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적게 나와도 집필공간 마련한 기쁨에...
[연재소설] 모래마을 사람들 7
1. 말복날의 손수레 7
저질러놓고 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치솟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다. 융자를 끼고 집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000만원은 실입주금에 훨씬 모자라는 돈이었다. 관산동에 새로 지은 빌라들은 적어도 2000만원의 입주금을 마련해 놓아야 입주할 수 있었다.
파주시 금촌면에 새로 지은 빌라 단지에 가보기도 했는데, 5000만원대에 실입주금이 1700만원 정도 들어가는 데는 아담하기는 해도 집이 너무 비좁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화장실에다 소변을 보고 그냥 돌아간 건지는 알 수 없어도 수세식 좌변기에 노란 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었다.
"이건 왜 이래요?"
"이거 락스로 한 번만 문질러 주면 깨끗해져요."
선호는 광화문까지 빠르게 달리는 좌석버스가 있으므로 파주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고장으로 괜찮다고는 생각했지만, 곧바로 결정짓지는 못했다. 더욱이 그때만 해도 전쟁이니 불바다니 하는 소리들이 떠돌고 있었고, 한동안은 마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라면 사재기를 하며 피난 떠날 준비들을 하는 모습이 방송되곤 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휴전선에 인접한 지역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문득, 차라리 1호선 전철이 통하는 인천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선호와 가장 친한 광장상업고등학교 동기생 유중현이 대망그룹의 대망전기 경리과장으로 근무하며 살고 있었다.
생활정보신문을 보니, 이게 사실인가 싶을 만큼 인천의 집값이 쌌다. 모래마을 같은 환경개선지구의 20평형 빌라(말이 빌라지 실은 '다세대주택') 값이 5700만원 정도였으며, 4000만 원은 융자를 해주겠다고 하니 1700만원만 있으면 입주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역시 전국에서 먼지가 가장 많은 고장이라 다르군."
선호가 유중현을 만나 인천으로 내려와 사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했더니, 부도 내는 건축주들도 있으니 잘 살펴보고 판단해서 계약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계약금을 치르고 부도가 나면 계약금만 날려버린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유중현은 그 동안 선호가 틈틈이 빌려 쓰고 갚지 못한 돈 200만원을 언제 갚을 거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이 빌라 저 빌라 돌아다니다가 문학산뿐만 아니라 바다까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공간을 발견했으며, 이만한 집필공간이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겠다 싶어 큰맘을 먹기로 작정했다. 건물주가 브로슈어에 나와 있는 주택가 57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은 빼주겠다고 했고, 게다가 공인중개사가 그곳이 20평형밖에 되지 않아서 취득세가 면제라고 말했기 때문에 마음이 바삐 움직였던 것이다.
결국 선호는 장편소설 한 권의 초판 1쇄 인세보다도 많은 600만원을 대기업에 대리로 근무하는 막내남동생과 건물주에게 각각 300만원씩 빌려 실입주금 1500만원을 맞추어 놓은 다음에, 발빠르게 환경개선지구에 '내 집 마련'을 하고는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물론 등기권리증을 받기 위해서는 취득세로 200만원 정도가 더 들어갈 터였다.
집중력 향상을 위하여 글쓰기 환경을 중시해야 하는 가난한 작가가, 어쨌거나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던가.
입주를 할 때 어머니와 막내남동생, 그리고 막걸리 술벗으로 자주 만나던, 시나리오 공부하는 체격 좋은 후배 고일권이 이사를 도와주었는데, 마침 고일권은 모래마을 출신이었다.
"이 동네, 옛날에는 닭장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어요."
형편없이 가난한 동네였다고 했다. 그랬던 동네가 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어 재개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돗물이 왜 이렇게 안 나와요?"
고일권이 세면을 하려다가 말했다. 정말이지 수도꼭지에서 물이 1cm 너비도 안 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래내고개 꼭대기에 있는 높은 지대라 물탱크의 수압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그걸 확인하지 않은 게 실수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도 찔끔찔끔 나오는 건 아니니까 뭐…"
선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애써 자위를 했다. 물이 좀 덜 나오면 어떤가. 그래도 이만한 나만의 집필공간을 마련한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삿짐을 대강 옮겨놓고 그날 저녁을 모래내시장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무침게장으로 맛있게 먹었는데, 이튿날 넓은 공간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드니, 계약해 놓은 소설도 없는 형편이라 당장 무엇을 하여 돈을 버느냐가 문제였다.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은행 원리금만 해도 갚아나가기가 수월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의 글쓰기 강사였다. 1주일 내내 매일 오후에 나가 저녁때까지 가르치는 것인데, 강사료는 겨우 5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학원 소재지가 너무 멀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그 학원 부근에 겨우 도착하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마을버스를 20분 가량 타고 가서 10여 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민주초등학교에 문의를 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문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우수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한 데다, 동화작가와 소설가로 데뷔하였고 알 만한 작품을 쓴 작가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선호에게 기대를 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선호는 초등학교 교실에 직접 가서 가르치는 방과후 특별활동 글쓰기 강사를 하게 되었다. 5학년 반을 맡아 가르쳤다. 그때 특별활동 글짓기부 학생 가운데 바로 정효진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정효진은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선생님…" 하고 효진은 뭔가 물어보려다 말문을 닫았다.
"웬 리어카냐구?"
선호가 짐작하여 묻자 효진은 볼우물이 들어간 분홍빛 얼굴로 살며시 웃었다.
