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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모래마을 사람들 3회

1, 말복날의 손수레 3

등록|2009.03.03 09:37 수정|2009.03.03 09:37
1. 말복날의 손수레 3

"은하캐피탈 거 언제 갚을 겁니까?"

백성은행 인천 채권본부 담당과장의 퉁명스러운 말투가 마치, 갚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것처럼 불쾌하게 느껴졌다. 반찬도 없고 쌀도 떨어진 데다 배달시켜 먹을 음식값도 없는 터, 어쩔 수 없이 아침식사도 굶은 상태인지라 가뜩이나 힘이 없는데, 덜컥 그런 말을 들으니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뭐요? 은하 캐피탈? 그걸 왜 백성은행에서 갚으라고 합니까?"
"그것 때문에 신용불량에 올라가 있잖아요. 안 갚으면 바로 부동산 경매 들어갑니다."

말이 부동산이지, 모래마을의 모래알처럼 많은 빌라 부동산은 처음 입주한 집주인들에게 사실은 재산도 아니었다. '내 집 마련'을 하겠다고 들어온 첫 입주자들에게, 그 동안 애써 모아 놓은 실입주금만 날리게 만들어 준 골칫덩어리였다. 동네 집 값이 60% 정도로 떨어져 버렸으니, 융자가 끼어 있는 집을 팔면 실입주금은 한 푼도 남지 않게 되는 셈이었다.

9년 전 처음 모래마을에 들어올 때 선호는 얼마나 희망에 부풀었던가. 마을 안에 모래내시장과 구월시장이 더불어 있어서 재래시장을 이용하기에 더없이 편리한 곳. 자립한 뒤로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한 데다,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을 하여 참사랑을 꾸려 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여성이란, 열 살 아래의 차정은일 수도 있었고 또다른 여성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보니 사정은 달랐다. 공인중개사의 말과는 달리 단 한 푼의 감면도 없는 취득세부터 시작해서 은행 원리금(元利金)까지, 매일같이 '돈' 때문에 신경써야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기를 벌써 9년째.      

"여보세요, 백성은행 건 겨우 넉 달밖에 밀리지 않았는데 너무하지 않습니까?"

주택담보 대출은 9개월 밀려야 신용불량에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건 아직 상관없어요. 문제는 은하캐피탈 겁니다. 그걸로 신용불량에 걸려 있어서…"
"백성은행 거 3월달에 얼마나 갚았는지 알아요? 금리 낮은 이거 말고, 가계 주택대출로 빌렸던 금리 높은 거 1000만 원 원금 남은 걸 다 갚았잖아요. 변동금리 떨어졌다는 게 아직도 14.95% 고이자라서 금리 낮은 걸로 바꿔 달래도 안 바꿔 주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사정사정해서 빌려 모아 갚은 건데, 백성은행에다 한 300만 원만 주택 담보로 빌려달랬더니 주택 시세가 떨어져서 한푼도 더 못 빌려주겠다고 합디다. 1000만 원 갚아줬는데도 말이오. 그래 이 꼴 아닙니까. 은하캐피탈 건 다 해야 200도 안 남았는데, 차라리 백성은행 거 원금 1000을 놔두고 그걸 갚았으면 속시원할 걸 말입니다."
"그거야 금리가 높으니까 먼저 갚았겠지만, 하여간에 신용불량 걸려 있는 거 빨리 안 갚으면 경매 들어갑니다. 언제 갚을 겁니까?"

선호는, 그 담당과장이라는 자가 눈 앞에 있으면 당장 주먹이라도 "퍽"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 참고 점잖게 말했다.           

"지금이 7월이니까 9월이면 될 겁니다. 두 달 동안 설마 200이 못 벌어질라구요."

이런 위급 상황이 올 것에 대비하여 선호는 모 광고대행사에 그쪽의 거래처인 '한반도그룹 55주년사' 집필작가 지원을 해둔 터였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역사를 정리하는 용역료(用役料)라는 게 원고료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이어서, 그 동안 창작할 시간을 빼앗겨서 그렇지 수입은 제법 쑬쑬한 셈이었다.

그런데 워낙 대한민국의 수백 명 작가들 가운데 전업작가들 상당수가 굶어 말라가는 형국인지라 지원자가 꽤 많은 모양이었다. "내가 배고파 그러니, 불쌍한 작가 한번 도와주는 셈치고 그 프로젝트 나한테 주시죠" 하는 식의 전업작가도 여럿 있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선호에게 그 집필 작업이 꼭 주어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계속]


17.00%!MF 이후에 신축 빌라 입주자 주택담보 대출의 파고는 높았다 ⓒ 김선영



14.95%! 몇 년 뒤에 이율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파고는 높았다. ⓒ 김선영



덧붙이는 글 몇 년 전에 완성해 놓고 출간하지 않고 있던 소설인데, 최근의 달라진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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