 아니냐"며 우려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 날짜를 정해두고 합의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본뜻을 이미 한정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신문법 개정 논리를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끼리 합의했다? 여야 합의는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할 때 성립하는데 이런 합의는 국민의 뜻을 얻어내기 어려운 미봉책이다. '합의'란 말 뜻에서 벗어났다. 기간을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합의는 언론노조의 파업을 멈추게 하는 명분조차도 못 준 것이라고 본다. 파업까지 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미디어 관련법 등 쟁점법안 처리 방식을 조율하기 위해 2일 오후 막판 협상 테이블에 앉으며 손을 잡고 있다. ⓒ 남소연
"논의 한번 해 본다는 식으로는 절대 안 돼"
'사회적 논의기구'의 위상에 대해 이 교수는 "주어진 기간 동안 논의 한번 해 본다는 식으로는 절대 안 된다"며 "논의기구가 초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더욱 회의적이었다.
조 소장은 "2일 합의 내용을 보면 '사회적 논의기구'보다는 '표결'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닌가 싶다"면서 "'사회적 기구'를 통해 더 근본적으로 논의해야 할 텐데 그 시간이 100일이면 이건 너무 짧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국회 차원에서 연구용역 등을 맡기고 검토하는 작업만으로도 100일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그동안 보여온 행위를 보면 '표결'을 위한 요식절차라고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해서는 "너무 재고 있는 것 같다"면서 "아직 잃어버릴 게 좀 더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 대표 역시 "국회의장 밑에 사회기구를 설치해 독립성, 중립성,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허치슨위원회 같은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사회적 논의기구'에서는 한나라당의 법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면서 "100일이란 시한을 못 박은 것은 지연 작전'일 뿐"이라고 말했다. 언론연대는 이른 시간 안에 '사회적 논의기구'의 바람직한 운영 원칙에 대한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방송개혁위원회는 어떤 '사회적 논의기구'였나? |
방송관련법 제·개정을 앞둔 상태에서 구성됐던 '논의기구'로는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회(1994)와 방송개혁위원회(1998),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2006) 등이 있었다. 이 중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회와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는 전문성이 필요한 기구였다. 이른바 '사회적 논의기구'의 위상을 갖추고 활동했던 기구는 '방송개혁위원회'(방개위)를 꼽을 수 있다. 1998년 말, 강원룡 목사를 위원장으로 각계 인사를 망라해 1994년 무렵부터 논의돼 오던 방송 관련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이어갔다. 이해관계가 다른 15인의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방송경영 노동조합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지상파 시민단체 등 30명의 각계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들을 중심으로 실행위원회를 따로 구성했다. 이때 강대인 전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가 실행위원장을 맡았었다. 방개위는 1999년 1월 21일 1차 보고서를 발표한 뒤 공청회를 열어 국민 여론을 수렴했다. 2월 11일에는 2차 보고서를 내놓아 방송관계법안 초안을 마련했으며 이후 다시 2차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다시 수렴하고 그해 3월 대통령에게 최종보고했다. 통합방송법은 이런 절차를 거쳐 1999년 말에 여야합의로 탄생할 수 있었다. |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 실행위원장이자 부위원장을 맡았던 강대인 전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에 합의한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강 전 교수도 "국회의장 직속으로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8년 방개위는 대통령 직속 산하기구로 설치됐다. 위원회에 그 운영을 맡겼고 강원룡 목사가 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회적 명망가로 하여금 책임을 지게 했다. 그런데 사회적 논의기구를 문방위 산하에 두면 정쟁의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된 사회적 논의기구로 작동이 가능할까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대표성을 확보한 사람들로 구성이 가능할지도 의구심이 든다. 방개위 때는 당시 이해가 상충하는 단체 대표자들이 다 들어왔다. 대표성이 있어야 참여 자체가 의미가 있고 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100일'이란 기간에 대해 강 전 교수는 "지난 1998년 방개위 때도 24시간 풀가동으로 밤을 새가면서 토론하고 논의했다"면서 "그런 의미로 볼 땐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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