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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원한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

삼맹을 벗어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등록|2009.03.04 12:11 수정|2009.03.04 18:03
불혹이 되도록 나는 삼맹이었다. 컴맹, 운전맹, 운동맹….
작은 도시라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아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붓만 잡고는 먹고 살 수 없어 운전과 컴퓨터를 배워야 했는데 그것은 정말 어려웠다.

왜냐하면 어릴 때 믹서기에서 손을 다친 이후로 기계공포증이 있는데다가
중증청각장애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데가 없기 때문이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컴퓨터학원은 배우고 싶어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다행히 컴퓨터는 지역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취업을 위한
정보보급사업을 펼치면서 수화통역사를 배석하여 가르치기 시작해서 배우게 되었다.
컴맹의  독수리타법이라 1분에 15타를 치다가 40타를 치다가 6개월 후 수료할 때는 80타를 간신히 쳤다.
그리고 수료후 조립컴퓨터를 받은 우수수료생이 잘사는 집으로 밝혀서 대신
그것을 넘겨 받는 행운을 얻게되어 그것으로  시각장애도서전산화작업을 했다.

1주일에 원고지 150장 분량의 참고서나 각종 도서를  A4 10장을 워드작업하는 것인데
매일을 밤을 새다 시피 해야 했고, 다 못하면 컴퓨터학과를 나온 동료활동가나 자원봉사동생, 서예를 배우러 온 제자 등등이 대신 해주기도 했다. 몸이 아파 오랫동안 못할 때는 아예 하청을 주기도 했다.  50만원 내외의 공공인건비를 받으면 치킨이나 족발파티도 벌어지고…. 정겨운 나날이었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자판에 손을 올리고  수건을 덮었다.

1분에 그나마 100타를 치던 것이 수건을 올리니 1분에 다시 20타 처음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계속 했다. 한 달, 두 달… 점점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 100타, 200타가 금세 되었다.

문제는 운전이었다. 신경예민과 소심함이 겹쳐 운전대만 잡으면 덜덜 떨렸다. 다행히
가톨릭선교회 총무가  연결하고 도와준 운전학원장의 배려로 나와 또 다른 여성장애인이
함께 운전을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 하여 간신히 면허를 땄지만 주행연수는 학원에서
못시켜준다고 했다. 입모양을 보고 간신히 알아듣기 때문에….
수화통역사도 마찬가지다. 운전 중 수화통역을 어떻게 쳐다보겠는가…

이 땅의 많은 남자청각장애운전사들은 무면허가 많다. 눈치코치와 감각으로 습득한
운전실력은 기능적으로 월등하지만 필기시험 내용에 나오는… 태어나서 처음 접해보는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보다 청각장애운전자들의 필기시험 합격커트라인이 낮게 책정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높은 벽으로 남아있고 청각여성장애운전자들은 아주 희귀하다.
나만 해도 옛날 부모님이나 남편이 내가 운전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아주 질겁을 하고
안전하게 살아라! 욕심을 버려라! 이렇게 했으니까…

차를 몰고 첫주행을 한 날..들어갈 때 박고, 나올 때는 두 세번 박고, 좁은 도로를 가다가
골목이 갓길주차로 막혀 차 한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길을 만나면 옆구리를 할퀴고..
그렇게 수도 없는 접촉사고를 하고 정비소 가면 사장님이  "차가 참 불쌍해요…! 좋은 차인데…" 할 정도였다.
차도 차지만 내 심약한 간이 오그라들고 기계공포증이 극대화 되어 안색이 질리고
눈까풀은 덜덜 떨렸다. 

여러 날이 지나고 어떤 행동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혼자 이겨내고 혼자 벌어서 먹고는 살아야 하고 헤어진 딸들도 만나야 하니
목숨건다는 생각으로 한 번 시내주행이 아닌 시외주행, 고속도로 주행을 해보자고…

일과를 마치고 경주로 달렸다. 시속 100키로를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에서 60 -70으로 간신히 달렸다. 그것도 무서워서 중간 중간에 멈추어 울기도 하고..너무 시간이 늦어 졸려서 휴게소에서 잠깐 자기도 하고…
3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경주석굴암을 7시간 넘어서
새벽에 도착했지만 새벽에 보는 일출이 어찌나 그렇게 태어나 처음 보는 새해일출처럼
 마음에 깊은 감동과 황홀한 선물이 되었는지…

그 다음 날부터 시내주행을 하면서 대담해졌다. 대담해진 것이 아니라 전전긍정 조심 조심 졸아들던 간이 쪼그라들다 못해 아예 토끼간처럼 가슴 안에서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20만 키로 가까이를 주행한
나의 애마는 얼마 전 내 곁을 떠났다.

여러 번 죽을 벼랑에서도 아슬아슬 멈추는 행운을 주기도 하고 2미터 아래로 추락했을 때도 바른자세로 착지하여 엔진이 상하지 않고 범퍼와 헤드라이트만 깨졌던 신통하고 고마운 애마… 그 애마는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로 많이 덜렁대고 부주의 나를 인내심있게 이끌었지만, 아직도 내게는 베스트 드라이버의 길은 요원하다.

경적이나 차소리를 못 듣는 내게는 끼어들기에 대한 방어가 아주 어렵고, 청신경장애 특성상 방향감각이 우측으로 집중되어 헤매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뒷 창문에 청각장애인표시를 붙이라고 해서 시도해보았지만 웬걸! 끼어들기보다
추월하는 차가 너무 많아서 다시 떼어버렸다.
그것을 보완해주고자 네비게이션을 딸이 사주었지만 이 네비게이션을 믿고 가다보면 전혀 엉뚱하게 골목사잇길이나 빙 둘러서 예정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삼맹중에서 두가지 맹을 벗어나는데 10년이 걸렸고, 지금도 매 순간 긴장된
삶이지만 이 긴장감이 오늘의 활력이 되는 좋은 보약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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