[계속]
저질러놓고 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치솟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다. 융자를 끼고 집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000만원은 실입주금에 훨씬 모자라는 돈이었다. 관산동에 새로 지은 빌라들은 적어도 2000만원의 입주금을 마련해 놓아야 입주할 수 있었다.
"이건 왜 이래요?"
"이거 락스로 한 번만 문질러 주면 깨끗해져요."
선호는 광화문까지 빠르게 달리는 좌석버스가 있으므로 파주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고장으로 괜찮다고는 생각했지만, 곧바로 결정짓지는 못했다. 더욱이 그때만 해도 전쟁이니 불바다니 하는 소리들이 떠돌고 있었고, 한동안은 마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라면 사재기를 하며 피난 떠날 준비들을 하는 모습이 방송되곤 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휴전선에 인접한 지역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문득, 차라리 1호선 전철이 통하는 인천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선호와 가장 친한 광장상업고등학교 동기생 유중현이 대망그룹의 대망전기 경리과장으로 근무하며 살고 있었다.
생활정보신문을 보니, 이게 사실인가 싶을 만큼 인천의 집값이 쌌다. 모래마을 같은 환경개선지구의 20평형 빌라(말이 빌라지 실은 '다세대주택') 값이 5700만원 정도였으며, 4000만 원은 융자를 해주겠다고 하니 1700만원만 있으면 입주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역시 전국에서 먼지가 가장 많은 고장이라 다르군."
선호가 유중현을 만나 인천으로 내려와 사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했더니, 부도 내는 건축주들도 있으니 잘 살펴보고 판단해서 계약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계약금을 치르고 부도가 나면 계약금만 날려버린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유중현은 그 동안 선호가 틈틈이 빌려 쓰고 갚지 못한 돈 200만원을 언제 갚을 거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이 빌라 저 빌라 돌아다니다가 문학산뿐만 아니라 바다까지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공간을 발견했으며, 이만한 집필공간이라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겠다 싶어 큰맘을 먹기로 작정했다. 건물주가 브로슈어에 나와 있는 주택가 5700만원 가운데 100만원은 빼주겠다고 했고, 게다가 공인중개사가 그곳이 20평형밖에 되지 않아서 취득세가 면제라고 말했기 때문에 마음이 바삐 움직였던 것이다.
결국 선호는 장편소설 한 권의 초판 1쇄 인세보다도 많은 600만원을 대기업에 대리로 근무하는 막내남동생과 건물주에게 각각 300만원씩 빌려 실입주금 1500만원을 맞추어 놓은 다음에, 발빠르게 환경개선지구에 '내 집 마련'을 하고는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물론 등기권리증을 받기 위해서는 취득세로 200만원 정도가 더 들어갈 터였다.
집중력 향상을 위하여 글쓰기 환경을 중시해야 하는 가난한 작가가, 어쨌거나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던가.
입주를 할 때 어머니와 막내남동생, 그리고 막걸리 술벗으로 자주 만나던, 시나리오 공부하는 체격 좋은 후배 고일권이 이사를 도와주었는데, 마침 고일권은 모래마을 출신이었다.
"이 동네, 옛날에는 닭장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어요."
형편없이 가난한 동네였다고 했다. 그랬던 동네가 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어 재개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돗물이 왜 이렇게 안 나와요?"
고일권이 세면을 하려다가 말했다. 정말이지 수도꼭지에서 물이 1cm 너비도 안 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래내고개 꼭대기에 있는 높은 지대라 물탱크의 수압이 문제인 모양이었다. 그걸 확인하지 않은 게 실수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도 찔끔찔끔 나오는 건 아니니까 뭐…"
선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애써 자위를 했다. 물이 좀 덜 나오면 어떤가. 그래도 이만한 나만의 집필공간을 마련한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삿짐을 대강 옮겨놓고 그날 저녁을 모래내시장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무침게장으로 맛있게 먹었는데, 이튿날 넓은 공간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드니, 계약해 놓은 소설도 없는 형편이라 당장 무엇을 하여 돈을 버느냐가 문제였다.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는 은행 원리금만 해도 갚아나가기가 수월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의 글쓰기 강사였다. 1주일 내내 매일 오후에 나가 저녁때까지 가르치는 것인데, 강사료는 겨우 5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학원 소재지가 너무 멀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그 학원 부근에 겨우 도착하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마을버스를 20분 가량 타고 가서 10여 분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민주초등학교에 문의를 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문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우수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한 데다, 동화작가와 소설가로 데뷔하였고 알 만한 작품을 쓴 작가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선호에게 기대를 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선호는 초등학교 교실에 직접 가서 가르치는 방과후 특별활동 글쓰기 강사를 하게 되었다. 5학년 반을 맡아 가르쳤다. 그때 특별활동 글짓기부 학생 가운데 바로 정효진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정효진은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선생님…" 하고 효진은 뭔가 물어보려다 말문을 닫았다.
"웬 리어카냐구?"
선호가 짐작하여 묻자 효진은 볼우물이 들어간 분홍빛 얼굴로 살며시 웃었다.
[계속]
▲ 작은 평형의 빌라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서민 동네입주한 뒤에야 수돗물이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지만, 선호는 그래도 확 트인 전경이 바라보이는 공간을 집필환경으로 마련했다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 김선영
덧붙이는 글
몇 년 전에 완성해 놓고 출간하지 않고 있던 소설인데, 최근의 달라진 세상 모습을 덧붙여서 많은 부분 보충하고 개작해 가며 연재한 뒤에 출간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질 것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