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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의 말도 안되는 해명에 웃음만 나올 뿐이고...

등록|2009.03.06 11:25 수정|2009.03.06 13:29

▲ 아무리 뜯어봐도 합격의 당락이 뒤바뀐 것 같은 이런 사례들에 대해 고려대는 명확하게 해명 하지 않았다. ⓒ 화면캡쳐


한 편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보고 나서 어이없음에 실소를 짓게 만드는 코미디랄까? 왜 종종 그런 게 있지 않나. 하는 개그맨은 웃기다고 하는데 보는 관객들은 어디서 웃어야 할지 포인트를 못 잡겠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이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고려대 수시모집 의혹'으로 검색해 보면 된다. 정말 실컷 느낄 수 있다.

고려대 2-2학기 수시모집 부정 의혹에 대해 지난 2월 26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고려대의 손을 들어줬다. 대교협 윤리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고려대는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고교등급제 및 입시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고려대에서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고교등급제와 입시부정은 절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고려대 수시모집에 관한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고려대가 외국어고등학교를 비롯한 특목고를 우대하기 위해 고교등급제를 시행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고교등급제 시행 과정 중 어떤 '실수'나 '사고'가 발생하여 학생들 간의 합·불합격의 당락이 바뀌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대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일단 특목고를 특별히 우대한 적이 없단다. 실제 전형 결과 일반고 학생들의 합격률과 특목고 학생들의 합격률이 각각 52.4%, 57.5%로 비슷하고, 내신 등급이 낮은 외고학생들이 무더기로 합격한 것처럼 등급이 높은 외고학생들도 상당수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일반고에서 내신 등급이 높은 학생이 떨어진 것과 동일 학교 내에서 등급이 높은 학생은 떨어지고 반대로 등급이 낮은 학생이 합격한 것은 전형에서 1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비교과 영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려대의 해명은 개운하지가 않다. 일단 그 해명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동일 학교 내에서 내신 등급이 낮은 학생이 합격하고 높은 학생이 떨어진 게 비교과 영역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내신 등급도 낮고 비교과 영역도 뒤지는 학생이 높은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또 비교과 영역이랄 게 별로 없는 두 학생 중 내신 등급이 낮은 학생이 높은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미 지난 2월 1일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그런 사례들을 소개한 바 있지 않던가?

고려대가 해명해야 할 건 바로 이 점이다. 지금 내신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 비교과 영역에서 역전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그건 이번 의혹과 관련해서 아무런 대답이 못 된다. 단순히 봉사활동 시간이 많다든가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비교과 영역 점수가 높은 게 아니라고? 그럼 그 평가기준도 공개해야 한다. 그게 의혹을 풀고 소위 '해명'을 하겠다는 측의 기본적인 자세 아닌가?

▲ 논란의 중심인 상수값 알파(α)값과 케이(k)값 역시 고려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 고려대학교


비교과 영역을 점수로 정확히 환산하기 어렵다는 것까진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볼 때, 전반적으로 비교과 영역에서 뒤처지는 학생이 높은 학생을 제치고 합격한 케이스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해당 학생들의 지도 교사도, 입시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합격한 당사자까지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게 카오스(Chaos)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또한 고려대는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상수값 알파(α)값, 케이(k)값은 왜 밝히지 못하는가? 고려대가 이번 해명 기자회견에서 밝혔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이 두 상수값이 내신 보정 공식과정에서 어떻게 쓰여 지느냐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복잡해서 밝힐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이 고려대만의 그 복잡한 보정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안 밝히겠다는 건가? 걱정도 사서 한다. 대한민국에 입시전문가가 어디 한 둘인가? 고려대가 자세한 걸 공개하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입시전문가들 수두룩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서태열 고려대 입학처장이 기자회견 도중 이 엉터리 해명에 항의하는 몇몇 기자들에게 "이미 반증 자료를 제시했고 이 자료를 부정하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해명을 먼저 해놓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니, 대체 누가 누구한테 '논리' 운운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명문사학 '민족고대'여, 제발 더 이상 낯부끄러운 짓 좀 하지 마라. 지나가는 멍멍이도 웃을 엉터리 해명을 해명이랍시고 하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교협은 혐의 없다고 손 들어주고, 아주 둘이 죽이 척척 맞는다. 아니지, 둘이 아니라 셋이다. MB정권은 대학을 '자율화'한다고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눈 딱 감아주는 대교협에 입시전권을 이양하고 대학 자율화한다는 정부까지, 정말 세트로 죽이 척척 맞는다.

작년에 고려대 경영학과가 한 가지 빼고 서울대보다 좋다는 고려대의 도발적인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한 가지가 이명박 대통령이다 뭐다 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이제야 그 한 가지가 뭔지 알 것 같다. 고려대여, 서울대보다 잘나고 싶으면 기자회견부터 다시 해라.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모든 걸 공개하고 온갖 의혹에 정면대응하면 된다. 대교협도 면죄부 줬겠다, 나름 해명도 했겠다, 이런 식으로 입 싹 닦고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그딴 식으로 하다간 평생 가야 서울대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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