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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여덟 명 새내기를 맞았습니다"

[현장] 부곡초등학교 신입생 입학식

등록|2009.03.03 09:53 수정|2009.03.03 11:16

부곡초 새내기 최정민 박영은 어린이왼쪽으로부토 올해 부곡초등학교 새내기로 입학한 최정민 박영은 어린이 ⓒ 박종국




대개 한해살이는 섣달그믐에 마무리되지만 학교는 이월 봄방학으로 매듭을 짓는다. 그때면 최고 학년은 떠나고, 여타 학년은 숨고르기를 한다.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한 워밍업이다. 그 틈에 학교는 새 학년 새 학기 준비로 바쁘다. 새내기들을 맞을 채비를 한다.

그러나 겨우내 움츠렸던 교사(校舍)는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없다. 아이들의 온기를 받지 못한 까닭이다. 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의 당찬 함성으로 살아나고, 교실은 아이들의 손때를 묻혀야만 비로소 생기를 되찾는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이 머물지 않는 학교는 더 이상 학교가 아니다.     

"오늘 아침 감리를 지나다 내려앉은 집을 보았어요. 안채가 내려앉는 것 같더니 이내 곁에 있던 아래채도 무너져 버렸어요.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많이 놀랐어요. 마치 도미노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던 것 같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폐가가 되었을까요?"

"그렇게 무너지는 집이 많아요. 한두 해만 묵혀두면 사람 안 사는 집이란 것을 풀씨가 어떻게 아는지 제일 먼저 찾아오더라고요. 마당이고 지붕 가릴 것 없이 잡초가 자릴 차지하고 나면 집의 생명은 다하는 거지요. 요즘 농촌 어디 그런 집이 한두 챕니까."

3월, 개학 첫날 화두로서는 자못 씁쓰레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세찬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가 풀리는 요즈음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빈집이 많아졌다. 아마 지금의 농촌 마을은 어느 곳을 가 봐도 절반 이상은 묵혀 둔 집일 게다.

2009년 부곡초 새내기 스냅

ⓒ 박종국



그러나 학교는 다르다. 개학과 동시에 학교는 냉큼 잠을 깬다. 조금도 게으름을 피워댈 짬이 없다. 더구나 오늘같이 입학식을 함께 하는 날이면 한층 더 부산을 떨어야한다. 평소 듣던 발자국 소리도 친근한데, 새롭게 또박또박 들려오는 발걸음을 서둘러 만나야 하기에 더욱 바빠진다.

학교는 아이들의 당찬 함성으로 살아나

개학 첫날 운동장에서 개학식을 마친 아이들은 교실로 가서 담임을 만난다. 그러고 나서 같은 날 입학식이 있을 때는 으레 고학년들은 입학식에 참여하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강당으로 입학식을 하러가며 아이들이 던진 말이다. 자기네들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건만 삼삼오오 모여 있는 꼬맹이 동생들이 신기한 듯 제법 어른스러운 짓을 하고 든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입학생과 6학년은 우선 걸음은 자체가 다르다.

"야! 깔깔이 1학년들이다. 저기 재민이도 왔네."
"선생님, 올해 입학하는 아이들은 몇몇이에요?"
"우와, 쟤는 1학년 같지 않다. 덩치가 너무 크다!"

귀염둥이 1학년들의 목에 이름표 하나씩 걸려졌다. 새내기 동생들을 맞은 고학년 아이들은 즐겁다. 그래서 자잘한 질문은 끝이 없다. 6학년으로서 좀 뻐기고 싶은 게 많고, 모처럼 새로운 동생들이 생겨 기분 좋은 거다. 아이들 하는 짓을 보니 애늙은이 같다. 누구나 나잇살이 많든 적든 간에 제 어릴 적 일들은 쉽게 인정하고 쉽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그냥 어른이 된 것이다!

새내기올해 부곡초 새내기 열여럽 ⓒ 박종국



부곡초 병설 유치원 입급생열다섯명이 유치원 입급했다. ⓒ 박종국




올해 부곡초등학교에 1학년 신입생은 모두 열여덟. 작년보다 여남은 줄어들었다. 때문에 이제 전교생이 150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농촌 현실을 생각하면 결코 작은 학교는 아니다.

올해 부곡초등학교에 1학년 신입생은 모두 열여덟

삼년 전 부임했을 때 전교생이 186명인 것을 감안하면 한해에 십여 명은 자연감소하고 있다. 당장에 올해 같으면 정확한 수치를 보인다. 스물여덟명이 졸업을 하고 열여덟 명이 입학을 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인근의 길곡초등학교는 신입생이 더욱 줄어들어 전교생이 서른 명에 미치지 못하고(그중 6학년은 단 한 명), 학포분교는 아예 신입생이 없다.

근데도 영산초등학교는 금년에 세 반이 늘었다고 한다. 부익부 빈익빈이랄까. 똑같은 면지역인데도 영산은 학년마다 서너 반씩 제법 학교 같은 구색을 갖추고 있다(물론 학생수가 많은 학교가 학교답다는 얘기는 아니다). 십년 동안 창원에서 칠팔십 학급 규모의 다인수 학교에도 근무해 보았으나, 그런 공룡 같은 학교보다는 그래도 학교는 한 학년에 두서너 반은 유지되어야 활기가 있다.

송수언 어린이힘차게 대답하고 있는 송우언 어린이 ⓒ 박종국



최정민 박영은 어린이입학식 전에 예쁘장한 포즈를 취했다. ⓒ 박종국




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서로의 부대낌을 통해서 자라고, 교과서와는 또 다른 역동을 가진다. 선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데도 조그마한 농촌 학교의 인적구성은 고인 웅덩이 물과 같다. 뭔가 새로운 게 없다. 그러니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 다시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려고 애를 써 봐도 그저 무덤덤한 일상의 연속이다.

농촌이 건강하게 살아나야한다

도시의 삶이 편리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농촌이 없는 도시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말로는 "농촌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고 하지만, 실상은 모든 정책입안에 있어 어느 것 하나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농촌이 건강하게 살아나야한다. 그것을 안다면 더 이상 비어가는 농촌을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같이 마늘양파 건사로 바쁜 중에도 자녀의 입학식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그지없이 고맙다. 아이를 학교 보낸다는 설렘도 컸겠지만, 그보다도 학교에 대한 유다른 관심 때문이었으리다. 아무리 빈집이 늘어나도 학교에 선뜻 발걸음 할 수 있는 학부모들이 있는 한 농촌학교는 살아 있다. 학부모들이야말로 학교를 살려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아닐까.     

빈집에 온기를 채웠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 한번만이라도 옛집에 대한 기억을 한 적이 있을까. 아침에 동료로부터 들은 얘기는 그냥 허두로 들리지 않는다. 농촌이 무너지고 있는 소리기 때문이다. 어디 집이 까닭 없이 무너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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