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고치는 게 없던 '땜쟁이'도 떠났다
텅 빈 매장 늘어가는 용산... 내몰리는 40대 자영업자는 슬프다
▲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 아침
"또 한 곳에서 매장을 비운다. 10여 년을 한곳에서 장사를 했다는 40대 후반의 남자는 고물이 된 책상을 밖으로 내다 놓고 문을 잠그고 손을 바지에 넣은 채 복도를 따라 사라진다. 곧 임대사무소에서 '임대문의'라는 인쇄물을 잠근 문에 붙인다. 이쪽 라인 20여 개의 매장 중 반 이상이 텅 비어 있다. 수개월째… 내가 일하고 있는 용산전자상가의 한 모습이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한다. 최악이라고 이야기하고 사양 산업이라고도 한다. 빨리 떠나는 게 상책이라고들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 본다.
4, 5평 정도의 매장을 임대하려면 차이는 있지만 50만원선. 관리비 25만원 정도. 전화세, 의료보험 등 각종 세금 30만원.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최소경비 100만원은 반드시 필요한 돈이다. 여기에 밥값, 교통비까지 합쳐서 자기 월급을 200만원이라고 잡는다면 직원 없이 혼자 장사해도 300만원은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한 달에 300만원 벌려면 일요일 빼고 하루에 수입이 평균 12만원이 나야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한두 달도 아니고 수개월 동안 그렇게 적자를 내다가 문을 닫는 것이다." - 2007년 6월 본인 블로그에 쓴 글 인용
2년 전 블로그에 쓴 글을 다시 본다. 그렇게 떠나간 40대 후반의 그 남자. 별로 친분이 없어 어디로 갔는지도 알 길 없지만 10년째 지키던 5평 남짓한 매장의 불을 끄고 처진 어깨로 복도를 걸어나가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오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일로.
텅 빈 매장이 부지기수로 늘어가고 삶의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며칠 전, 용산에서 286 컴퓨터부터 시작했다는 사람, 못 고치는 것이 없다고 큰소리치던 일명 '땜쟁이'라 불리던 그 사람도 용산을 떠났다. 몇몇 사람은 소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대신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곧 닥칠 자기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애써 외면한다.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에 내몰리는 40대
40대, 한참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 대다수의 경우라면 자기의 삶은 물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이 최악의 경기 침체와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에 밀려 곳곳에서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실업급여를 신청한 40대가 전년에 비해 48.7% 늘어 20대(33%), 50대(27%)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급여를 신청한 40대 중 53%는 실업 전 직장에서 1년도 근무하지 못하고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누군들 실업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백수로 지내는 사람 중 누가 두 다리 쭉뻗고 자겠으며 의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20대건, 30대건, 40대건, 50대건, 백수로 지내면서 겪는 고통은 같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40대의 실업은 유독 남다르다. 이들의 실업은 개인의 실업이 아니라 한 가정의 실업이요, 더 나아가 가정 파괴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 빠르면 고등학생이 되어 있는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 아이들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시기다. 집 장만 계획, 거기에 노후 계획도 세워나가야 할 시기가 40대다. 사무실에 찾아오는 보험 판매사들은 나이를 물어보고는 아직도 노후설계를 하지 않냐고 핀잔을 준다. 종신보험 하나라도 들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산술적으로 보더라도 40대는 현실의 지출과 미래 설계를 위한 지출이(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모으지 않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가장 큰 시기임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40대는 직장에서도 꽤 비중 있는 자리에 있었다. 입사 10년 이상을 넘긴 과장이나 부장 정도의 관리직, 혹은 생산현장에선 반장이라 불리는 고참 노동자다. 자영업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남 밑에서 장사를 배워 독립했든, 30대 초반부터 장사를 했든 그 분야의 베테랑이 되어 안정적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 40대다.
40대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대 희생양
▲ 영화 <우아한 세계>의 한 장면. ⓒ ㈜루씨필름
경기 침체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40대들은 명예퇴직을 강요받는다. 신자유주의 맹신 속에서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피라미드 구조의 상부로 진입하지 못한 대다수의 40대들은 직장을 떠나고 있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삭감을 감내해야 하지 않느냐는 일방적 통보가 오히려 직장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보증처럼 느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친구들 술자리에서 들린다.
자영업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명퇴로 내몰린 40, 50대들이 마지막 남의 돈을 끌어모아 골목에 하나씩 치킨집을 열고 PC방의 사업주가 되었던 것이 IMF 외환위기 때 일이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경기 침체가 몰려오고 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임대료도 내지 못해 가게를 접고 길거리로 나앉는 상황이다.
지난해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었다. 비정규직으로, 실업자로 내몰리는 10대에서 20대 문제를 다룬 책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호평을 받은 책이다. 전체적으로 신선한 문제제기임에도 아직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논리가 있다.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다." - <88만원 세대> 274쪽
논지를 내가 오독하지 않았다면 40, 50대 기성세대가 경험과 지위를 이용하여 승자독식의 논리로 20대 앞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일부의 40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경제의 주도권 세대가 아니라 경기침체와 신자유주의 체제 최대의 희생양으로 떠오르고 있다.
학용품조차 못 사주는 40대가 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를 나누겠다고 한다.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공기업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줄이겠다고 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정부 정책에 호응하려는 듯 임금 동결에 나섰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맞아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데 누군들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면 실업을 구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이상 실업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 기업 구성원들이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것도 정부나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수입이 줄어든 가정은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수입이 끊겨버린 가정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40대 실업증가율이 최고라는 통계치가 심상치 않게 받아들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의 경쟁력이 되어 버린 현실. 사교육은커녕 학용품조차 제대로 사줄 수 없는 40대 가장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비전을 보더라고 결코 쉽게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개인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이 가정을 가지런하게 할 수 있고, 나라의 근간이 되고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이 중심을 올바르게 잡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불황이 OO에 미치는 영향'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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